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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방랑을 즐기며 일단 저지르고 보는 예술가 유목연 예술 작업은 위트 있는 여행
7년간 미술과 동떨어진 무역회사 근무 경력에 홈리스 경험까지 있는 괴짜 아티스트 유목연. 최근 파리 시테(CITE, 삼성문화재단 후원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로 선정(2015)되고 두산연강예술상(2016)까지 받으며 주목받고 있는 그의 예술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새로운 여행을 알아보았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예술 행위를 통해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과정이 주축이 되는 커뮤니티아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어떤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성향입니다. 주변과 빈번한 교류 없이 지내다가 수년 전에 지원 공모에 선정되어서 다양한 선정자 분들과 함께하게 되었는데, 가벼운 접근으로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좋은 예술적 결과를 도출하는 걸 보고 제 마음에 반향이 일었습니다. 이러한 교류 과정 속에 스스로 예술 활동을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만 생각해왔구나 하고 느끼게 된 거죠. 그동안 고수해 온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작업으로 플랫폼을 만들고 소통과 만남을 통해 어떠한 현상이 만들어지는지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고 싶어서 진행해온 작업이 현재 제 작업의 중심이 된 것 같습니다. 일종의 ‘나만의 게임’이 된 거죠. 매일매일 새로운 소통과 관계가 만들어지니까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기대되는 게임이요(웃음).

‘유목연’이라는 이름이 도시나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작업하는 작업 성향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데, 본명인가요? 아님 전략적으로 만든 이름인가요?

유목연은 작업 활동을 위해 만들어낸 가명이고, 본명은 이용훈입니다. 지원을 받아볼 요량으로 각종 공모에 신청할 때마다 떨어지다 보니 각기 다른 예명을 만들어 신청했고, 그중 지원금 수령에 성공한 이름이 ‘유목연’이죠.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였지만, 이젠 ‘유목연’이라는 예명이 제일 많이 불리는 제 이름이 되었네요(웃음).

얼마 전 마무리한 개인전 <나뭇가지를 세우는 사람>(2016. 9. 7~10. 8)이 전문가들과 관람객 모두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전시에서 상영된 영상을 보면 계속해서 기다란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세우려고 하는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습니다.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행동의 이유는 뭔가요?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애초부터 바닥에 똑바로 설 수 없는 나뭇가지를 세우려는 하찮고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노라면, 많은 사람이 무관심하게 지나칩니다. 하지만 간혹 하나둘은 이상해 보이는지 관심을 갖고 다가오죠. 이러한 행위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누군가만 있다면, ‘너도 세워봐’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함께 세워볼래?’ 하면서 소통을 시도하죠. 이러한 과정 속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교감이 오가요. 매순간 행위하는 과정 중에 어떠한 반응이 오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러한 과정이 저는 항상 기대되고 즐거워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면 모두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기준을 세우고 정답이라고 정한 뒤, 그 목표 방향으로 사람들을 강요하며 몰고 가잖아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 정답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무의미하다고 통용되는 행동이 정말 중요한 의미가 되는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각자 정답과 기준은 다양하다는 거죠.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정해진 룰을 따라만 가지 이게 개별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나뭇가지를 세우는 반복적 행위, 즉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무한 반복하는 건 다양함을 이해하고 지켜봐주는 배려심 없이 너무 획일화 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도전입니다. 무모해 보이지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질서에 도전하는 거죠.


“예술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고 심각한 내용을 담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웃을 수 있는 매개체로서 예술행위를 하고 싶어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작품 <택배박스> (2015).
2 <히든키친> (배낭식 주방 및 조리도구, 40×25×40cm, 2014).
3 <히든키친> 설치 전경(2014).
4 <목연포차(미니멀)> (나무 및 조리도구, 가변크기, 2014).

이러한 행동에 대해 외부의 시선은 어떤가요?

기자 한 분이 가느다랗고 긴 나뭇가지를 세우고, 쓰러지면 또 세우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위에 대해 ‘기반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 현대인의 홀로서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해석하셨는데 이러한 해석은 관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봐요. 관심이 없다면 어떠한 행동을 해도 아무런 해석이나 반응이 없거든요. 이처럼 관심을 갖고 봐주시는 분은 정말 극소수예요. 파리공원에서도 그렇고 안산에서도 그렇고 대체로 무관심하죠(웃음). 효율적이거나 유의미해 보이지 않으니까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외부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저는 제가 즐거울 수 있고 남들에게도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이라도요.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도록 동기를 만드는 게 작업의 핵심인 것 같은데, <목연포차>의 이동 가능한 카트로 만든 1인 포장마차나, <모두를 위한 핑퐁테이블>의 원형 탁구대 등 특별한 오브제가 커뮤니티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마다 이처럼 재치 있는 오브제는 어떻게 만드나요?

