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보면 ‘사람’이라는 단어 가까이에 ‘사랑’이 배치돼 있습니다. 어느 날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보다가 그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JTBC 개국을 준비하면서 첫 번째 드라마로 노희경 작품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입니다. 몇 번을 졸라서 받아낸 작품이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였습니다. 주제곡인 노을의 <살기 위해서>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납니다. 당연히 제 심장도 ‘빠담빠담’ 출렁거립니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는 유독 사람 냄새가 짙게 묻어납니다.
“서로 사랑해야 사람인데 왜 사람들은 혼자 외로워하고 서로 괴롭히며 사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안지를 작가는 시청자에게 슬쩍 건넵니다. 올봄에 방영된 <라이브>도 그렇습니다. 범죄스릴러가 아닌데도 등장하는 주요 인물 4명의 직업이 모두 경찰입니다. 제 기억으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제작진은 “경찰이 시민(국민)들에게 공권력으로 각인되기보단 제복 입은 성실한 국민과 시민, 민원과 치안을 해결하는(시달리는) 감정노동자로 기억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말합니다. 때가 때인지라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경찰이 주인공이니만큼 미란다 원칙이 자주 등장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소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경찰은 업무 수행 시 미란다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데 반해 학교나 직장에서는 여전히 ‘묻지 마 원칙’이 횡행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미투 운동’이 불길처럼 번질 때 서울문화재단은 조용히 관망만 하진 않았습니다. 미란다 원칙과 발음이 비슷한 ‘말한다 원칙’을 제안하고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지금(Right Now) 즉시(Right Away) 그 자리에서(Right Here) 말하자는 겁니다. 무슨 말을 하냐고요? 첫 번째 말은 ‘불쾌합니다’, 만약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으면 ‘신고합니다’, 이게 요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길을 가는데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하라는 수칙은 여러 차례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멧돼지가 놀라지 않도록 차분히 행동하고 절대 뛰지 말아야 하고…. 그런데 눈앞에 실제로 멧돼지가 나타났는데도 그렇게 차분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학습과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생 동안 멧돼지를 몇 번이나 마주친다고 그런 연습까지 하냐고요? 요즘 뉴스도 안 보시나요? 도심 한복판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상대방이 멧돼지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면 어떨까요? 살면서 마주치는 어떤 사람은 노희경 드라마의 제목 <꽃보다 아름다워>처럼 꽃보다 아름답지만 또 한 편의 어떤 사람은 멧돼지보다 무섭고 미세먼지처럼 해롭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남이 멧돼지에게 공격당하는 걸 목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고도 모른 체한다면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멧돼지를 물리치도록 여럿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재빨리 더 많은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중요합니다.
‘미투 운동’의 진원지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주변 사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자칫하면 목격자는 방관자가 될 수 있고 방관자는 공범자로 몰릴 수 있습니다. 약자를 괴롭히는 자를 목격하면 ‘경고합니다’,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실천에 옮기고 또 사전에 미리 교육, 연습, 훈련하자는 게 이른바 ‘말한다 원칙’의 요지입니다.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언어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하기보다는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혜가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고 연대가 필요하고 정의감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이런 교육은 필수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은 후 여운이 남는 질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왜 그냥 참는가?”가해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사롭게 당당하게 움직이는데, 그걸 가까이서 바라보는 피해자는 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가 묻는 질문입니다. 더 힘들어질까봐, 이상한 사람으로 소문날까봐, 항의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면서 점점 속은 타들어가고 업무의욕은 사라지고 표정은 어두워지고 친구들은 멀어지고….
‘말한다 원칙’은 비단 나쁜 감정만 전달하자는 게 아닙니다. 좋은 감정도 표현하는 것으로 확장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이웃들은 왜 그렇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데 인색합니까? ‘굳이 말해야 아나?’ 이런 얘기는 이제 거둡시다. 감사할 때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고 죄송할 때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사랑할 때 사랑한다 말하지 않으면 사랑의 불고지죄를 저지르는 거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느낄 때 사랑을 바로 표현하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것이 진실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충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또한 상대방은 그 사랑의 표현이 불쾌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공감능력의 유무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상대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져서 ‘말한다 원칙’은 웃기는 조례 정도로 취급되는 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