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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밀라노에서 만난
홈 컬렉션과 공예

지난 4월 17일부터 23일까지 디자인과 공예 관련 브랜드가 한 해 중 가장 주목하는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가 열렸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1961년 이탈리아의 가구 산업 육성을 위해 시작된 가구박람회가 시초로, 놀랍게도 그 성장과 인기가 거듭되며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한 해의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디자인 문화 산업을 이끄는 유명 브랜드의 참여와 도전, 실험, 제안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가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디자인과 공예를 아우르며 박람회장을 중심으로 도시 전역이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박람회장 중심의 전시인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장외 전시인 푸오리살로네Fuorisalone,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와 레스토랑 등이 자발적으로 이벤트를 만들며 축제의 흥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브랜드와 디자이너·공예가들이 펼쳐놓은 전시 덕분에 밀라노 시민들은 볼거리 풍성한 디자인과 공예 전시 관람이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어린이와 반려견을 동반한 가족 단위는 물론 백발의 노인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 행사를 통해 특히 브랜드들은 자신의 매력을 더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며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방을 기반으로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 패션 브랜드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보여준 홈 컬렉션과 공예의 매력을 전합니다. 패션 브랜드가 홈 컬렉션을 선보이는 데는 단순히 몸을 치장하는 것을 넘어 취향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잡기 위해서인데, 이는 자신들의 미학을 공간으로 확장하며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들이 전개하는 홈 컬렉션을 통해 공예를 일상에 어떻게 녹이는지, 공예가 브랜드에 어떠한 영감과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로에베 공예상을 통해 전 세계 공예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로에베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지나칠 일 없습니다. 이심바르디 궁전Palazzo Isimbardi에서 열린 《로에베 체어》는 브랜드 장인들의 솜씨와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22개의 앤티크 의자와 영국의 아틀리에에서 제작한 8개의 스틱 체어를 기반으로 장인과 협업해 30개의 의자를 선보였습니다. 가죽·펠트·양털·노끈 등 다양한 소재로 의자를 휘감거나 등받이를 새롭게 엮어 리디자인했는데요. 이는 브랜드가 꾸준히 강조해온 장인정신과 혁신의 조화를 보여주며 관람객들의 셔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는 의자에 사용된 직조 기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든 가방을 선보이며 장인의 솜씨와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동선을 유도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루이 비통과 에르메스는 오래전부터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주축이 되며 늘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올해도 그 규모나 장소, 결과물 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회자했지요. 에르메스는 1980년대부터 포슬린 도자기·크리스털 등 컬렉션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홈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는데요. 올해는 자신들이 직접 빚은 공간에서 동굴 같은 은근한 조명 아래 콘크리트 골조와 철근 구조물로만 공간을 구성해 제품의 촉각적 심상에 집중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가죽·유리·패브릭 등 좋은 소재와 솜씨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죠. 마치 공예품이 시각은 물론 촉각에 집중하는 것처럼요.

루이 비통은 세르벨로니 궁전Palazzo Serbelloni에서 기존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과 더불어 브라질 출신의 캄파냐 형제Campana brothers, 호주 출신의 마크 뉴슨Marc Newson 등과 협업해 새로운 제품을 공개했습니다. 브랜드의 역사가 여행용 트렁크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요. 루이 비통은 2012년부터 브랜드의 오랜 철학이자 핵심 가치인 ‘여행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가구와 소품 컬렉션인 ‘오브제 노마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해먹·안락의자·침대 트렁크 등 브랜드의 장인 정신과 기술력,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결합한 다양한 제품을 구성해 발표하고 있지요. 2022년 여름 10년간 발표한 리빙 제품 60여 점을 한데 모아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 전시를 개최해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고급 소재로 정평이 난 로로피아나는 자신들의 매장 내 작은 정원에 작가와 협업한 설치물을 선보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자이너 크리스티안 모하디드Cristian Mohaded와 함께 ‘돌탑’ 컬렉션을 공개하며 원단 조각으로 작품을 제작해 브랜드와의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토즈는 사진작가 팀 워커와 함께 프로젝트 ‘장인정신의 미학’을 공개했는데요. 팀 워커는 토즈가 가방·로퍼 등을 만들 때 가죽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붓질하는 단계를 초현실적 방식으로 재해석해 이미지와 비디오로 완성했습니다. 토즈 공방에서 직접 본 제품 제작 과정을 ‘초현실적 초상화’라는 테마로 풀어낸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제품 뒤에는 그것을 만드는 도구가 있고, 도구 뒤에는 이를 사용하는 장인의 손기술과 지식이 있음을 상기합니다.

한편, 패션 브랜드가 선보인 홈 컬렉션 외에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행사 중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어 번외편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밀라노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로, 이탈리아 최초의 디자인 전문 박물관인 트리엔날레 밀라노 디자인 뮤지엄Triennale di Milano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의 자개 공예전과 일본의 죽공예 전시가 열렸는데, 한국의 두손갤러리가 기획한 《마더 오브 펄 테이블Mother-of-Pearl Tables》은 할머니 장롱으로 기억되는 자개 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민트갤러리의 리나 카나파니Lina Kanafani 대표, 루이 비통과 협업해온 디자인 스튜디오 아틀리에 비아게티의 알베르토 비아게티Alberto Biagetti 대표 등의 거물이 행사장을 찾아 이슈가 되기도 했죠.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자개 가구는 동양의 문화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건물 1층에는 일본의 죽공예품만을 모은 전시가 열렸습니다. 아시아권에서만 발달되어온 죽공예품은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 곳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돼온 물건 중 하나인데, 산업화로 그 자리를 대신하는 물건이 쏟아지며 생활 속 죽공예품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바구니·물통·바가지·부채 등 산업제품이 대체한 다양한 생활 물건을 전시해 흥미를 끌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인과 공예를 한 도시에서 압축해 볼 수 있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통해 럭셔리에 대한 수요와 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패션 브랜드도 영역을 확장하며 라이프스타일 전방위를 다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예는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도 몸소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박은영 공예·디자인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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