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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2월호

그럼에도 이어질 극장의 생태
since 1975

숱한 재정난으로 문을 여닫기를 거듭하다 2018년 서울문화재단 위탁 운영으로 부활한 삼일로창고극장. 몇 번째일지 모를 다음 장면을 준비하며 함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

삼일로창고극장 구 매표소

에저또에서 삼일로까지
어느 예술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1970년대는 작품을 올리고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은 시대였을 것입니다. 자본과 시설이 갖춰진 극장들은 대부분 국가 주도의 국책 사업으로 지정된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예술가의 목소리’를 모두 담을 수 없었고, 이에 민간 주도로 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명동 일대에 다양한 소극장이 생겨납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 대표와 단원들이 명동성당 옆 언덕길에 위치한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극장에서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국내 최초로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아레나 무대를 구현한 ‘에저또 창고극장’이었습니다. 추송웅 배우가 운영하는 ‘떼아뜨르 추 삼일로’ 시절 <빨간 피터의 고백>은 초연 이후 4개월 동안 관객 6만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추송웅 배우가 타계한 후 극장 운영은 잠시 중단됐다가 극단 로얄씨어터에 의해 다시 ‘삼일로창고극장’으로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극장은 운영 주체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운영 종료의 이유는 대부분 ‘재정난’이었습니다. 심지어 1991년에서 1998년까지 약 8년간은 극장이 아닌 인쇄소나 김치공장으로 운영된 경우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1975년 12월 20일 극단 에저또 <잔네비는 돌아오는가>(방태수 소장)

이렇듯 숱한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개관과 폐관을 거듭하며 삼일로창고극장이 계속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처음 개관한 이래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설 자리’가 없었던 연극인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실험적인 공연을 시도해볼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공간이었기 때문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1976년 작성된 공연신고서

서울미래유산 아카이브에 수록된 인터뷰 중에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삼일로창고극장을 운영한 윤여성 대표의 그 시절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이 공간이 당시 연극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재개관 당시 소개한 삼일로창고극장의 지난 역사
서울미래유산 아카이브에 수록된 인터뷰 중에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삼일로창고극장을 운영한 윤여성 대표의 그 시절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이 공간이 당시 연극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많은 배우가 창고극장에 드나들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는 된장찌개에 배추 같은 걸 넣어서 끓여주곤 하셨다. 시장 보는 당번이 있어, 그들이 남대문에 가 쌀도 사고 밑반찬도 샀다. 어떨 땐 한 끼에 오십몇 명이 같이 밥을 먹었다. 지금도 가끔 지나가다 우연히 탤런트가 된 후배들을 만나면, 그들이 그때 고마웠다는 인사를 한다. 배고팠을 때 거기에 가면 밥을 줬다는 거다.”

삼일로창고극장 문주와 내부 모습
삼일로창고극장을 소개할 때면 으레 ‘소극장 운동의 산실’, ‘실험적 연극의 시도’ 같은 수사와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따라붙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멋진 이야기들의 또 다른 면을 들여다보면 재밌는 장면들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됩니다.
모진 추위에 잠시 몸 녹이고, 정다운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며 작품 이야기도 하고, 꿈도 꿀 수 있는 ‘사랑방’이자 ‘아지트’가 삼일로창고극장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이 온기가 지금의 삼일로창고극장에도 전해졌을까요?
2018년, 공공의 품에 안기다
개관과 폐관을 반복하며 명맥을 유지해오던 삼일로창고극장은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고,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위탁 운영으로 재개관하면서 부활하게 됐습니다. 민간 소극장으로 시작한 삼일로창고극장이 시민과 현장 예술가의 노력으로 공공의 품에 처음 안긴 순간이었습니다. 극장은 현장 예술가, 서울문화재단 직원으로 구성된 공동운영단이 6년간 운영했습니다. 실험 정신과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시장의 논리에서 좀 더 자유로운, 실험과 탈경계를 지지하는 공간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연극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경계를 허무는 시도들도 해왔습니다.
1975년이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은 늘 작품을 발표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가의 ‘설 자리’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관료를 저렴하게 하고 장벽을 낮춰 진입 단계의 예술인이 마음껏 이용하고 실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삼일로창고극장은 ‘문턱이 낮은 극장’을 선택했습니다.

