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더다이즘, 여섯 번째 공터에서 하늘을 보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엔 옥상정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선 완전히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볼 때면 대학교 4학년 때 모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적이 떠오릅니다. 국어 수업을 맡았는데
그때 제가 가르친 수필 제목이 ‘신록예찬’입니다.”
거기에선 완전히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볼 때면 대학교 4학년 때 모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적이 떠오릅니다. 국어 수업을 맡았는데
그때 제가 가르친 수필 제목이 ‘신록예찬’입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신작을 준비한다고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설렜습니다. 나오면 곧바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거라 짐작했고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추측은 아닙니다. 소설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대체로 그 정도
예상은 했을 겁니다.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려면 대충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인지도, 호감도, 신뢰도입니다. 일단 존재를 알리고 호감을 얻은 후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믿고 읽는 작가, 믿고 보는 배우는 이렇게 생기는 거죠.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믿음이 깨지면 호감은 무너지고 결국 기억에서도 사라지게 됩니다.
김훈 작가의 이번 소설 제목은 <공터에서>입니다. 예전에 저는 삶의 터전을 여러 군데로 나눠본 적이 있습니다. 쉼터, 배움터, 일터, 싸움터, 놀이터, 이렇게 다섯입니다. 가정은 쉼터, 학교는 배움터, 직장은 일터, 군대는 싸움터입니다. 놀이터는 다양합니다. 누군가에겐 극장이나 공연장이, 누군가에겐 게임방이나 운동장이 놀이터입니다.
이 장소들은 종종 영역이 겹칩니다. 특히 싸움터가 그렇습니다. 사이가 틀어진 가족에겐 쉼터가 싸움터입니다. 국회는 언제부턴가 일터이자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다 보니 즐거워야 할 교실조차도 싸움터로 바뀌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에겐 일터가 놀이터입니다. 연기가 즐거운 배우에게 무대는 일터이자 놀이터입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던 곳은 일터, 놀이터, 배움터, 싸움터가 겹치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살면서 여러 터전을 거치고 또 머물렀지만 공터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문득 기억이 1970년대 초동 스카라 극장 맞은편으로 향합니다. 거기에 제가 자주 다니던 맥줏집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글레이드(glade)였습니다.
‘숲속의 빈터’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공터지만 그곳은 제게 쉼터이자 놀이터, 그리고 배움터였습니다. 거기엔 술이 있고 음악이 있고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많이 대화하고 토론도 했습니다. 언젠가 그 ‘숲속의 빈터’에 새 건물이 들어섰을 때 제 청춘의 버팀목이 힘없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엔 옥상정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선 완전히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볼 때면 대학교 4학년 때 모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적이 떠오릅니다. 국어 수업을 맡았는데 그때 제가 가르친 수필 제목이 ‘신록예찬’입니다. 글을 쓴 이양하 선생의 문장이 아름다워서 지금도 줄줄 외고 있습니다.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五欲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寧日, 편안한 날)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제가 다니는 직장은 계단마다 공연, 전시, 축제, 포럼을 알리는 포스터가 훈장처럼 붙어 있습니다. 사무실마다 문화 예술서적들이 꽉 차 있습니다. 층마다 별책부록처럼 꾸며진 작은 사랑방에선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 그곳들을 기웃거리며 작은 시비(?)를 거는 게 저의 소박한 즐거움입니다.
출근할 때는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오릅니다. 마침내 제 사무실이 있는 5층에 이르면 입구의 세 글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감사팀. 저는 그것을 ‘감시와 사찰’로 읽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아무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이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공터와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는 혜택에 오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려면 대충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인지도, 호감도, 신뢰도입니다. 일단 존재를 알리고 호감을 얻은 후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믿고 읽는 작가, 믿고 보는 배우는 이렇게 생기는 거죠.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믿음이 깨지면 호감은 무너지고 결국 기억에서도 사라지게 됩니다.
김훈 작가의 이번 소설 제목은 <공터에서>입니다. 예전에 저는 삶의 터전을 여러 군데로 나눠본 적이 있습니다. 쉼터, 배움터, 일터, 싸움터, 놀이터, 이렇게 다섯입니다. 가정은 쉼터, 학교는 배움터, 직장은 일터, 군대는 싸움터입니다. 놀이터는 다양합니다. 누군가에겐 극장이나 공연장이, 누군가에겐 게임방이나 운동장이 놀이터입니다.
이 장소들은 종종 영역이 겹칩니다. 특히 싸움터가 그렇습니다. 사이가 틀어진 가족에겐 쉼터가 싸움터입니다. 국회는 언제부턴가 일터이자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다 보니 즐거워야 할 교실조차도 싸움터로 바뀌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에겐 일터가 놀이터입니다. 연기가 즐거운 배우에게 무대는 일터이자 놀이터입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던 곳은 일터, 놀이터, 배움터, 싸움터가 겹치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살면서 여러 터전을 거치고 또 머물렀지만 공터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문득 기억이 1970년대 초동 스카라 극장 맞은편으로 향합니다. 거기에 제가 자주 다니던 맥줏집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글레이드(glade)였습니다.
‘숲속의 빈터’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공터지만 그곳은 제게 쉼터이자 놀이터, 그리고 배움터였습니다. 거기엔 술이 있고 음악이 있고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많이 대화하고 토론도 했습니다. 언젠가 그 ‘숲속의 빈터’에 새 건물이 들어섰을 때 제 청춘의 버팀목이 힘없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엔 옥상정원이 있습니다. 거기에선 완전히 드넓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볼 때면 대학교 4학년 때 모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적이 떠오릅니다. 국어 수업을 맡았는데 그때 제가 가르친 수필 제목이 ‘신록예찬’입니다. 글을 쓴 이양하 선생의 문장이 아름다워서 지금도 줄줄 외고 있습니다.
“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五欲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寧日, 편안한 날)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제가 다니는 직장은 계단마다 공연, 전시, 축제, 포럼을 알리는 포스터가 훈장처럼 붙어 있습니다. 사무실마다 문화 예술서적들이 꽉 차 있습니다. 층마다 별책부록처럼 꾸며진 작은 사랑방에선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 그곳들을 기웃거리며 작은 시비(?)를 거는 게 저의 소박한 즐거움입니다.
출근할 때는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오릅니다. 마침내 제 사무실이 있는 5층에 이르면 입구의 세 글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감사팀. 저는 그것을 ‘감시와 사찰’로 읽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아무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이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공터와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는 혜택에 오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