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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힘을 얻는 애도의 시간 프로젝트그룹 SAVE <방문자들>

연극 <방문자들>(삼일로 창고극장, 2022.5.27~6.5)

불행 앞에서 이유를 묻는 것은 부질없는 행위일까. 어느 현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느냐고 묻는 이에게 그가 불행을 겪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었다고 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답은 폭력이라는 불행에 대한 재해석의 시작이지만, ‘왜’라는 질문의 종착지는 될 수 없다. 어느 날은 한 줄의 답변이 다 쓰이기도 전에 또 다른 기억이 일렁이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파도에, 이 질문 하나를 붙들고 몸을 싣기도 한다. 때로는 “네 탓이야”라는 답이 두려워 차마 집어 들지 못했던 질문, 때로는 나도 모르게 움켜쥐고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질문. 연극 <방문자들>은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수없이 던져온 ‘왜’라는 질문을 생의 최후까지 놓지 않았던 정유리와, 떠난 그의 질문을 받아 안을 수밖에 없을 목격자들의 이야기다.
공간 디자이너 정유리에게 첫 의뢰가 들어온다. 하지만 의뢰인은 정유리를 스토킹하는 김태준이다. 제작진은 자신이 스토킹하는 정유리에게 신분을 숨기고 디자인을 의뢰한 김태준 소유의 스튜디오로 관객을 들여보낸다. 맞은편 관객과 마주 보도록 극장 양 측면에 나란히 줄지어 놓인 객석 뒤로 무대 뒷벽과 같은 디자인의 벽이 세워져 있어 관객은 등장인물과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초보 디자이너인 유리는 의뢰인의 요청대로 첫 디자인과 시공을 마무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내부에 있던 벽을 모두 허물고 화장실조차 벽 없이 변기만 덩그러니 놓도록 리모델링한 디자인에, 인부는 계속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며 유리를 비난한다.
공연 홍보물의 시놉시스를 읽은 관객이라면 태준이 유리를 감금하고 감시하기 위해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공간 디자인을 의뢰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객석 뒤의 벽과 무대 뒷벽 사이의 등·퇴장로가 끝없이 깊을 것만 같은 느낌, 쇠사슬로 고정된 천장의 프레임과 샹들리에가 유독 위태로워 보이는 느낌 역시 그런 긴장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준이 유리의 파티 참석을 위해 보낸 웨딩헬퍼에게서 유리는 드레스를 건네받고 유리의 화장이 마무리될 무렵 정장 차림의 태준이 들어온다. 의도치 않게 태준이 원하는 공간으로 스튜디오를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한 유리는 자신의 손으로 디자인한 공간 안에서 주인도 방문자도 되지 못한 채 고립된다. 웨딩헬퍼가 있어도, 유리 어머니의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들어와도, 시공을 마치고 돌아간 인부에게 전화가 걸려 와도, 유리와 태준 사이의 폭력적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태준이 나타나는 순간 얼어붙은 유리, 태준의 나직한 몇 마디에 미안하다는 말을 익숙하게 뱉는 유리의 모습을 통해 유리를 가둔 벽은 관객에게 그 질감과 두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방문자들은 방음 처리된 둔중한 극장 문을 통해 스튜디오를 드나든다. 태준도, 인부도, 웨딩헬퍼도, 경찰관도, 파티에 초대받은 유리의 친구도 스스럼없이 벌컥 열었던 문을 오직 유리만 열지 못한다. 유리가 열 수 없는 문으로 한때 유리에게도 닿아 있었던 세상의 조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리는 자신의 힘으로도, 시시각각 연락을 취해 유리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어머니의 힘으로도, 태준의 폭력으로 끊긴 세상과의 관계를 이을 수 없기에 절망한다.
태준의 대사는 친밀한 관계의 폭력이 가진 패턴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유리의 목소리로 들려야 할 유리의 요구를 탈취하는 태준의 모습이 숨이 막히도록 익숙하다. “그 정도 생각은 할 수 있잖아. 날 설득하려고 하기 전에, 내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내가 말할 때 한 번만이라도 내가 왜 이렇게 말을 하는지 생각해 봤다면 난 당신에게 적어도 좋은 남자로 남았을 거야.” 폭력의 현실적 묘사와 함께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유리의 노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창작진의 고민 역시 곳곳에 드러난다. 태준의 폭력 행위와 유리의 반응은 말초적 자극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필요한 인상을 남기도록 섬세하게 조절돼 있다. 공연은 태준의 폭력에 제압된 유리를 더 긴 시간 보여주면서도, 유리가 드레스를 내던지는 단 한순간의 저항을 결코 잊지 못하게끔 구성돼 있다. 유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폴론에게 희생된 다프네를 모티프로 한 사진 허브 릿츠의 <회전초를 든 네이트>와 겹치고, 다프네의 신화가 유리를 위한 애도의 공간을 내어준다. 신화가 품은 광활함이 현실의 불안을 잠시 내려둔 채 유리를 애도하도록 한다.
커튼콜이 끝나고 방문자들이 열었던 문을 통과해 극장 밖으로 나가는 관객을 통해 유리를 위한 애도의 공간은 더욱 넓어질지도 모른다. 극 속의 방문자들이 태준의 스튜디오로 발을 들이는 동시에 폭력에 연루되고 유리의 죽음을 발견함으로써 유리가 남긴 질문을 이어받듯, 관객은 극에 쓰이지 않은 방문자들의 변화를 극장 밖에서 그려낼 몫을 지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애도의 시간이, 폭력의 구조를 허물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동력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글을 맺는다.

이산_배우, 성평등교육활동가. 마임과 연극을 하고 교육단체 ‘성평등작업실 이로’를 운영한다.삶의 경이로움을 잊지 않기 위해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다. sanlee.mime@gmail.com | 사진 제공 프로젝트그룹 SAVE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됐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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