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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말

주철환의 마지막 더다이즘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별을 이야기하려니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제목 몇 개가 구름처럼 피어오릅니다. 그중 하나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입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이던 1977년만 해도 문학잡지 몇 권은 가방 속에 넣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그해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린 윤흥길의 중편소설입니다. (검색해보니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에서 소외된 계층의 삶과 소시민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포착한 문제작”이라고 나옵니다.)
일곱 번째 직장을 마무리하며 이상하게도 이 소설 제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일곱 번의 직장을 가졌다는 건 직장동료들과 일곱 번의 이별을 했다는 뜻입니다. 과연 나는 일곱 번의 직장생활을 통해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나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옛날 노래 하나도 입에서 맴돕니다. 제목은 <이별의 종착역>(손석우 작사·작곡)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이 나그네 길 안개 깊은 새벽 나는 떠나간다 이별의 종착역.”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별하는 역은 종착역이기도 하지만 출발역이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다시 그 역에서 상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별의 아픔은 역시 슬픔과 맞닿아 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이별 앞에 흔들리는 저를 ‘휩싸고 돕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감정의 물살은 마침내 ‘가족과 사랑에 대한 따뜻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가’ 노희경의 대표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까지 이릅니다. “가족을 위해 삶을 희생한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지만 “이별의 순간, 그날 이후 그들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는 게 이 작품의 진짜 주제입니다. 1996년 MBC 창사 특집 드라마로 시작하여 2011년에는 영화로도 개봉되었습니다.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는가 하면 tvN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으니 명작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수필 한 자락도 떠오릅니다. 제가 졸업반 때 모교에 교생실습 나가서 가르쳤던 이양하의 <신록예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命名)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루 동안에 가장 기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는 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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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리’와 ‘자유’에 대해서 숙고해봅니다. 사람에겐 머물러야 할 ‘자리’도 중요하지만 떠날 수 있는 ‘자유’도 소중합니다. 자유가 제한된 자리보다는 자리 없는 무한의 자유가 그리울 때, 그때가 이별하기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 일곱 번째 직장에 머무른 기간이 딱 700일입니다. 누군가는 고작 700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했기에 그 700일은 영원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700이라는 숫자를 헤아려보다가 문득 MBC가 1996년 12월에 창사 특집으로 방송한 다큐멘터리 <700년 전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700년 전쯤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해상무역선인 신안 유물선을 복원하여 그때의 바닷길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항해 형식을 취한 특집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침몰한 배와 그 속의 보물은 바닷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에게 이번 일터에서 만난 가족들도 깊디깊은 심연의 기억 속에서 영원한 보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저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디로 떠나는가.” 공간을 떠나는 것이지 인간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곁을 떠나는 것이지 그대의 속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눈앞을 떠나 그대의 마음속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님의 침묵> 중에서) 함께한 매일매일 행복했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감사와 사랑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어쩔 도리 없이 마지막 단어는 ‘사랑’으로 맺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_ 유치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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