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세대를 넘은 선후배의 만남
지난 2021년 10월 서울문화재단 8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창기 대표와 재단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2030 직원들이 만나 [문화+서울] 독자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자리는 재단의 젊은 직원들과 직접 만나 서울문화재단이 지금까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시민들에게 전하고 앞으로 재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2021년 유행한 MBTI 검사 결과 공유와 직장인 밸런스 게임으로 구성된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 이은 대표와의 진솔한 대화 후에는 처음의 서먹함이 스르르 사라지고 한결 훈훈하고 편해진 모습이었다.
- 일시
- 2021년 12월 13일(월) 오후 2~6시
- 서울예술교육센터 감정서가
- 이창기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 권영지 경영기획본부 경영기획팀
- 김건희예술청운영단 예술청팀
- 노은한 창작기반본부 문래예술공장
- 박선임 극장운영단 삼일로창고극장
- 임승언 예술교육본부 서울예술교육센터
- 최서연 예술지원본부 예술기획팀
- 최효주 문화시민본부 축제팀
이창기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권영지
대담한 통솔자
김건희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노은한
선의의 옹호자
박선임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임승언
대담한 통솔자
최서연
사교적인 외교관
최효주
열정적인 중재자
재단인의 MBTI가 궁금하다
Q 오늘 모인 직원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문화예술계에서 최단 3년에서 최장 10년까지 현장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시간을 가져볼게요. 이름, 소속과 본부, 자신의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심리학자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만든 성격 유형 지표 유형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고요. 본인의 MBTI 성향 중 드러내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공유해 주세요.
저는 예술청운영단 예술청팀에 있는 김건희입니다. 제 MBTI 유형은 ENFJ인데요.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로 오바마, 오프라윈프리와 같아요. ENFJ가 화를 내면 진짜 화난 거라고 해요. 사람을 좋아하고 의리가 강하고 동물을 좋아하고 예술적이고, 지금 좋은 것만 골라서 말씀드리고 있고요.(웃음) 저는 재단이 첫 직장이고 원래 꿈은 사회인류학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넘어갔다가, 예술정책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이나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매력을 느끼면서 서울문화재단에 입사해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대표님과 친해지고 싶고요. 대선배님으로서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극장운영단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근무하는 박선임이고요. 제 MBTI 유형도 ENFJ인데요. 저도 공연 분야이다 보니 사람이랑 같이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성격상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재단에 2018년 12월에 입사했는데 그전부터 공연 일은 쭉 했어요. 재단에 들어와서 공연 외적인 행정 일과 기관에서 일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창작기반본부 문래예술공장에 있는 노은한이고요. MBTI유형은 INFJ예요. 오늘 모인 분 중에는 FJ가 많더라고요. 앞 분들과는 E만 다른데요. ENFJ에 비해 내향성이 강해서 사람들한테 에너지를 얻기보다 혼자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얻는 유형입니다. ‘선의의 옹호자’라고 불리는데요. 갈등보다는 서로 풀어가는 것을 좋아하고요. 디자인과 미술 이론을 전공해서 미술관·갤러리 등에서 전시 기획을 하다가 재단으로 왔습니다. 지금은 문래예술공장에서 ‘BENXT비넥스트’ 사업을 담당하며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예술지원본부 예술기획팀에서 근무하는 최서연입니다. 제 MBTI 유형은 ESFJ인데요. 저 역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관계하고 소통하는 것에서 가치를 느끼는 사람 같아요. 자연스럽게 예술을 좋아하게 됐고요.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영화 작업과 연극에 들어가는 영상 작업을 하다가, 재단이 연극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지원사업을 많이 하는 곳임을 알게 돼 그때부터 재단에 관심을 갖고 지원했습니다. 저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잘 먹고, 잘 자고, 행복하게’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술교육본부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일하는 임승언입니다. 저는 ENTJ라서 조금 더 객관화돼 있고 사실에 입각한 ‘T’의 성향을 갖고 있고요. 히틀러와 같은 유형이라고 해요. 저는 좋아하는 게 많지 않은 대신 정말 좋아하는 것에는 늘 진심인 편입니다. 이 감정서가 공간을 채우는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든 순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택을 해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학부에서 영화와 예술경영을 전공했는데, 전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재단에 들어왔어요. 재단에 다니면서 제가 되지 못한 예술가 옆에 가장 오래 있을 수 있고 가장 많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가치를 갖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진심인 것들에 가장 열심이고 싶습니다.
