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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강미선, 고요하게 헤엄치는 백조처럼

자고로 발레는 과시의 예술이다. 다리를 높게 들어올리기 위해, 가뿐하고 높이 뛰기 위해, 빠르고 많이 회전하기 위해 연습하고, 그것이 노력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결과를 무대 위에서 보여야 한다. 가볍게 두 바퀴만 돌고도 대단한 테크닉을 수행한 것처럼 당당해야 하고, 비록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군무)의 일원일지언정 무대에서만큼은 내가 가장 예쁘다는 듯 미소지어야 한다. 그런데 강미선이 걸어온 궤적만큼은 그러한 과시와 거리가 먼 듯하다
지난 6월 들려온 기쁜 소식에 힘입어 여름휴가를 마치고 발레단에 복귀한 그와 만났다. 강미선의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수상은 한국인 가운데 다섯 번째로 기록된다. 앞서 슈튜트가르트발레의 강수진1999, 국립발레단의 김주원2006, 마린스키발레의 김기민2016, 파리오페라발레의 박세은2018이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2023년의 주인공이 강미선인 것은 한국 발레의 발전과 궤를 함께하며 국내 무대에서 20여 년간 ‘롱런long-run’한 그를 향한 찬사같아 더욱 값지다. 런스루를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다시 연습실에 들어선 강미선은 들뜨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여느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오네긴> 3막 파드되 ⓒKyoungjin Kim/Universal Ballet

한국 창작발레에 대한 애정

“그다음 날에도, 일주일이 지나고도, 한두 달이 흘렀는데도 제가 (상을) 받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직 믿기지 않아요. 주변에서 수상 축하한다고 이야기하면 그제야 ‘아, 내가 상을 탔지’ 하고요.(웃음) 언제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렇게 상을 받고 나니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네요. TV 뉴스에 보도된 덕에 아파트 주민분들까지도 축하 인사를 건네시더라고요.”
올해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 후보는 현 파리오페라발레 최고의 스타 도로테 질베르, 마린스키 발레의 메이 나가히사 등 동서양을 아울러 6명. 강미선은 중국국립발레단 추윈팅Qiu Yunting과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시상식이 열린 6월 20일에는 후보들의 갈라 공연이, 21일에는 올해를 포함한 역대 수상자가 참여하는 갈라 공연이 열렸다. 수상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준비해야 했고, 시상식이 열린 직후 무대에 올라야 하는 일정이었다.
“사실 시상식과 특별 갈라를 위해 출국할 때만 해도 상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안 했거든요. 함께 후보에 오른 분들이 워낙 유명한 발레리나들이니까요. 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갈라 공연을 계기로 삼아 한국 발레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알리고 오자는 마음이 컸어요.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고 갔는데,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고 나니 그때부터 부담이 되더라고요.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저 발레리나가 상을 받았는지 궁금할 테니까요.”
강미선에게 수상의 기쁨을 가져다준 작품은 유병헌 안무 ‘미리내길’ 파드되Pas de deux. 죽은 남편을 향한 아내의 그리움을 표현한 남녀 2인무로, 지평권의 음악을 바탕으로 창작돼 2021년 초연했다. 지평권은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프로그램 <오마주 투 코리아>와 여러 편의 한류 드라마 사운드트랙으로 잘 알려진 음악감독이다. 다음 날 열린 갈라 공연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춘향> 중 파드되를 선보였다.
“지난 3월에 공연한 <코리아 이모션Korea Emotion>은 ‘정 情’으로 대표되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녹여낸 작품으로 구성돼 있어요. 그중 ‘미리내길’은 음악으로 국악 연주곡을 사용하다 보니 표현 면에 있어 한국적인 춤사위와 호흡이 많이 묻어나는 작품이죠. 2021년 초연을 준비하면서 안무가와 함께 음악에 어울리는 동작, 표현 등을 구상했어요. 저는 우리 음악에 춤추고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재밌고 좋더라고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어렵고, 꽤 긴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작품에 깊은 애정이 생겼어요. <춘향>도 2007년 초연에 앞서 쇼케이스 때부터 참여한 작품이거든요. 향단이 역할부터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 함께한 작품이라 그런지 두 작품 모두 애정이 가요.”
전 세계 명작 레퍼토리를 두루 보유한 러시아에서 발레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현지 관객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뜨거운 호응과 박수갈채가 뒤따랐고, 공연이 끝난 뒤 개인적으로 찾아와 아름다웠다며 감상을 전하는 관객도 많았다. 우리나라 창작발레가 러시아를 넘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오랜 시간 한국 창작발레에 공들인 덕도 크다.
“<춘향>은 차이콥스키 음악을 사용하거든요. 러시아 볼쇼이극장에서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한국적인 발레를 선보인다는 게 관객에게도 신선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클래식 발레와 마찬가지로 토슈즈를 신고 추기 때문에 하체의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상체 표현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죠. 클래식 발레가 절제하고 상체를 활짝 펼쳐서 정형화된 동작을 보여준다면, 한국적 작품에선 손끝의 힘을 풀고 팔 동작도 조금 더 늘어뜨려 사용해요. 비유하자면 우리 전통무용에서 한삼을 뿌리는 것 같은 에너지를 보여주죠. 특히 호흡에 있어서 차이가 커요.”

