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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노래하는 박혜상의 끝없는 여정

클래식 음악계에서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이 가진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흔히 DG, 속칭 ‘전설의 노란 딱지’(음반사 로고가 노란색이다)로도 불리는 이 음반사는, 전 세계 애호가에게 신뢰받고 있다.
그 때문에 DG 아티스트로 음반을 낸다는 것은, 이러한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는 것과 동의어에 가깝다. DG 아티스트 선정 기준에 대해, DG 회장 클레멘스 트라우트만Clemens Trautmann은 아티스트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수백 년 전 작곡된 음악에 새로움을 부여할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함Unique’을 가진 아티스트를 찾는다는 것.
소프라노 박혜상의 음반은 이들이 찾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증명하는 듯하다. 2020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 한국인으론 두 번째로 DG와 전속 계약을 맺은 박혜상은 그해에 1집 <I AM HERA>, 올해 2월에 2집 <BREATHE(숨)>를 발매했다. 이제 단 두 장뿐이지만, 박혜상은 마치 소프라노가 오페라 무대마다 다른 배역으로 변신하듯 음반마다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 특히 음악 작품을 엮어내는 자신만의 생각을 풀어 보였다.
일례로 1집에서 박혜상은 자신의 영어 이름인 ‘헤라Hera’를 전면에 내세우며, ‘나다운 것’을 강조했다. 인터내셔널 음반임에도 한국어로 된 가곡을 삽입하는가 하면, 음반 발매 인터뷰에선 ‘선택적 홈리스’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더욱 기대를 모았던 2집은 음반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중 촬영까지 감행한 박혜상은 팬데믹을 지나며 느낀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 혹은 해답을 엮어냈다. 세이킬로스의 비문 ‘결코 슬퍼하지 말라. 살아 있는 동안 빛나라’에서 영감을 받은 2집에 담긴 이야기에서부터 그와의 긴 대화가 시작된다.

음반 제목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숨’이란 호흡이 중요한 성악가에게 특별한 것이기도 하고, 또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잖아요.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의미를 담았어요. 음반을 준비하면서 어느 날 꾼 꿈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꿈속에서 저는 알 수 없는 에너지에 빛을 가득 선물 받았어요. 그 에너지에 이끌려 물가에 다다랐을 때,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물속으로 빠져들었죠. 그런데 물속으로 들어가자, 흑백이던 그 꿈이 형형색색 무지개와 꽃이 펼쳐진 색의 향연으로 바뀌었어요. 저를 지켜본 사람들은 몇 날 며칠에 걸쳐 삶을 축하하는 파티를 벌였고요. 저는 물속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웃었답니다.

정말 특별한 꿈이네요. 그래서 음반 표지에도 물속에 있는 당신의 모습이 담겼군요. 몸에 힘을 주지 않고, 온전히 내게 주어진 영혼만을 느끼면 거대한 우주에 도구로써 존재하는 나를 느끼게 됩니다. 그때, 마치 제 숨결만 남는 느낌이죠. 이건 비어 있음에 대한 우주의 포옹이자, 순수한 빛이에요. 그래서 그 숨이 닿는 데까지, 우리는 오로지 빛나야 합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느낀 생각 또한 담겨 있다고 들었습니다. 팬데믹 때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런데 이 감정은 누구에게나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자, 오히려 우리를 진실에 다가가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죽음이라는 단어에 깊이 매료됐어요. 특히 이 앨범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방패는, 삶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거죠.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음악가에게 DG와의 음반 작업이란 최고의 업적 중 하나인데요. 이런 괴짜 같은 저를 믿고 기회를 주는 DG에 진심으로 감사하죠. 단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악을 녹음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온 마음과 정신을 쏟아붓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는 특히 정신적으로 소모가 많았어요. 늘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거룩한 책임감도 느껴요. 매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해 앨범을 만들어갑니다

2024년 2월 발매한 박혜상의 두 번째 DG 앨범 <BREATHE>. 루크 하워드 ‘While you live’를 시작으로 베르디·레피체의 음악과 한국 작곡가 우효원의 곡을 포함해 눈길을 끈다. 앨범 발매를 기념한 리사이틀은 2월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오직 노래를 꿈꾼 시간

세계적인 음반사를 사로잡을 특별함이 박혜상에게 내재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운 그는, 정작 피아노 레슨보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이 10분 정도 가르쳐준 노래에 빠져들었다. 노래를 배우는 그 잠깐의 시간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던 소녀. 그때부터 ‘노래’를 꿈꾼 박혜상은 무엇이든 원하는 것엔 도전했고, 타협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더 완벽한 음악을 향한 책임감은 그렇게 깊게 뿌리를 내렸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면, 나는 어떤 아이였나요. 성격이 뚜렷했던 것 같아요. 열정도 많고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얻으려 했어요. 쉽게 포기하지 않았죠. 부모님은 때로 엄하셨고, 예의를 중시하셨지만 제 자유로움이 마음껏 구현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주셨어요.

