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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조혜영
공예/도예
2026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예술가

흙 선을 반복해 형태를 만드는 도예 작업을 하는 조혜영입니다.

다섯 살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미술학원에 다녔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입시 미술을 시작했지만, 정해진 방식 안에서 잘 그려야 한다는 과정이 저에게는 즐겁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그만뒀습니다. 이후 성인이 돼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생각했을 때 결국 미술이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공예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손을 움직인 만큼 결과가 남고, 재료와 몸이 직접 부딪히며 형태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제게는 공예가 가장 진실한 표현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늘 저 자신을 예술가보다는 노동자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영감이 찾아와 머릿속에 머무르던 이미지를 단번에 구현해내기보다는, 매일 정해진 물리적 조건 속에서 신체를 움직이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작업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 작업의 본질은 순간적인 착상보다 반복적이고 정직한 육체 노동의 과정에 가깝습니다. 작업을 할 때 제 몸은 재료와 공정에 깊이 구속됩니다. 그래서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이기보다, 재료의 상태와 손의 감각, 시간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몸을 조율하는 노동자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노동을 반복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지난한 질문 끝에 마주한 답은 결국 '나'였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완결된 창작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가는 정직한 과정이었습니다. 선을 긋는 최소한의 행위 안에는 제 시간과 움직임, 버티고 반복하는 몸의 감각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는 일 자체가 결국 저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동의 시간이 저를 가장 진실하게 표현하는 언어가 되고, 그 끝에 나온 창작물에 제 존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이것이 나의 예술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액체와 고체의 중간쯤에 있는, 유동적인 흙인 '슬립'으로 작업합니다. 슬립은 처음부터 형태를 보이지 않고, 손에 담으면 흘러내리거나 쉽게 퍼져버리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흙을 비닐 주머니 안에 넣고 끝을 잘라, 손아귀에 쥔 채 압력을 주며 흙의 선을 밀어냅니다. 제게 선은 움직임의 흔적이며, 시간이 쌓인 결과이고, 생명이 뻗어 나가는 방향입니다. 자연 속의 물결, 나이테, 잎맥, 뿌리처럼 선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움직이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선의 성질을 슬립이라는 유동적인 흙을 통해 도자 안에 물질화하고자 합니다. 손에서 나온 선은 하나하나 반복되고 축적되며 결을 만들고, 그 결은 다시 하나의 형태로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형태는 흙의 상태와 손의 감각, 흡수되는 속도와 쌓이는 방향을 따라갑니다. 작업은 재료와 손의 리듬이 조응하면서 만들어집니다.

<결이 피어난 시간>, 2026, 도자, 안료, 42×17×22cm

제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슬립이 흐르고, 손아귀에 쥐어지고, 손끝에서 선으로 밀려 나오고, 그 선들이 모여 형태가 되는 순간들이 모두 작품의 일부입니다. 결국 제 작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흐름을 흙이라는 물질 안에 머물게 하고, 순간의 움직임을 도자라는 지속적인 형상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연약한 선은 반복을 통해 결이 되고, 결은 형태가 되며, 그 안에서 선의 생명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흔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에서 영감받습니다. 움직임과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수면 위를 지나가며 남기는 물결이나 공기 중으로 피어오르는 연기의 상승과 확산을 통해 우리는 그것들을 감각할 수 있습니다. 나이테와 잎맥처럼 시간이 쌓이고 생명이 뻗어 나가는 구조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느낍니다. 저는 그런 자연의 흔적에서 움직임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생명성을 발견하고, 이를 도자의 선과 형태로 옮기고자 합니다.

팀 잉골드Tim Ingold의 저서 『만들기Making: Anthropology, Archaeology, Art and Architecture』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그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를 '미리 머릿속에 완성된 형태form를 정해두고 재료에 그것을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대신 재료와 인간, 그리고 환경이 서로 능동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형태를 '기르고 생성해나가는 성장의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이 책이 저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이유는 제 작업의 본질과 정확히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흙이라는 재료 위에 군림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흙이 가진 유동적인 생명력의 흐름에 동참하고 그것을 물질화하는 동반자에 가깝습니다. "창작물이 아닌 창작하는 그 과정이 나를 표현한다"는 제 예술적 자각에 깊은 철학적 당위성을 부여해 준 작업이기에,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복기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 책을 꼽고 싶습니다.

작업을 통해 저라는 사람도 계속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느낍니다. 선 하나를 반복해서 쌓아가는 일은 겉으로는 정적인 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저는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계속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반복의 과정은 저에게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역동적인 경험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작업의 과정을 즐기며 지속해나가고 싶습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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