차근차근 한 계단씩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은 근속 21년 차를 자랑한다. 평범한 회사원도 아니고 무용수에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2002년 연수단원으로 입단해 차근차근 오르며 지금에 이르렀으니 정말로 그렇다. 그가 처음 무용학원에 발 딛던 때부터 짚어보니 그저 발레만 바라보고 성실하게 춤춰온 시간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미술학원도 다녀보고, 여러 가지를 해 봤죠. 그러다 외숙모께서 무용학원에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여덟 살 때였어요. 월·수·금요일에는 발레를 하고, 화·목·토요일에는 한국무용·현대무용을 했어요. 무용과 함께 일주일을 보냈죠. 시간도 많으니 저녁까지 남아서 춤추는 날도 부지기수였어요. 그중에 발레가 제일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 발레만 전문으로 하는 학원이 있다기에 오게 된 곳이 유니버설 발레 아카데미였어요. 기초반에서 시작해서 2주 지나고 기본반으로, 또 2주 지나고 상급반으로 올라갔더니 전공으로 해 보는 걸 추천하시더군요. 그렇게 아카데미에 다닌 지 한 달 반 만에 입시반에 들어가게 됐어요.”
예술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입시반은 유니버설발레단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어린 강미선은 그때 처음 발레단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엄마의 손을 잡고 위층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 발레단 연습실이 있었다. 아이의 꿈이 발레리나가 된 순간이다. 아카데미에서 빠르게 월반하고 선화예술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꾸준히 강미선과 발레단의 연이 이어졌다. 중학교 재학 중에 <호두까기 인형>의 어린 클라라 역에 발탁돼 리틀엔젤스예술회관(유니버설아트센터) 무대에 섰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 <돈키호테> 등 작품에 객원으로 출연하기도 한 것.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꿈은 자연스레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하겠다는 목표로 또렷해졌다.
이후 그는 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유학을 결정, 2년간 유니버설발레단과 연계된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에 다녀왔다. 스스로 늦은 나이였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춤에 대한 판단이 확고했다고 회고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했고, 치열하게 노력했으며, 짧지만 미국 워싱턴에서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다.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곧장 한국에 돌아와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2005년 드미 솔리스트, 2006년 솔리스트, 2010년 시니어 솔리스트를 거쳐 2012년 수석무용수가 됐다.
“수석무용수가 돼야지, 하는 조급함은 없었어요. 승급과 자리 욕심보다는 내가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대한 목표가 있었거든요. 코르 드 발레에서도 주역을 할 수 있고, 솔리스트나 드미 솔리스트도 주인공을 맡을 수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솔리스트 배역 중에서도 재밌고, 좋아하는 역할이 몇 가지 있어요. 수석이 된 후에도 그런 역할을 할 때면 마냥 좋더라고요. <호두까기 인형> 2막에 나오는 양치기 소녀 역할을 좋아해요. 어릴 때 아역으로 양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 춤춘 양치기 소녀 선생님이 너무 예쁜 거예요. 오랫동안 제 로망이었달까요. 스페인 공주도 너무 재밌죠. 캐릭터 댄스를 좋아해요. <라 바야데르>의 주인공은 니키야지만 감자티 역할도 매력적이고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파랑새도 좋아해요.(웃음) 지금은 안 시켜주셔서 아쉽긴 한데, 어린 친구들에겐 이런 역할이 기회이니 언니가 욕심내기엔 부담스럽겠죠?”

