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도시 읽기 좋은 도시의 조건이 되는 문화
올해 여름 유럽은 거대한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끓어오르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6년 6월은 서유럽 역사상 가장 뜨거운 6월이었고, 이 글을 쓰는 7월도 가장 뜨거운 7월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파리는 최고기온이 40도를 넘겼고, 스페인과 독일에서도 40도를 넘긴 도시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머물게 된 런던 역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거 내 기억 속의 런던은 7월에도 비가 부슬부슬 내려 긴 소매 옷을 항상 준비해야 하는 도시였지만, 이곳에 도착한 지 2주가 되어 가도록 비는커녕 구름조차 보기 힘들다.
하지만 런던의 여름이 서울보다 더 덥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저녁 6시만 지나면 도시는 빠르게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서울 같은 열대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서울보다 런던이 더 더운 것처럼 느껴졌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기온이 아니라 냉방시설에 있었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2층 버스에는 아직도 에어컨이 없는 차량이 적지 않다. 창문이 아예 열리지 않는 자리도 많고, 그마저도 안전을 위해 손바닥만큼만 열린다. 승객이 가득한 버스는 저녁 기온이 내려가도 실내가 후끈거리고, 한여름에는 마치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런던 지하철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에어컨이 없는 노선이 여전히 많고, 파리 역시 일반적인 냉방 대신 외부보다 몇 도 정도만 온도를 낮추는 냉풍 환기 시스템을 사용하는 노선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세계적인 선진 도시들이 왜 이렇게 불편한 냉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물론 이유는 있다. 오래된 지하철 터널에 강력한 냉방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기술적 제약도 있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정책도 있다. 일본 역시 대부분 전철에 에어컨은 갖추고 있지만 한국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운행한다. 한국에서는 "너무 덥다"는 민원이 먼저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너무 춥다"는 불만이 먼저 나온다. 결국 어디까지 시원하게 만들 것인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받아들이는 서비스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이 질문 자체를 다시 던져야 한다. 냉방은 과연 서비스일까?
과거에는 그럴 수 있었다. 조금 더 시원하게 이동하기 위한 편의시설이었다. 그러나 폭염이 매년 심해지는 지금 냉방은 이동권과 건강권, 더 나아가 생존권을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폭염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에어컨을 켜고 이동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고, 햇볕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환승한 뒤 다시 걸어야 한다. 폭염은 이동의 모든 순간을 위협한다.
주거 환경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일수록 단열과 환기 상태가 나쁜 집, 녹지와 그늘이 부족한 동네, 옥탑방이나 반지하처럼 열이 축적되는 공간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이 부담돼 마음껏 켜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같은 38도의 폭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하루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하루가 된다.
폭염은 자연재난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지만, 홍수나 산불처럼 눈에 보이는 재난은 아니다. 사인은 심장마비나 호흡기 질환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폭염이 예보되면 도서관과 학교 강당 등 냉방시설이 있는 공공건물을 24시간 개방하는 도시가 있다. 냉방장치가 없는 집에 사는 노인과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안전망이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도시가 폭염 대피소만으로 정상적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최근 도시가 주목하는 것은 '거리의 냉방'이다. 사람들이 가장 오래 노출되는 곳은 집 안이 아니라 길 위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몇 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2~3분, 버스를 기다리는 10분이 폭염 속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 서울은 이 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해온 도시다.
확실한 냉방을 제공하는 버스와 지하철은 물론이고, 횡단보도 그늘막, 스마트쉼터, 쿨링포그 같은 시설을 도시 곳곳에 설치했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시설이지만, 신호를 기다리는 2분조차 정책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냉방을 건물 안이 아니라 거리로 가져온 것이다.
물론 서울의 정책도 완성형은 아니다. 지역별 격차도 있고, 더 많은 그늘과 나무, 쉼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폭염을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우리는 흔히 문화 선진국을 박물관이나 공연장, 미식과 디자인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는 도시 문화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질지 모른다. 가장 더운 날에도 시민이 돈을 쓰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가장 취약한 사람이 폭염 때문에 일상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도시가 돕는 것 역시 도시가 만들어내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좋은 도시는 가장 높은 빌딩을 가진 도시가 아니라, 가장 더운 날에도 가장 약한 시민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도시다. 서울의 그늘막과 스마트쉼터는 화려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기후위기 시대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글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