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연극의 산실로 불리는 삼일로창고극장이 ‘다시’ 문을 엽니다. (‘다시’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부사입니다.) 그동안 문을 열고 닫기를 수차례 반복해왔습니다. 운영을 맡은 서울문화재단 대표로서 재개관식 초대의 글을 의뢰받으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대학 시절에 처음 연극을 본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친구를 만나 극장 쪽으로 걸어 올라가던 시절의 발걸음은 꽤 설습니다. 그 느낌을 어떤 언어로 되살릴 수 있을까요. 이럴 땐 노래가 제격입니다. 예전에 흥얼거렸던 유행가 한 소절이 퍼뜩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일이면 추억 남길 삼일로 고갯길.’
기억하는 분이 많지 않겠지만 노래 제목은 <삼일로>이고 가수 이름은 여운입니다. (이분은 지금도 가끔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당시엔 아이돌 가수 못잖은 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삼일로>도 대중에게 사랑받았지만 이분의 최고 히트곡은 따로 있습니다. 제목이 <과거는 흘러갔다>입니다. 2절 가사가 특히 애잔합니다. ‘잃어버린 그 님을 찾을 수 있다면 까맣게 멀어져간 옛날로 돌아가서 못다 한 사연들을 전해보련만 아쉬워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부활한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잃어버린 그 님’을 찾는다면 그 님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인물은 연극배우 추송웅(1941~1985)입니다. (그와 동갑인 배우 중 김혜자, 나문희, 강부자 씨 등은 지금도 장르를 오가며 활동 중입니다.) 추송웅 씨 하면 올드팬들은 두 작품을 기억할 겁니다.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터의 고백>과 일일드라마 <달동네>입니다.
‘빠알간 피터’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작은 극장 앞에 몇 달 동안 수만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의자도 없고 바닥에 앉아서 연극을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많은 관객은 도대체 무엇에 홀렸던 걸까요?
도시 속 실향민들의 삶을 그린 <달동네>의 시청률 역시 엄청났습니다. 당시는 추송웅이라는 이름 대신 ‘똑순이 아버지’로 더 유명했습니다. 흑백TV가 컬러로 바뀔 무렵이어서 시청자들은 흑백의 달동네로 시작해 총천연색 달동네로 끝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탤런트 김민희는 평생 ‘똑순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사는데, 사실 그 역할은 추송웅 씨의 딸인 추상미 씨가 맡을 뻔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도 있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일빌딩이 있었는데 1970년대에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삼일로와는 관계없이, 31층이어서 삼일빌딩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 후 63빌딩이 생기면서 명함도 못 내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잠실에는123층 건물까지 들어섰는데 연극배우가 서야 할, 서고 싶은 변변한 극장들은 왜 늘어나지 않는 걸까요?
삼일빌딩은 그대로인데 삼일로창고극장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애초에 창고가 극장이 된 것은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반대로 극장이 창고가 되는 현실은 적잖이 안타까웠습니다. “예술이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 한동안 삼일로창고극장 외벽에 붙어 있던 ‘명언’입니다. 과연 이 말로 몇 명의배우가, 연출가가, 극작가가, 스태프가 위로받았을까요? 추송웅씨가 창고극장에서 안방극장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겁니다.
삼일로창고극장이 문을 닫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한마디로 ‘경영난’이었습니다. 왜 이 땅의 연극, 아니 무대는 대부분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을까요? 그사태를 지켜보면서 김수영 시인(1921~1968)의 시 <공자의 생활난>이 교묘하게 오버랩된 적이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도 한때연극에 몰두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의 여운이 강렬합니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부흥은 박수와 눈물로도 가능하지만, 부활의 전제조건은 언제나죽음입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연극에 임해야 무대가 부활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서울미래유산으로지정된 삼일로창고극장의 부활을 위해 서울시와 함께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극장은 연습실과 갤러리를 갖춘 지원시설로 다시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이제 연극인들과 손을 꽉 잡고 연극의 부활을 모색하고 협의하고 실천할 것입니다.
안방극장엔 광고와 영상이 있지만, 창고극장엔 사람과 호흡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들과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은 극장을 찾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저희가 할 일은 ‘창고’ 대방출입니다. 하지만 ‘싸게’ 만들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삼일로창고극장이 지향하는 두 개의 기둥은 품격과 파격입니다. 초심, 진심, 열심을 바탕으로 시대정신과
청년정신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윤동주의 <서시>가 뽑힌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다짐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죽어가는 무대를 되살리기 위해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많은 시인이 서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김수영의 <서시>(1957)에 나오는 구절로 오래된 희망을 불러내고싶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