저는 경영기획본부 경영기획팀 권영지라고 합니다. 제 MBTI유형도 ENTJ인데요. ENTJ는 ‘대담한 통솔자’예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 매 학년 회장이었고요.(일동 웃음) 대학교 때는 회장을 못 했지만 대학원에서는 다시 회장과 총무를 했고요. 현재는 동호회장, 얼마 안 되는 동기 중에 동기회장을 하면서 저 나름대로 대담한 통솔자의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문화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방법도 모르고 예술가도 아니 어서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이바지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해왔는데요. 그래도 문화행정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화행정을 전공하고 재단에 들어왔습니다. 입사한 지 3년 차밖에 안 돼서 제가 기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반을 다지는데 하나의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시민본부 축제팀에서 일하는 최효주입니다. 제 MBTI는 ‘인프피’라고 불리는 INFP인데요. INFP가 MBTI ‘과몰입러’라고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언어로 저를 드러내고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재단에 오기 전에는 독립영화 배급사와 영화제에서 일했어요. 재단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예술가들과 동행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 발짝 물러나서 전체 판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예술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재단에서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ENFJ인데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합니다. 사회운동 쪽은 아니지만 정의로워야 하는 것은 항상 인식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로 직장생활이 33년째 인데요. 직장 일과 인생에 대해 저도 해답은 없었지만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오랜 직장생활에서 여러분보다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실은 제가 여러분의 아빠 나이거든요. 그래서 ‘문화재단의 큰아빠’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딸이 셋이라고 말하는데 큰딸, 작은딸이 있고 막내딸은 ‘양양이’라는 9살짜리 포메라니안이에요.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죠. 집안 서열 1순위고, 집안이 얘 위주로 돌아가요. 그래서 터득한 게 있는데, 이 강아지만 잘 안고 다니면 집에서 쫓겨나진 않겠더라고요.(웃음)
대표님 따님분이 저랑 비슷한 연배인 걸로 들었는데 소통할 때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큰딸이 1992년생이고 작은 딸이 1996년생인데요. 저랑 가장 친한 술친구예요. 번개를 해서 밖에서 만나기도 하고 서로 장난도 잘 쳐요. 시시콜콜한 연애사나 일상의 크고 작은 이야기는 엄마보다 아빠에게 먼저 상의해요. 대학원생들과도 10년 이상 잘 지냈어요. 세대 차이는 있겠지만 아주 많지는 않을 거예요.
문화예술계 선배가 후배에게
Q 대표님께서 직장생활을 33년 했다고 하셨잖아요. 문화예술계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신무용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엄마의 예술가 기질을 닮았거든요. 그런 것을 동경하던 차에 세종문화회관이 1999년 재단법인으로 출범할 때 과감히 공직을 사직하고 입사해 문화예술계로 첫발을 내디뎠는데요. 당시 초대 사장이 2020년 작고하신 이종덕 사장님이에요. 다들 경력이 화려했는데 저는 공직 경력밖에 더 있겠어요. 그렇다 보니 일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어요. 다행히 2000년 홍보실장으로 승진해서 홍보실장 4년, 공연기획부장 5년, 경영기획팀장과 본부장을 3년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공연예술 노하우를 쌓기 위해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했죠. 돌이켜보면 지금 괜찮은 경력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다 파리 목숨이던 순간에 그걸 만회하기 위해 나온 것이에요. 예를 들어 공연기획팀장을 할 때 경제적 논리로 밑지는 공연을 왜 하냐고 해서 팀 해체 위기가 왔어요. 그때 오히려 역발상으로 공익적 공연을 한 게 지금도 세종문화회관에서 하고 있는 ‘천원의 행복’이에요. 위기를 극복하면서 신뢰받는 직원으로 일해 왔고, 당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1급 본부장으로 승진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이후 빨리 후배들한테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에 강동아트센터 관장으로 갔고요. 그다음에는 마포문화재단 대표를 했지요. 마포문화재단 대표를 퇴임한 후 학교에서 계속 강의하다가 여기 서울문화재단에 운이 좋게 오게 됐어요.
대표님, 중간에 진짜 못 해먹겠다거나 그만두고 싶던 적 없으셨나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이겨내셨고, 고비마다 원동력이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왜 없겠어요. 서랍 안에 사직서를 몇 장은 넣고 있었죠. 연락 다 끊고 도망가서 서울역 앞에서 한두 달 잠적하다 오면 일이 다 해결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세종대왕 동상 지하로 내려가면 ‘세종이야기’가 있고 그 옆에 ‘충무공이야기’가 있는데요. 그 공간을 만들어서 한글날에 오픈해야 했어요. 서울시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제막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기념식을 해요. 대한민국에 있는 세종대왕·훈민정음·한글 관계자는 다 오는 거죠. 이 사람들에게 콘텐츠 만든 것을 검증받아야 하는 가운데 기한 내 공사를 끝내야 했어요. 밤에는 《세종실록》을 보며 공부하고, 낮에는 아침 7시부터 지하에 땅굴 파는 작업과 마스크 쓰고 다니면서 콘텐츠를 구상하는데, 중간에 유물이 나오면 문화재청에서 중단해요. 그때 그냥 노숙자가 될 생각까지 했고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무사히 오픈하고 나서 혼자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흘렸어요. 결국 해냈다는 기쁨도 있고, 어려운 과정에서 힘들게 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감정의 북받침도 있었는데 누구한테도 보일 수 없었던 거죠.
