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안무가이자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는 임은정입니다. 무용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움직임뿐만 아니라 영상·설치·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신체와 사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강한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몸/퍼포먼스가 사회·정치적 맥락과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주목합니다. 초기에는 신체가 시간과 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움직임을 어떻게 구성하고 이를 신체를 통해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느끼게 되었고, 이후에는 여전히 신체에 중심을 두면서도 다양한 매체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학부 시절 안무를 배우면서 무용 창작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또한 현장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의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맞다 아니다'라는 구분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답을 해 보자면, 아직 명확하게 '이때다!' 하고 느낀 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저를 예술가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사회·구조적 조건에서 여성의 신체가 하나의 개별적 존재가 아닌 기능이나 가치로 환원된 객체로 다뤄지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여성의 신체는 종종 성적 대상, 재생산의 도구, 혹은 돌봄과 희생의 역할과 연결돼 의미화됩니다. 저는 이러한 의미가 신체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과 시선의 체계를 통해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작업에서는 가부장 사회뿐만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구성돼왔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러한 저의 탐구는 여성의 몸에서 출발하지만, 단일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퀴어, 장애, 노동하는 신체 등 사회적 권력 구조 속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다양한 신체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영상 작업 <이모>, <렌즈>가 있으며, 퍼포먼스 작품으로는 <어린광대 그리고 마법사>, <쌀더미>, <슛>이 있습니다.
작품 <이모>는 속초 아바이마을 여성사와 중년 여성의 노동·믿음을 중심으로 만든 작품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여성 무당의 굿을 자주 접했습니다. 아바이마을은 남북 분단과 전쟁 이후 형성된 피난민 공동체로, 바다와 인접한 지역입니다. 많은 남성이 어업을 위해 장기간 바다에 나가 있기 때문에, 육지에서의 노동은 대부분 여성이 담당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의 강도 높은 육체노동과 더불어 남성의 무사 귀환과 생업의 안정을 기원하는 샤머니즘 의례가 함께 존재해왔습니다. 특히 저는 여성 무당이 이끄는 굿을 자주 보며, 무당이라는 초월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굿의 전후 과정에 드러나는 여성 노동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굿을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과정, 그리고 칼날 위에서 뛰고 오르는 행위를 보며, 여성 샤먼의 몸은 단순한 영적 매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돌봄과 노동을 수행하는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몸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몸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저는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가려진 젠더화된 노동과 그 신체·심리적 부담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노동과 신앙이 공존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면서 저는 신체를 단일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다양한 맥락을 지니는 존재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단채널 비디오 <이모> 설치 전경
저를 둘러싼 환경과 제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해온 것의 배경에 있는 사회 구조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다양한 환경 속에 제 몸을 놓아보는 경험 자체가 영감을 얻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새로운 곳에 나를 놓아두고 스스로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을 많이 다닙니다. 여행을 통해 여러 도시와 문화권을 경험하고, 무용 페스티벌과 미술 비엔날레 등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저는 앞서 언급한 경험과 더불어 주류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이나 억압적인 구조에 균열을 내는 퀴어·페미니즘적 사유, 그리고 신체의 가능성, 해방을 다룬 예술론과 철학적 텍스트들을 리서치하며 개념에 관해 자극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사유들을 제 몸의 감각과 연결하려 노력합니다.
최근 작업에서는 '관음적 시선'에 주목하고 있으며, 누가 보고 보이는가에 대한 관계를 전환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객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보는 자'로 개입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움직임뿐 아니라 설치,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 등을 결합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몸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신체가 다른 매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새로운 맥락을 생성할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탐구해나가고자 합니다. 또한 제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 각자가 자신의 몸을 둘러싼 사회·역사적 구조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