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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5월호

로컬 리포트 구민들을
지역예술가 팬으로

광진문화재단
박계배 사장

“구민들이 지역 예술가들의 팬이 된다면, 예술가들이 공연을 통해서 자급자족할 수 있고 예술 생태계도 구축될 수 있습니다.”

박계배 광진문화재단 사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취임 2년 차를 맞은 그가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활동 중인 예술가, 단체 그리고 예술가로서 첫 도약을 앞둔 예술대학 졸업생들이다. 광진문화재단은 인적 문화자원을 활용해 광진구 안에서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청년예술 지원사업 ‘청춘 아트 브릿지’와 나루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살롱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박계배 사장이 지역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는 관내에 숨은 예술적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를 역임한 그는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관내 예술인 규모에 주목했다.

“광진구에 거주하며 예술활동증명을 마친 예술인은 약 2,700명입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11번째로 많지만, 정작 재단 사업에 신청한 인원은 120여 명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닫혀 있던 이들의 마음을 열고 재단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도록 기획한 것이 바로 살롱 음악회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광진문화재단 나루아트센터 1층 스페이스76에서 열리는 살롱 음악회는 나루 아티스트로 선정된 관내 예술가들이 직접 꾸미는 토크 음악회다. 구민들은 단돈 1천 원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고품격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핵심은 예술가에 대한 ‘정당한 대우’다.

“그저 동네에서 봉사하듯이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외부 무대에서 받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출연료를 지급합니다. 돈을 제대로 받고 구민 앞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이들을 내 팬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팬층이 형성돼 자급자족할 힘을 키워주는 일, 그것이 진짜 생태계 구축입니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예술가와 구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작업도 병행한다. 구민이 예술의 치유 기능을 직접 체감해야 예술가의 든든한 팬이자 후원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부부 발레’ 프로그램이다. 사이가 소원해진 중장년 부부가 함께 발레를 배우며 관계를 회복하는 이 과정은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처음엔 따로 오던 부부가 나중엔 손을 붙잡고 갑니다. 40~50대 부부들이 발표회를 하는데,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예술이 가진 치유와 소통의 힘이죠. 지난해에는 10여 쌍이 소공연장에서 발표했지만, 올해는 15쌍으로 늘려 더 넓은 공간인 스튜디오601에서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15쌍이면 총 30명이 출연하는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광진문화재단에서 열린 3월 살롱 음악회 모습

재단, 모두를 잇는 다리가 되다

광진구만의 특별한 지리·인구적 특성도 예술 생태계 구축의 중요한 자산이다. 광진구 내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 학부생 4만 명 중 예술·체육·디자인 등 관련학과 졸업생만 매년 수백 명에 달한다.

“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무대를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돕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청춘 아트 브릿지’를 올해부터 시작했습니다. 관내 예술대 졸업생에게 재단의 전문 공연장과 인프라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졸업 공연을 단순히 학교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재단으로 가져와 전문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사회로 넘겨주는 일종의 마켓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 재단 직원들이 직접 기획부터 홍보 마케팅, 무대 조명, 음향까지 멘토로 붙어 재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브리지bridge(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 초 연극과 음악(성악·피아노·관현악)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총 7회의 청춘 아트 브릿지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박계배 사장은 지역 문화예술의 모세혈관이 활성화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 등 상위 기관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광역·국가 단위 단체들이 자체 사업을 대규모로 운영하기보다는, 지역 일선에서 주민과 예술가를 연결하는 기초문화재단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기관인데, 자체 사업을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국 광역시·도에 지원한다면, 지자체에서 그것을 가지고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치구 문화재단에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예술위가 지원해준다면 자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시민을 위해 그러한 지원을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각자의 색깔을 담은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이를 묶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우리 동네 음악회’처럼 수준 높은 콘텐츠를 자치구와 협업해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을 긍정적인 사례로 꼽았다. 상위 기관의 예산이 기초문화재단의 현장성 있는 사업에 매칭될 때 더 큰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끝으로 그는 예술인이 지역 상권과 상생할 수 있도록 예술인 파견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단순 노무로 생계를 잇는 대신, 전공을 살린 예술적 부업을 할 수 있도록 재단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협업하여 매출 증대에 힘써주거나, 지역 공부방의 발달장애 아동에게 연극과 무용을 가르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술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 개선이다. 주민이 예술가의 재능으로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하면, 예술가를 ‘지역에 꼭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

“예술가들이 밤새워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신, 관내 소상공인 가게나 소외계층 교육 현장에 파견되어 자신의 전공으로 땀을 흘리도록 돕고 싶습니다. 관내 예술인들이 재능을 펼쳐 보이고, 구민은 이들을 보며 ‘돌을 금으로 만드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인식을 바꾸게 되는 것이죠. 구민이 그 혜택을 피부로 느끼며 예술가가 지역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때, 이들을 위한 세금도 기꺼이 낼 수 있는 선순환이 완성됩니다.”

최희정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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