그러한 성향이 음악가로서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나요. 지금도 저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해요. 음악 앞에서는 최선을 다하려다 보니, 완벽주의 같은 성향도 나타나고요. 성악가로서 여전히 제 자신과 타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래도 나의 최선이 최고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어느 순간 머리로 이해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누구보다 유연하고 단순해지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성악가가 되기를 꿈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제 꿈이 성악가인지는 모르겠어요.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성악가 박혜상’이라는 타이틀이 새겨졌죠. 제 꿈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언제부터 노래를 시작했나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 선생님이 레슨 이후 10분 정도 가르쳐주신 노래 시간을 무척 기다린 기억이 나요. 입학 후에는 교내에서 열린 동요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죠. 합창단에서 10년 정도 있으면서 그 어떤 친구보다 음악을 가깝게 두고 지냈어요. 단원들과 함께 만든 화음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여러 매체를 통해 서울대 음대 졸업 후 줄리아드 음악원에 진학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성악가로서의 성공 여부도 불투명한 때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공 여부는 그때도 지금도 관심 밖이에요. 다만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제 고통이나 좌절을 쉽게 꺾지 못한 것 같네요. 종종 도대체 노래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사활을 걸어야 하나 싶을 때도 많았어요.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눈물을 흘리는 날도 많았죠. 그때마다 결국 음악이 원동력이었어요. 음악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음악 때문에 위로를 받는 걸 보며 결국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았죠.

줄리아드 음악원 시절에 대해서도 궁금한데요. 꿈꿨던 미국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학생이라기보다는, 이미 전문 성악가로 조금 독특한 직장을 다니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생각해보면 하루에 네다섯 명에게 레슨을 어떻게 받았나 싶어요. 저희끼리 농담으론 ‘줄리아드Julliard’를 ‘지옥 학교Jail-liard’라고 불렀으니까요. 그래도 그 시간 덕에 지금은 웬만한 어려움이 와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함께한 친구들, 진짜 음악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가르침은 지금도 큰 영향을 끼치고요. 제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됐을, 감사한 순간들입니다.

2022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수산나 역으로 열연한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연극 연출가 마이클 그랜디지(Michael Grandage)가 연출을 맡았다. ⓒBill Cooper

2023년 10월 열린 한강노들섬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는 로지나 역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매료시켰다.

떠나오고 떠나갈 많은 노래들

박혜상의 음악을 설명하면서,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DG 아티스트이기 전에, 그는 ‘오페라 가수’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성악가가 오페라 가수는 아니다. 더 정확히는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역량을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거대한 오페라극장의 가장 멀리 있는 좌석까지,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로 소리를 보낼 수 있는 발성 기술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이탈리아어·독일어·프랑스어 대본을 이해하고 발음을 통달해야 한다. 극을 끌어나갈 배우로서의 표현법, 연출에 대한 이해 등 극단 생활을 하는 연극 배우와 같은 시간도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오페라극장에서 젊은 성악가들이 이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기도 한다. 흔히 ‘오펀스튜디오Opernstudio’로 불리는 이 과정을 통해 성악가들은 오페라 무대 곁에서 오페라에 대해 체득한다.
박혜상의 시작은 미국의 주요 오페라극장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의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Lindemann Young Artist Development Program에서다. 오페라 가수들과 함께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꿈꾸던 그의 마음은 오페라로까지 확장됐다. 조연에서 시작한 오페라 경험은 점차 주역으로, 미국에서 출발한 무대는 영국과 유럽으로 커졌다. DG와의 계약도, 영국 글라인드본에서 공연한 <세비야의 이발사> 이후 성사됐다.