어렵지만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관객의 입장에서 강미선의 춤을 다시 보게 된 계기를 짚자면 존 크랭코John Cranko 안무 <오네긴>을 이야기해야겠다. 1965년 초연한 이 작품은 오페라와 달리 차이콥스키의 음악 여러 편을 플롯에 맞게 재구성해 ‘드라마발레’라 불리는 발레사의 한 장르를 대표하는 명작이 됐다. 유니버설발레단은 2009년 작품의 국내 초연을 성사시켰다. ‘타티아나 역에 캐스팅되기를 꿈꿨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오네긴>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아마도 발레단 내부에서는 저를 올가 역으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리드 앤더슨Reid Anderson 슈투트가르트발레 예술감독이 무용수들의 클래스를 참관하고 캐스팅을 결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저를 타티아나로 발탁한 거죠. 당시 솔리스트였던 터라 부담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하고 싶었던 역할이요? 그때까지만 해도 단원들은 <오네긴>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블라인드로 캐스팅하기 위해 무용수들에게 비밀로 하는 조건이었다더라고요. <오네긴>은 드라마발레 중에서도 묵직하고 깊이가 상당한 작품이잖아요. 초연 때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정신이 없었어요. 파트너와 호흡도 맞춰야 하고, 혼자서 해내야 하는 테크닉도 상당했고, 신경은 쓰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어딘가 좀 닫혀 있었고, 긴장과 부담도 상당했고요. 초연 이후에 여러 차례 재공연하면서 테크닉은 물론 호흡도 여유가 생겼어요. 연기와 표현 면에서 좀 더 몰입할 수 있게 됐고요. 테크닉도 물론 중요하죠. 그렇지만 재공연 때마다 원작 소설을 다시 읽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영화나 드라마·오페라를 찾아보면서 좀 더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해요.”
순진무구한 타티아나가 사랑에 눈을 뜨고,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복잡다단한 인생에 휘말리는 것처럼, 강미선의 타티아나도 점점 더 원숙해졌다. 테크니션이라 생각했던 그의 춤과 표현이 조금씩 조금씩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에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무용수의 입장에서 그간 춤춘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케네스 맥밀런Kenneth MacMillan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요. 그전까지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배역을 물어보면 언제나 ‘줄리엣’이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작품을 제가 할 수 있게 되다니 굉장한 행운이었죠. 너무 행복했어요.”
2023년 상반기 <코리아 이모션>, <지젤>, <심청>, <백조의 호수>를 차례로 공연한 유니버설발레단은 하반기 <더 발레리나> 지방 공연을 시작으로 갈라 공연과 정기 공연 <돈키호테>, <호두까기 인형>을 앞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10월 14일과 15일에 열리는 한강노들섬발레 <백조의 호수>는 조금 특별한 공연이다.
“야외무대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오래전에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 간이 무대를 세워 갈라 공연을 올렸고, 가정의 달을 맞아서 유니버설아트센터 앞에서 공연한 경험이 있죠. 확실히 야외무대는 어려워요. 집중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좋은 점은 운치가 있다는 거예요.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작품은 어둑한 밤에, 한강 앞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잘 어울리잖아요. 출퇴근길에 노들섬을 지나오는데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걸 보면서 ‘저기서 어떻게 공연하지’ 싶다가도, 저기서 공연을 올린다면 많은 사람이 발레를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미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렵지만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있어요.”

