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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노제현
공공공간예술·연극·신체극
2026 서울거리예술축제 참여 예정
2024·2022 서울거리예술축제 참여
2024·2021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창작지원사업 선정
2018 거리예술 넥스트 수료

<쉼표> ⓒGoGuMa

거리와 공공 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공간과 장소를 매개하는 다양한 기억을 소재로 작업하는 거리예술가 노제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의 기억을 눈에 보이는 공간으로 전환하고, 도시의 공간 위에 시적인 상상을 덧입히는 작업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2011년 극단 몸꼴의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비언어 신체극이라는 장르에 매료돼 입단했고, 이후 몸꼴이 극장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공연한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도로와 골목, 광장에서 창작과 공연을 이어가며 다양한 환경과 장소성을 기반으로 관객을 만났고, 열린 거리가 지닌 해방감과 현장감의 매력에 이끌려 지금까지 거리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새로운 동료들과 아이모멘트를 창단했습니다. 이전부터 품고 있던 창작과 실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고, 현재는 아이모멘트에서 연출과 퍼포머로 활동하며 공공 공간 예술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팬데믹으로 공연이 모두 멈췄던 시기, '과연 나는 예술가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매일 밤 저를 찾아왔죠. 당시 새벽 물류 배송 일을 하던 중 우연히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강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물류 창고와 아파트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작품의 주제가 떠올랐고, 그날의 강렬한 미장센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작품을 만날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과 이야기가 곧 작품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 준비를 해야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얻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거리극 <쉼표>를 완성했고, 다양한 거리예술축제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에게 예술은 일상에서 우연히 주제와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술이 저를 이끌기도 하는 유기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불꽃이 저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분명한 동기가 되는 순간, 저의 예술은 시작됩니다.

아이모멘트는 2022년부터 '도시 시리즈'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도시 시리즈는 관객과 공연자가 함께 공간을 유영하며 원경과 차경, 틈새 보기, 관찰 등 요소를 활용해 익숙한 장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도시 공간을 사유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작업입니다. 대표작은 2024년 서울문화재단 거리예술창작지원을 통해 초연한 <잉여의 도시>입니다. 사용되지 않는 나머지의 것들, 낙오된, 도시의 가장자리를 지키던 존재들이 살아가는 낯선 도시를 상상하며 미지의 도시를 탐험하는 이동형 공연입니다. 서울 서계동 일대의 골목과 주거 지역, 잉여 공간, 틈, 가장자리 등을 무대로 삼아 도시의 공공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도시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사물과 장소를 예술적 관점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공공 공간이라고 생각해온 장소들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질문하고, 쉽게 놓치거나 밀려난 존재들은 어떤 장소에 머무르게 되는지를 탐구합니다. 쓸모를 잃은 사물을 새로운 생태로 재해석하며 인간을 넘어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과 돌봄의 감각을 확장하는 <잉여의 도시>는 서울 초연 이후 수원·평택·김포 등 다양한 지역에서 공연했으며, 올해 서울거리예술축제 선정작으로 9월 관객과 만날 예정입니다.

영감을 얻기 위해 많이 걷습니다. 공공 공간 예술은 직접 보고 걸으며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저를 강하게 이끄는 공간을 만나면 그곳을 자주 찾아가 오래 머뭅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까지, 공간과 사물이 제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바라보고 기다립니다. 혼자 걸으며 새로운 장소와 낯선 이야기를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도시 아키비스트와 함께 리서치를 진행하거나 아이모멘트 동료들과 도시를 산책하면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리서치와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도시를 둘러싼 여러 담론과 결핍, 소외, 배제되고 폐기되는 것들, 그리고 그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을 작품의 재료로 삼고 있습니다. 재개발 예정 지역이나 지도에서 사라진 공간을 거닐며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이 작업의 중요한 영감이 됩니다.

저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Andrei Tarkovsky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그중 <스토커>는 아이모멘트의 <파타모르가나>, <잉여의 도시>에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며, 일부 장면에 오마주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1979년 개봉한 <스토커>는 공상과학적 설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철학적 사유에 집중하는 작품입니다. 폐허와 모래로 뒤덮인 공간, 흑백과 컬러의 전환, 롱테이크 등 영화 속 강렬한 미장센은 영화를 본다기보다 공간을 직접 체험하는 감각을 느끼게 했습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물 이미지와 폐기물로 가득한 장소,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은 단순한 사물이나 공간이 아니라 욕망과 두려움, 믿음을 마주하게 하는 중요한 메타포로 작동합니다. 2022년 처음 이 영화를 본 이후 도시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서사 구조와 장소와 사물을 통해 다양한 사유를 끌어내는 방식, 그리고 몽타주를 활용해 흩어진 장면 속에서 상징을 발견하게 하는 연출 방식은 제가 지향하는 작업 방법론이 되었습니다. 또한 공공 공간에서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재현하기보다 관객이 현실과 직접 접촉하며 사유하도록 만드는 방식 역시 현재 아이모멘트 작업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데이터 기술과 미디어 플랫폼 속에서 거리예술은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공공 공간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도시의 질서 속에서 소비되고 통제되는 '몸'을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AI 기술을 접목해 도시를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해석하는 공공 공간 예술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AI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환경 속에서 신체가 데이터화되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몸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담론을 만들어내는 공공공간예술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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