<세비야의 이발사> 로지나 역이 여러모로 의미가 깊네요. 2023년 10월, 한강노들섬오페라에서도 이 역할로 무대에 올랐어요. 당시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지휘자 김건과 2월에 있을 음반 발매 기념 공연에도 함께한다고요. 작년 10월 공연! 정말 추웠던 것이 기억나네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콧물이 줄줄 나는 데도 노래했어요. 그중에서도 김건 선생님과 함께 만든 음악이 생각납니다. 무대에서 늘 눈을 마주치며, 제가 원하는 그림과 음악적 표현이 일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가수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고 기다려준 분이세요. 제가 본 공연 때 예상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는데, 얼마나 기가 막히게 맞춰주시던지. 공연 후 “깜짝 놀랐잖아요!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게 하십니까”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좋아하셨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정직하고 재치 있게 음악을 이끌어가시는 모습을 보며, 제게 너무 중요한 이번 리사이틀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독일 베를린부터 영국과 미국 뉴욕까지 현존하는 가장 유명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극장의 오페라 무대에 모두 올랐어요. 극장별 개성을 실감한 적도 있나요. 극장도, 관객의 반응도 아주 다르죠. 메트 오페라는 인종이 정말 다양합니다. 스태프부터 카페테리아에 근무하는 분들까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저도 그곳에 있는 게 낯설다는 느낌이 덜해요. 베를린이나 파리의 극장에선 한국인을 만날 때 그렇게 반가워요. 오페라에서 동양인은 제가 유일무이할 때가 대부분이니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멕시코 관객들인 것 같아요! 제 생일에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했는데, 관객 한 분이 “생일 축하해요!” 하곤,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감정을 표현하는 데 꺼리지 않는 그들에게 받은 사랑은, 제가 받아본 생일 선물 중 최고였답니다.

오페라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 외에 종합적인 예술성을 필요로 합니다. 너무 많은 역량이 필요하기에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직업이죠. 끊임없는 여행, 캐릭터마다 맞는 목소리와 발성,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호흡…. 극장마다 제각기 다른 음향 상태에서,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해 예민하게 내 몸을 들여다봐야 하죠. 그 안에 음악도, 감정도, 사무적인 일과 관계도 있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금 떠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동료들을 뒤로한 채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야 해요. 그렇지만 결국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는 그간 준비하며 겪은 자아를 전부 내려놓고 온전히 빈 몸이 돼 그 자리에 임합니다. 내 몸을 통해 캐릭터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캐릭터의 대리인이 되는 거죠. 잘 준비할수록, 무대 위에서는 빈 몸뚱아리만 남아요.

앞으로 어떤 곳에서 공연을 예정하고 있나요? 가장 기대는 것이 있다면요.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프 두다멜의 초대로, LA와 뉴욕에서 공연이 있어요. 아무래도 제일 기대되고 긴장되는 이벤트인 것 같네요. 오페라 공연으로는 프랑스·독일·영국·미국·아르헨티나를 방문할 예정이고, 영국과 남미, 한국에서 있을 투어 리사이틀도 계획대로 잘 이뤄지면 좋겠어요. 이 공연들로, 다음 시즌에 좀 더 성장하는 제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가수는 부르는 노랫말대로 그 운명이 결정된다는 속설 같은 것이 있지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구절이 있을까요? 그런 속설이 있군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대부분 오페라 여주인공이 이야기 뒤에 죽음을 면치 못해서… 작품 속 가사대로 결정된다는 건 믿고 싶지 않네요.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마리아 리타Maria Rita의 ‘Encontros e Despedidas’의 가사를 꼽고 싶어요. ‘도착하는 기차와 출발하는 기차는 같다.’ 안녕Hello도, 안녕Good Bye인 것처럼,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기차역처럼 그대로 서 있는데, 인생은 늘 나를 향해 오기도 하고 나를 두고 가기도 하죠. 무언가를 가지고자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요. 무언가를 쥐기 위해 에너지를 쓰기보다, 오늘 내가 바로 서 있는지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자 합니다.

2022년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연출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다. ⓒKaren Almond/Met Opera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2023년 4월 1일 공연한 베르디 <팔스타프>의 한 장면. 박혜상은 난네타 역을 맡았다. 세련된 해석과 믿고 보는 연출로 잘 알려진 로버트 카슨(Robert Carsen)이 프로덕션을 맡았다. 현재 Met Live in HD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Karen Almond/Met Opera / 새롭게 문을 연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무대에 테너 손지훈과 함께 올랐다. 오페라 아리아는 물론, 한국 가곡까지 다양한 성악의 매력을 들려준 공연 <The Voice> ⓒ부천문화재단

글 월간객석 기자 허서현

사진 AN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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