예술단체 또는 개인이 삼일로창고극장에서 24시간 동안 15분 내외의 작품을 창작·발표하는 <24시간연극제>
삼일로창고극장은 재개관 후에도 여느 때처럼 언제든 동료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장소, 새로운 시도를 존중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이어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이어온 6년간의 성과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매년 정기 대관을 통해 작품 총 88편이 세상에 나와 관객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동운영단 기획의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연극 관련 이론을 다룬 논문을 다시 연극으로 만드는 <퍼포논문>, 공모를 통해 예술단체 또는 개인이 삼일로창고극장 전 공간에서 24시간 동안 15분 내외의 작품을 창작·발표하는 <24시간연극제>, 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 풀어낸 <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 등이 있었습니다. 그중 <창고개방>은 시민과 예술가가 만나고, 예술가가 예술가를 만나 삼일로창고극장의 현재와 미래를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대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극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올해 11월 24일 열린 행사 <창고개방: 태도의 극장사>는 삼일로창고극장이 2018년 재개관 이래 현장의 예술가들에게, 또한 극장 스스로 서울시에 가지고자 한 태도와 실제로 비친 태도를 돌아보며 스스로 평가해보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앞으로 극장의 운영을 맡게 될 또 다른 주체에게 삼일로창고극장이 가지고자 했던 ‘태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주기를 바라며 서울문화재단과 공동운영단이 함께해온 6년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창고개방> 행사는 11월 24일 하루 동안 필리버스터 형식의 포럼으로 운영했는데, 삼일로창고극장과 관계된 많은 사람의 짧은 글을 받아 24시간 동안 발표했습니다. 12월에는 삼일로창고극장 누리집(samilro.com)에 결과자료집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해 <창고개방> 기획자이자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한 허영균 프로듀서(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대표)의 기획안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시민과 예술가가 만나 삼일로창고극장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한 <창고포럼>
그동안 삼일로창고극장은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문턱이 낮은 극장, 다양성과 실험이 포용되는 극장, 안전하게 반기를 들 권리를 지지하는 극장, 불온한 상상마저 건강하게 표현될 수 있는 극장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삼일로창고극장이 말해온 ‘젊음’이란 결코 신체적인 것이 아니었고, ‘낮은’은 수준과 기준이 아니었으며, ‘포용’은 우리만의 취향이 기준이 아니었다. ‘불온함’이야 말로 더욱 살뜰하게 보살펴야 하는 것임을 생각했고, 이런 생각이 극장을 이루는 태도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들의 뜻과 태도는 잘 전달되었을까?”
“우리가 했다는 노력과 취했던 태도는 읽혔나? 인정되었나?”

2023년 <창고개방>은 삼일로창고극장의 태도를 주제로 마지막 포럼을 진행한다. 삼일로창고극장이 주제로 건넸던 이슈들을 다시 꺼내 그것을 이루는 태도에 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다. 재개관 이래 삼일로창고극장과 공동운영단이 함께 일궈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돌아보며 우리를 이뤘던, 우리가 지향했던, 우리가 지속했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태도가 ‘취하는 것’이라면, 삼일로창고극장의 우리는 무엇을 취했고, 취하려 했는지가 함께 논의될 것이다.

삼일로창고극장을 이어 가게 될 (누가 될지 모르는) 민간 위탁 업체에게 우리가 전달해야 할 것은 대상도, 형식도 아닌 ‘태도’일 것이므로. 우리가 취해온 태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계승해주십사 이제부터 우리는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김원용 서울문화재단 삼일로창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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