특별히 무언가를 의도하고 치밀하게 계획해서 만들어내는 성격이 아녜요. 일단 저지르고 보는 편입니다. 원래 주변의 것을 내가 필요한 무언가로 만드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개조의 달인입니다.
프로젝트 중에 만들게 되는 오브제에 대해서 예술품으로 보이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씁니다. 남들은 예술품을 만든다고 골머리를 싸매는데, 저는 반대로 예술품이 아닌 무언가로 인식되게끔 하자는 주의예요. 이상한 강박증인데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둥그런 탁구대나 이동형 포장마차 모두 사람들과 관계 맺게 하는 플랫폼 역할의 오브제 이상으로 보이지 않기를 고집합니다. 절대적으로요. 아직까지 제가 만든 오브제를 구매하겠다는 사람 또한 없었으니 나름대로 성공한 거 아닌가요(웃음).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을 파괴하는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경계의 파괴는 예술의 새로운 확장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관심 끌기용 전략적 행동일 수도 있죠. 이러한 작업을 하는 근거와 세간의 평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예술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앞서 말했듯 개인적으로 무의미했던 직장 생활보다는 제가 즐거운 무언가를 행동으로 하고 있는 것이죠. 예술 활동을 위해 지원금을 신청하게 되고, 이 지원금으로 작업하면서 남으면 최소한의 생활비로 씁니다. 목연포차를 끌고 나가 커피도 건네고 국수도 말아 드리면 5,000원도 받고 때론 1만 원도 받는데 그럼 이걸로 재료도 사고 찜질방에 가서 잠도 자죠. 이러니 저에게 예술 활동이란 곧 생활이고, 생활이 예술 활동인 셈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중요한 건 밥 한 끼이고 사람들과 건네는 다정다감한 관심의 대화입니다. ‘잘 버티셨냐?’ ‘잘 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등 서로 응원해 주는 말 한마디 처럼요. 제가 하는 행위가 직장 그만두고 예술로 밥 벌어 먹고 사는데 당연히 생활이 되죠. 저는 예술을 몰라요. 제가 하는 행동에 대한 외부 해석의 훌륭함에 감탄하며 고마워하고 있어요. 이제 예술이고 아니고는 저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예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5 <당신의 어깨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냥 웃어요_마사지> (설치 퍼포먼스, 2015).
6 <지극히 개인적인 가이드북 시리즈> (2011).

한때 카드 빚에 몰려 노숙 생활도 경험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경험 때문인지, 생존가이드북과 강의 영상 자료의 대상이자 목연포차의 주 소통 대상이기도 했던 홈리스들과 프로젝트가 많이 연계되는데요, 어떤 이유인가요?

일단 접근이 쉬워요. 배고프고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밥 한끼를 제공하게 되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죠. 홈리스 분들도 한때는 사회에서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며 인정받는 분들이었는데, 지금은 무의미한 존재로 치부되잖아요. 이들도 가족과 친구가 있는 소중한 존재임에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게 슬픈 현실이죠. 그저 효율적인 관리 방안이라며 ‘재활’이라는 명목으로 정해진 틀에 맞춰 재생산하려 할 뿐이죠. 이건 관심이 아니잖아요. 확대해보면 일반인들도 나름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어떤 취급을 당하겠어요. 노숙을 경험한 적도 있고 밥 한 끼의 소중함과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알기에 이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요.

근래 작업 중 재미있는 반응이나 관심 가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이케아(IKEA) 아시죠? 이걸 변형해서 ‘유케아(UKEA)’라는, 지하철 내 광고 게시판을 활용한 작업을 했는데, 1호선 2호선처럼 지하철 각 호선이 있잖아요. 광고를 본 시민들이 ‘몇 호선에서 이걸 몇 시에 봤다’ ‘몇 호선에도 이 재밌고 신기한 유케아 광고를 봤다’ 는 등 계속해서 제 개인 홈페이지에 댓글로 반응이 주욱 달리는데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어떤 호선 관리 측에서는 경고를 보내기도 하셨고, 어떤 호선에서는 이해를 해주신 건지 아직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일상에서 이러한 작은 도발이 즐거울 수 있다면 이게 예술이 아닐까요? 경고도 먹고 많은 반응도 얻고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반응을 보여주신 많은 분도 즐거워하셨고요.

작가로서 계속 작업에 담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예술이라고 해서 너무 무겁고 어렵고 심각한 내용을 담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 사람들과 계속 소통하고 웃을 수 있는 매개체로서 예술 행위를 하고 싶어요. 서로서로 만나서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을 기억으로 공유하고 상호 간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더 확장할 수 있다면 그나름대로 의미 있는 행동이지 않을까요.

‘유목연의 작업은 ○○○다’ 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유목연의 작업은 유머러스한 여행이다.’ 매번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진 목적지도 없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시간을 갖게 될지 예측되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매 순간 작업은 저에게 여행 같아요. 다만 이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도 즐겁고 힘이 되는 순간으로 기억되길 바라죠. 좋은 여행의 추억처럼요. ‘유머러스한 여행’, 이게 제가 바라는 제 작업의 목표랍니다.

역시 유목민 맞으시네요(웃음). 앞으로도 유머러스한 여행이 계속 되어서 더 많은 작업의 결과를 보고 싶네요. 좋은 작업 많이 보여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문화+서울

글 이정훈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사진 김창제
작품 사진 제공 유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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