Q 대표님만큼 힘들어서 서울역에 가서 노숙하고 싶은 심정을 갖고 계신 분이 있나요. 그렇다면 고백하시고 대표님께서는 조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극강’으로 왔어요. 그러던 중에 며칠 전에 지원사업에 선정된 예술가를 모시고 공연하고 촬영했어요. 그중 한 분이 저한테 손편지로 좋은 얘기를 써주셨어요. ‘힘내라. 덕분에 나는 소중한 공연 기회를 얻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고 다 상쇄됐어요. 앞이 막막한 느낌이었는데 단 한 분이라도 마음을 전해 주는 걸 보고 사라졌고요. 마무리로 대표님 얘기를 들으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어요. 수많은 사람의 검증을 기다리는 중압감과는 다를 것 같아요.
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과 생각을 크게 가지면 감정을 조정할수 있어요.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게 돼요. 어렵게 어렵게 일을 해냈던 게 오히려 성공 신화가 된 것처럼, 저에게 어려운 제약은 또 다른 기회였어요. 강동아트센터 초대 관장을 맡으면서는 공무원들을 어떻게 이해시킬지가 고민이었고, 마포문화재단에 갔을 때도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었는데 어쨌든 잘 해온 것 같아요. 서울문화재단도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어디에나 어려움은 있어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의 수혜자는 제가 아니에요. 재단 가족들의 기회인 거예요. 위기를 극복한 뒤에는 반드시 도약의 기회가 옵니다.
저는 최근에 혼자만 어려운 시기를 겪는 것 같고, 물리적으로도 업무가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운 적이 있는데요. 팀장님이 제 눈이 빨개진 것을 보고 격려해 주셨거든요. 무엇이 문제이고 왜 힘든지를 물어봐 주는 과정을 통해 제가 다 털어놓으면서 해소가 됐는데요. 대표님한테도 그런 선배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저도 일을 계속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선배가 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동료가 돼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울기 전에 먼저 다가갈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사실 우리 세대는 선배가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을 보면 1988년 예술의전당 개관 이후 세종문화회관이 재단법인이 됐고, 광역문화재단이 생기기 시작한 게 2000년대부터거든요. 예술경영에서 이종덕 사장님 같은 분이 1세대고 저는 1.5세대, 지금 50대가 2세대 정도일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시스템도 정립이 안 돼 있고 마땅히 선배라고 할 만한 분이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외로움이 컸고요. 2000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팀장, 리더의 역할을 해왔어요. 혼자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굉장히 고독했죠. 세종문화회관에서 집에 갈 때, 일부러 남산을 돌아가는 버스를 탔어요. 생각하고 고민할 유일한 시간이었거든요. 남산도서관 앞에 내려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 서울문화재단에서도 ‘나 믿고 따라와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가는 것 같은데, ‘내가 맞는 얘기를 했을까,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걸까, 빨리 가면 직원들이 따라올까’ 매일 그런 생각을 해요. 서울문화재단은 강점도 있고 약점도 많아요. 부족한 점이 있으면 역으로 그만큼 발전 가능성도 높다는 건데, 이걸 젊은 직원들에게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에요. 우리가 하는 일은 ‘뒷광대’잖아요. ‘앞광대’는 실연하고 박수를 받는 사람들이고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빛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거죠. 저는 문화예술기관에 그냥 월급 받고 다니려는 생각이면 하지 말라고 해요. 여기는 뒷광대의 생각을 갖고 공연을 보고 나가는 관객들의 행복해하는 뒷모습을 보고 보람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일해야 해요. 현실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는 밤에, 남들 놀 때, 연말에 많이 일해야 하는데 ‘나인 투 식스’의 직장으로 생각하는 건 뒷광대의 자세가 아닌 거죠.
