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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보고 싶은 얼굴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어 인스타그램 앱을 구동해보자. 그리고 돋보기 버튼을 눌러 ‘#프로필’을 검색해 보기를. 추측건대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렸음에도, 비슷한 형식의 초상사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원색을 배경으로 하는 증명사진이거나, 젊었을 때 아름다운 자태를 남긴다는 목적으로 찍은 보디 프로필이겠지. 아! 몇몇 사진은 일본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묘한 사진들일 테고. 문제는 호기심에 사진 몇 장을 보았더니, 알고리즘이 작동해 돋보기를 터치할 때마다 위와 비슷한 유형의 사진들이 나타난다는 것. 이들을 보다가 문득 ‘나도 이렇게 찍어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MZ세대 소개팅에선 인스타그램 돋보기가 첫인상만큼이나 중요하다던데 난감하기 그지없다.

개인의 취향 영역이라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일 테다. 다만,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천편일률적 사진 행위가 아쉬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런데 최근 초상사진 트렌드와 결을 달리하는 사진 전시가 동시에 열려 눈길을 끈다. 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8월 13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과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의 《DEAR FOLKS》(9월 17일까지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On Stage-Part II》(9월 17일까지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가 바로 그것. 이들 전시가 간간하게 다가오는 건 사진작가가 타인을 찍든 자신이 프레임 속에 등장하든, 인물 표정에서 카메라에 담기는 찰나의 마음 상태가 읽히기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할 수 있다는 의미. 또 인물의 배경 역할을 하는 요소들은 시대상·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사진을 타산지석 삼아 진짜 나의 얼굴은 무엇인지 내면을 성찰할 수도 있다. 사진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소개하는 세 개의 전시를 통해 작금의 초상사진 문화를 반추해보는 것은 어떨까.

먼저, 《평평한 것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 주변부에 눈길을 주는 김옥선의 회고전 성격이 짙다. 전시는 국제결혼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해피투게더’,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정체성을 다룬 ‘함일의 배’, 재독 간호 여성들의 삶을 담은 ‘베를린 초상’, 대만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기록한 ‘가오슝 포트레이트’, 재일외국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신부들, 사라’ 등 작가 생활 20여 년을 집대성했다. 김옥선의 초상사진은 정직하다. 일정한 헤드룸을 유지한 채 눈앞의 인물을 그리며, 결과물에 별다른 수정도 하지 않는다. 포즈 역시 평범해 편안하게 인물을 바라볼 수 있다. 더욱이 사진을 크게 프린트한 덕분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높이에서 내적 대화를 할 수 있다. 《평평한 것들》에서 김옥선은 성곡미술관의 넓은 공간에 사진들을 밀도 있게 연결했는데, 사진들의 응집력이 생긴 까닭인지 보는 이는 자연스레 개인을 넘어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다음으로, 윌리엄 클라인의 《DEAR FOLKS》는 2022년 작가 별세 후 열리는 첫 번째 유고전이다. 흔히 윌리엄 클라인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기억하지만, 기실 그는 사진뿐 아니라 디자인·영화·책·회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였다. 윌리엄 클라인의 팔방미인다운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작품 130여 점과 자료 40여 점으로 구성된다. 그중 그의 상징인 ‘뉴욕’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섹션 3과 메가시티의 거리 풍경으로 이뤄진 섹션 4를 주목하고자 한다. 뉴욕 작업을 진행할 당시 클라인은 “사진의 영도, 가장 날것의 스냅숏을 찍기 위해 나는 스스로 민족지학자라 여기고, 마치 인류학자가 줄루족을 대하듯 뉴요커를 바라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현대 도시 사진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과 캔디드candid(일종의 몰래카메라) 방식 대신, 실제 군중 안에서 정면 돌파를 시도해 그런지 사진에는 인생사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난다. 클라인은 로마·모스크바·도쿄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찾아가 셔터를 눌렀다. 이곳에서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탄생한 사진들은 금방이라도 화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것이 특징. 인상적인 부분은 거리의 사진들이 뮤지엄한미의 긴 벽면에 테트리스 하듯 배치됐다는 것. 미술관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순간을 포착했던 윌리엄 클라인에 동기화되는 착각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On Stage-Part II》에선 현대 초상사진의 아이콘 신디 셔먼의 자화상과 마주할 수 있다. 신디 셔먼은 작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만 레이Man Ray1924가 160억 원에 낙찰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초상사진 기록을 가진 작가였다. (키키 드 몽파르나스Kiki de Montparnasse의 왼쪽 얼굴과 등·허리가 보이는 만 레이의 작품을 초상사진으로 볼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성을 둘러싼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19811981의 가격이 모두 약 51억 원이라면 믿어지겠는가. 초상사진이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대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킨, 영화와 TV 드라마 배우로 변신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1977-80와 거장이 그린 초상화의 주제와 미장센을 패러디한 1988-90, 스텔라 매카트니 남성복과 히치콕 영화의 금발 여배우를 연기한 자신의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활용해 두 명의 인물과 두 개의 정체성을 표현한 2019-20 등을 선보이고 있다. 비록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전시 공간이 작은 탓에 10점만 감상할 수 있으나, 각 작품은 신디 셔먼의 예술 세계가 전환하는 지점들을 대표하기에 작가의 열렬한 팬이라면, 나아가 현대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On Stage-Part II》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더불어 사회적 정체성, 자아 재정립, 패션 등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은 우리를 옥죄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의의가 있으니 ‘여러 가면 뒤에 숨은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사진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길 바란다.

박이현 노블레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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