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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5월호

안도 다다오의 청춘학개론

“‘전시장에 건축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축 전시의 모순과 한계를 뛰어넘는 시간일 거예요. 뮤지엄 산 자체가 가장 큰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이죠. 제 건축적 사고와 실험의 산물인 드로잉·모형을 살펴보는 것과 더불어 이들이 발전돼 탄생한 공간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한 개인전을 두고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산상 낙원’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현재 안도 다다오あんどう ただお의 건축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7월 30일 막을 내리는 《안도 타다오-청춘》은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안도 다다오가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 최초로 개최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의 펀치라인은 미술관 안(전시 콘텐츠)과 밖(건축물)이 연속성을 갖는 안도 다다오의 총체라는 것.

새뮤얼 울먼Samuel Ullman의 시 <청춘>에는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닌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어버릴 때 늙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벌써 알아챘겠지만, 이번 전시의 테마는 ‘청춘’이다. “어린 나이만이 청춘을 의미하진 않아요. 살아 있는 동안이 전부 청춘이에요. 돌아보면 제 삶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정식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고, 암에 걸려 다섯 개의 장기를 적출했죠. 지구상에서 저만큼 장기가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웃음) 그런데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어요. 절망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즐거운 일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저처럼요.”

이러한 안도 다다오의 청춘관을 집약하는 건 풋사과 조형물이다. 뮤지엄 산 곳곳에선 크고 작은 풋사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엔 무슨 일이 있어도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도전 의식과 좌절하더라도 꺾이지 않겠다는 청춘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중 전시장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3미터 높이의 조형물은 한 번씩 만질 때마다 수명이 1년 늘어난다고 하니 지나치지 말기를 바란다.

이번 한국 전시는 안도 다다오 순회전의 일환으로, 2017년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출발해 파리·밀라노·상하이·베이징· 타이페이를 거쳐 2023년 4월 원주에 도착했다. 앞서 언급했듯, 전시는 몇 살이 되든,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든, 희망을 품고 영원한 청춘을 살고 싶은 바람을 이야기한다.

전시장은 크게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먼저, ‘공간의 원형’은 1969년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 작품을 기반으로 한다. <도시 게릴라 주거>1973, <스미요시 주택>1975-76, <물의 교회>1985-88, <빛의 교회>1987-89, <물의 절>1989-91, <유네스코 명상 공간>1994-95 등을 보노라면, 절로 일본 전통 가옥의 ‘사이間’를 현대화한 도시 건축 방식, 건축과 장소와의 관계성을 고찰하게 된다.

30여 년에 걸친 나오시마 재생 프로젝트와 <포트워스 현대미술관>2012, <붓다의 언덕>2012-15, <나카노시마 어린이 책 숲 도서관>2017-19 등으로 구성된 두 번째 섹션 ‘풍경의 창조’는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공공건축을 보여주며, <상하이 폴리 대극장> 2009-14, <JCC크리에이티브센터& 아트센터>2010-14, <LG아트센터>2022 등을 선보이는 세 번째 섹션 ‘도시에 대한 도전’은 도시화·산업화 속에서 건축의 공공성 회복을 내세운다. 눈길을 끄는 건 나카노시마 어린이 책 숲 도서관이다. 어린이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안도 다다오가 직접 지자체를 설득, 주변 차도를 모두 인도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네 번째 섹션 ‘역사와의 대화’는 건축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역사성·장소성을 존중하며 읽어낸 독특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실행력이 돋보이는데, 단연 하이라이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세관을 현대미술관으로 재생한 <푼타 델라 도가나>2006-09, 파리의 옛 곡물 거래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부르스 드 코메르스>2016-21 등이다.

여기서 잠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노출 콘크리트’를 짚고 넘어가 보자. 브루탈리즘Brutalism(우아함을 추구하는 건축에 반기를 들며 등장한 건축 경향. 건축의 기능과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콘크리트와 철제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을 대표하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영향을 받은 안도 다다오가 1970년대부터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해온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 흥미롭게도 그가 콘크리트를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건물 내부와 외부를 일체로 만드는 경제성에 끌렸습니다. 하지만 사용해보니 건물을 다양한 표정으로 연출할 수 있는 가소성에 매력을 느꼈어요. 콘크리트라는 현대의 흔한 공법으로 누구도 할 수 없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다는 도전 의식도 생겼고요.”

뮤지엄 산은 물론 안도 다다오의 손길이 닿은 공간 벽면을 만져보면 알겠지만, 그가 빚어낸 콘크리트의 촉감은 매우 부드럽다. 나무와 종이 건축에 익숙한 일본인의 미의식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일견 간단한 공정으로 보이나, 안도 다다오는 만족스러운 표면을 얻을 때까지 거푸집을 제작하고, 물과 시멘트의 비율, 철근의 굵기와 간격 등 세밀한 부분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 결과 낯섦 속에서 익숙함이 느껴지니 일본의 국민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또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는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뮤지엄 산 명상관, 마음의교회(경기도 여주 소재), 지추미술관(일본 나오시마 소재) 등 공간에 들어서면 절로 경건해질 정도. 이에 관해 비평가 아사다 아키라あさだ あきら는 “내부에 조망과 빛, 바람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구사함으로써 외연적으로는 크지 않아도 내포적으로는 매우 풍부한 공간을 만든다”고 논한다.

《안도 타다오-청춘》 개막 전 안도 다다오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건축가로서 반세기를 돌아보는 자리지만, 회고전이라 부르고 싶진 않습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건축할 것인가?’라는 질문처럼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기획했으니까요”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장을 돌아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그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옛 건물을 재활용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건축을 지향하는 것이 이를 대변할 터. 더욱이 그는 어린이 도서관을 짓는 일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희망을 건축한다고 해도 좋겠다. “새로운 것을 찾다 보면, 희망을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얼마 전 천국과 상담했더니 20년은 더 살라고 하더군요.(웃음) 그때까지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 거예요. 나아가 50년 넘는 세월 동안 축적된 제 경험과 생각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마친 그는 이내 폴짝 뛰어 내려왔다. 마치 또 다른 도약을 기약하듯이.

박이현 노블레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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