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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복지국가와 예술 함께 있지만 보지 못하는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이 질문은 길을 묻는 말이지만, 이에 대한 답은 한 인간이 평생 닿고 싶었던 존재를 향해 돌아가는 시간이다. 화장실까지의 거리, 타인까지의 거리,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의 거리.

강연을 앞둔 장애 여성 인플루언서 청즈는 두 편의 원고를 품고 무대에 선다. 하나는 세상이 기대하는 이야기다. 밝고 긍정적이며 용감한 장애인의 서사. 다른 하나는 오래 묻어둔 이야기다. 분노와 상처, 침묵과 욕설, 그리고 엄마에게 끝내 건네지 못한 말들. 청즈를 흔드는 것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진실의 복수성이다. 끝내 두 편의 원고를 내려놓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쪽을 얘기하든, 둘 다 거짓말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또 어느 한쪽만을 얘기하면, 둘 다 거짓말이 되지요."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장애인의 삶을 단일한 서사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비극의 주인공이거나 극복의 영웅이거나. 사람들은 한 사람의 삶보다 장애인을 둘러싼 익숙한 문장을 소비한다. 청즈의 피로 역시 그 지점에서 비롯한다. 자신의 삶이 타인의 감동을 위해 끊임없이 편집돼야 한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영어 제목 'Be Seen'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과연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존재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장애인 인플루언서의 휠체어를 보고, 장애를 보고, 서사를 본다. 청즈를 보지는 못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일수록 영향력은 커지지만,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함께 있지만, 보지 못하죠. 사랑하지만, 보지 못하죠. 갈망하지만, 보지 못하죠."

인식의 한계는 종종 존재의 한계가 된다. 보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쉽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된다. 어쩌면 인간의 비극은 멀리 있는 대상을 외면하는 데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데 있다.

작품은 두 가지 침묵 사이에서 시작된다. 딸을 사랑하면서도 끝내 딸에게 닿지 못한 엄마의 침묵, 그리고 오랫동안 자기 자신에게 닿지 못한 청즈의 침묵이다. 어린 시절 엄마는 청즈를 숨기려 했다. 다리가 가늘어 흉을 본다고 말했고, 손님이 오면 방에 있으라고 했다. 세상의 시선을 피하려 한 말들은 청즈의 몸보다 먼저 그의 존재를 움츠러들게 했다. 청즈가 마주한 것은 엄마의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옮겨 와 오랫동안 스스로를 바라본 시간이었다.

엄마는 사랑했지만 청즈에게 닿지 못했다. 대중은 응원했지만 청즈를 읽어내지 못했다. 청즈는 오랫동안 자신에게조차 도착하지 못했다. 청즈 역시 환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자신을 놓쳐왔다.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엄마에게 건네고 싶었던 두 번째 원고도 결국 나를 봐달라는 요청으로 수렴한다. 청즈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몸보다도 엄마와 자신 사이에 놓인 침묵이었다.

공연이 끝에 가까워질수록 두 편의 원고는 선택지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 안에 공존하는 두 개의 진실로 드러난다. 청즈는 둘 가운데 하나를 버리는 순간 진실 전체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장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을 찾던 청즈가 끝내 찾아 헤맨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고, 엄마에게 닿을 언어였으며,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었다.

"이 세상엔 애초에 장애란 병은 없었다. 장애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시선으로 나 자신을 대하지 않는 것, 그건 내가 바꿀 수 있는 사실이다."

이 문장은 장애에 대한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겠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작 천쓰안陳思安·연출 강보름)가 끝내 도착하는 곳은 바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삶, 존재를 결핍이나 결함이 아닌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지점이다.

복지국가 역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을 더 도울 것인지에 앞서, 누구를 처음부터 사회의 일부로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상상되지 않는 존재는 쉽게 제도 밖에 남겨진다. 인식의 경계는 제도의 경계가 되고, 제도의 경계는 다시 삶의 경계가 된다. 복지국가는 몇 개의 시설을 더 짓는 일보다 먼저, 누구를 여기에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지의 문제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수형이다. 경험과 조건, 욕망과 상처가 교차하며 짜인 한 장의 직물에 가깝다. 한 사람 안에 여러 목소리와 상처, 희망과 침묵이 엉킨 채 살아간다. 복지국가란 그 복수성을 지워버리지 않는 사회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 수혜자이자 현재의 당사자일 때,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가 된다.

누구를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 볼 것인가. 누구의 삶을 사회의 현실 안에 포함할 것인가. 그 질문이 장애인 화장실 앞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최정상 보건복지부 행정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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