<백조의 호수> 중 오딜 ⓒKyoungjin Kim/Universal Ballet

관객에게 한걸음 가까이

2012년 12월 28일, 매년 연말을 장식해온 <호두까기 인형> 무대. 캐스팅은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작품을 마친 무용수들이 커튼콜을 하던 때, 왕자가 반지를 꺼내 무릎을 꿇고 클라라에게 청혼했다. 1천 명 가까운 관객은 그의 용기에 환호를 보냈고,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했다. 이제 이들에게는 막 두 돌을 앞둔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다. 강미선에게 ‘워킹맘’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남편과 저는 거의 같은 길을 걸어온 것 같아요. 제가 입단하고 2년 뒤에 남편이 들어왔는데, 승급 시기가 비슷했죠. 솔리스트가 되면서 파트너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꽤 생겼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좋은 동료였죠. 그러다 수석무용수가 되고 남편과 함께 <호두까기 인형> 데뷔 무대를 준비하게 됐는데, 그때 많은 힘이 돼줬어요. 자신감이 좀 떨어지고, 마음먹은 게 잘 안돼서인지 낙심하고 주눅 들어 있던 상태였는데, 옆에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죠. 밤늦게까지 같이 남아서 연습하고요. 함께 일하다보니 서로의 일상과 스케줄을 잘 알고, 같이 일하고 같이 쉴 수 있어서 좋아요. 지금은 육아를 함께 해나가고 있죠. 부딪치는 때요? 연습실에서 파트너로 티격태격하는 경우가 제일 많죠. 그래도 호흡이 가장 잘 맞는 파트너이고, 서포트를 가장 잘해주는 파트너예요.(웃음)”
최근 들어 출산하고 복귀하는 무용수가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여성 무용수에게 2세 계획은 쉽지 않은 문제다. 한때 임신은 곧 은퇴로 받아들여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강미선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 끝에 아이를 가졌다. 오래 고민한 결과였다.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 발레단의 일정 등 갈등되는 상황에서 춤이 우선한 탓에 미뤄둔 것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외둥이로 자라 성장 과정에서 부쩍 외로웠던 터라 2세의 형제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다.
“출산하고 복귀해서 적어도 1~2년은 춤을 더 추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임신한 뒤에도 계속 연습실에 나와서 꾸준히 클래스를 했죠. 다만 제가 나이가 있다보니 컨디션이 전 같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다가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상심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조금 편안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했죠. 그리고 복귀했는데, 다행히 몸이 아주 힘들지는 않더라고요. 허리는 많이 굳긴 했지만, 오히려 아팠던 골반이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요. 아이를 낳고 돌아와서 보니 후배들에게 ‘얼른 아이 갖고 건강하게 돌아와서 원 없이 춤추라’고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체력이 있을 때 출산도 육아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때쯤 은퇴했겠지만, 아이가 성장해서 인지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을 때 엄마가 춤추는 걸 보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오래 무대에 서는 것도 좋지만 행복하게 춤추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이제 40대에 접어든 강미선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육아도 잘하면서, 체력과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좋은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예요. 그게 단기 목표라면, 이번에 상을 받고는 장기 목표가 생겼어요. 발레를 좀 더 대중화하고 싶다는 거예요. 이번에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빼놓지 않고 전부 하겠다고 한 것도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분들이 발레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물론 저희 발레단에서도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을 열거나 ‘방방곡곡 문화공감’으로 지역을 순회하는 등 발레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요. 이런 노력이 한때의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해서 발레를 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맴돌더라고요. 노들섬에서 올리는 공연도 대중에게 발레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든 힘을 보태고 싶어요.”

김태희 무용평론가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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