예술인 아카이브
2026 S-Arts 글로벌 프런티어
2025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무대 위에서 연기로 관객과 호흡하는 배우 김현진입니다.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연출을 비롯한 연극의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공연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몸소 경험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무대와 인물을 바라보는 깊이가 더 깊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창작 작업에 참여하며 연극 전반에 대한 역량을 차근차근 키워나가고 있는데요, 앞으로 더 다채롭고 깊이 있는 무대로 [문화+서울]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전하는 창작자가 되고 싶습니다.
예술적 여정의 첫 씨앗이 뿌려진 것은 2017년, 대학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무대라는 반짝이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의 삶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동경심에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학년이던 어느 날, 장면을 만드는 과제를 준비하며 늦은 밤까지 연습실에 남아 있던 날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텍스트 속 인물의 정서가 잘 잡히지 않아 몇 시간 동안 같은 대사를 되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불이 꺼진 어두운 연습실 안에서 희곡 속 인물이 느끼던 고독과 제 안의 감정이 맞닿는 강렬한 경험을 했습니다. 단순히 쓰인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무대라는 유기적인 공간 속에서 텍스트가 생명력을 얻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순간의 힘을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죠. 그 사소하지만 강렬했던 경험 이후, 저는 단순한 배우를 넘어 연극이라는 매체 전체가 가진 강렬한 에너지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나를 단단한 '창작자이자 예술가'로 자각한 것은 무대 위의 한 인물을 넘어, 연극이라는 공간 전체의 유기적인 언어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연기를 해오면서 어느 순간 '인물의 대사와 감정은 무대 조명의 빛, 공간을 채우는 음향, 텍스트의 상징성, 그리고 관객과의 숨결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벽한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내가 내뱉는 대사 하나가 단지 개인의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모든 오브제와 빛, 그리고 객석의 에너지와 얽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매개체라는 것을 몸소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무대 위 조명 하나, 텍스트의 작은 여백 하나까지도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연 전반의 요소를 다각도로 관찰해나가는 저 자신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내가 단순히 역할을 수행하는 연기자를 넘어 무대라는 세계를 구축하는 하나의 예술가로 서 있구나' 자각하게 됐습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로서 깊게 호흡하는 동시에, 연극이라는 매체 전체를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하고 탐구하는 그 입체적인 고민의 과정이야말로 저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예술가로서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문화재단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사업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연극 <허씨의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 않는다>라는 작품을 뜻깊은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에서 저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허씨'라는 인물을 맡아 연기했습니다. 제 실제 나이와는 간극이 큰 연배의 인물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도 커다란 벽이었지만, 무엇보다 치매라는 특수한 상태와 그 인물이 품고 있는 부서진 시간의 결을 짚어내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과정이 제 연기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괴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인물의 아픔을 흉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본질에 닿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한 그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배우로서 무대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단계 크게 확장해준 값진 이정표가 됐습니다.
<허씨의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 않는다>
9월 김광보 연출님의 <옥상밭 고추는 왜> 출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평소 관객으로 늘 동경해오던 김광보 연출님 그리고 대선배님들과 한 무대에서 숨 쉬며 작업하고 있는 지금 이 모든 순간, 하루하루가 꿈만 같습니다. 연습실에서 선배님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에너지와 단단한 호흡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 됩니다. '허씨'라는 인물을 치열하게 통과하며 단단해진 마음 위에, 거장 연출님과 선배님들로부터 흡수하는 무대의 깊이를 더해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관객 여러분을 마주하고 싶습니다.
저는 주로 낯선 공간으로의 여행과, 동료·선배 예술가들과 나누는 치열한 대화를 통해 커다란 창작 영감을 얻습니다. 특히 하나의 텍스트나 인물을 놓고 각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예술적 시선을 겹쳐보며 밀도 높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때, 혼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사고의 지평이 트이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특히 연륜과 내공이 깊은 선배님들의 지나가는 한마디나, 동료들의 치열한 고민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에너지는 제게 있어 선물과도 같습니다.
최근 티켓링크 1975 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있는 김정 연출님의 연극 <갈매기>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워낙 유명한 고전 작품이지만, 이번 무대는 체호프의 희곡에 흐르는 예술과 삶, 비극과 상실의 정서가 무대 위 공간 활용과 인물의 정교한 호흡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절망과 좌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과 무게를 털어내고 나아가려는 인물들의 뜨거운 생명력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에너지, 텍스트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독을 포착해 내는 연출의 미학적 시선은 배우이자 창작자로 살아가는 저에게 아주 강렬한 자극이자 배움이 됐습니다. '과연 우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깊게 던져준,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작품입니다.
감사하게도 최근 제가 속한 극단 '창작집단 하룻밤'이 서울문화재단 S-Arts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에 선정돼, 오는 10월 중국 상하이 프린지 페스티벌의 폐막작으로 초청돼 공연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번 상하이 진출은 단순히 저희의 공연을 해외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을 넘어,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예술가들과 직접 호흡하고 자율적인 네트워킹을 이룰 수 있는 뜻깊은 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과 예술관을 가진 창작자들과 만나 치열하게 고민을 나누고 그들의 깊은 예술적 시선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앞으로의 가장 큰 목표와 계획은 이 소중한 경험을 자양분 삼아 더 넓은 시선과 한층 깊어진 예술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국경과 언어를 넘어 무대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했던 경험을 연기에 단단히 녹여내고, 나아가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해가는 입체적인 창작자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