일상의 행복을 찾아서
Q 저희 재단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업들이 모여 있고 직원들마다 주 고객도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극장을 찾아오는 관객, 축제나 행사 현장에 오는 시민, 지원을 받는 예술가와 지원을 받지 않는 예술가, 예술청을 찾아오거나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한 작가들도 있고요. 한편 경영기획팀과 인사팀의 주 고객은 내부 직원이고요. 대표님께서는 재단 직원으로서 사람들을 대할 때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기관이나 수요층의 다양성은 있어요. 우리의 수요층은 먼저 서울 시민, 두 번째 문화예술 생태계에 있는 분들, 세 번째가 직원입니다. 이들에 대한 사업적 접근은 서로 다를 수 있어도 맥은 통하거든요. 저는 그것을 신뢰라고 봐요. 얼마나 신뢰를 갖고 정직하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서울 시민과 문화예술 생태계 부분은 사업적으로 풀어나가고 조직 문화 부분은 젊은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저한테 가장 큰 과제예요. 먼저 조직의 가치를 세워서 공유하고 그 가치에 의해 몇 가지 전략이 나오고 전략별로 수행하는 부서들의 단위가 이뤄져야 하고요. 서울 시민에게 ‘서울문화재단’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찾아야 해요. 재단의 가치와 그 가치에 의한 전략을 경영적인 측면에서 모아주는 역할을 대표로서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것도 중요해요. 도전의 전제 조건은 행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을 즐겁고 재미있게 해야 해요. 재단은 직원들에게 행복의 가치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요. 행복의 가치는 본인 스스로도 찾아야 해요.
저는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에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이쪽 일이 삶에서 제가 느끼는 것과 맞물려 있어서 좋거든요. 딜레마가 있긴 해요. 삶에서 느끼는 것을 일로 실행할 수 있어서 좋고, 일에서 얻은 정보로 삶이 풍족해지고 예술가 집단과 향유하는 사람을 매개하는 것도 좋고요. 그런데 또 너무 빠져 살다 보니 일이 인격이 되는 것 같고, 너무 분리하자니 기계적으로 되는것 같았어요. 저의 행복을 위한 최신 버전은, 일 속에서 나를 부정하지 않거나 삶 속에서 일이 영향을 미치는 걸 부정하지 않고 둘 다 치열하게 열심히 하는 거예요. 사실 일은 다 힘들잖아요. 사람 때문에 힘들 수도 있고 상황 때문에 힘들 수도 있는데 궁극적으로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원초적 이유만 생각하면서 다른 것들은 발라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제가 찾은 해답은 인정하는 거예요.
지금 행복에 대한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요. 문화예술 분야가 직업적으로 좀 더 여유로운 직장으로 전환하는 느낌이 컸어요. 그 삶에 빠져들면서 제 인생이 돼버린 거고요. 예술 현장은 언제나 힘들었지만 그걸 해냈을 때 행복감과 보람이 있었어요. 꾸준히 일하며 성장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업계의 일이 곧 인생의 감동이고 이 감동이 없으면 산소 공급이 안 되는 듯한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런 감동이 있는 삶이 문화예술계의 특징이에요. 여러분도 단순히 경제적 이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의 감동이 있는 삶을 같이 호흡하고 느끼기 위해 지원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생에서 ‘문화예술의 행복 법칙’은 나이가 들면 더 와닿을 거예요.
저는 9월부터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현장의 예술인들을 만나, 지원사업 개선 의견을 듣는 간담회 자리를 가져왔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예술계 분위기로 마음이 무겁다는 근황과 지원사업 개선점에 대한 수많은 요청 사항을 들었어요. 어떠한 개선 의견을 제시해도 모든 예술인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점점 지쳐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중 한 예술인이 작성한 간담회 설문 응답지를 봤어요. ‘한 분의 재단 직원이 소화해야 하는 업무량이 많은 것 같아 걱정된다.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직원에 대한 지원과 복지가 예술가에 대한 지원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인력이 충원되고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라고. 저희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마음이 느껴져 당시 엄청 울컥했어요. 제가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대표님께서 직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직원들을 많이 보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Q 이렇게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서 보람이 있었거나 성취감, 충만함을 느낀 순간이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저는 2020년에 ‘감정서가’를 만들었고 지금은 운영과 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정말 문화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형태를 보고도 반응하지 않던 분들이 작가님을 만나서 창작 과정을 경험하고 돌아가면서 처음 왔을 때 표정과 다르게 나가는 모습을 항상 발견하거든요. 매일 똑같은 내용으로 하는 원데이 워크숍이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고 바뀌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제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이 직장에 온 게 후회스럽지 않은 순간으로 2021년을 보냈거든요. 한편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 보는 것처럼 우리는 과연 직원들 스스로 혹은 옆에 있는 동료가 행복해하는지는 보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저희가 어떻게 행복을 찾을지를 말하거나 이런 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모일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가 다른 분들께 또 다른 에너지로 전해져서 공유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2021년에 담당한 서울거리예술축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 상황이 반전되지 않아 개최를 취소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최우선 목표는 어떻게든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었어요. 운이 좋게도 2021년 11월 당시 위드 코로나가 시작돼 축제를 개최할 수 있었는데요. 축제를 진행하면서, 이렇게 축제와 공연을 즐기는 기회의 자리를 기다리는 시민이 많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작년부터 공연 기회가 많이 줄어든 예술가 분들과 함께 코로나 상황에서 공존 가능한 축제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뿌듯했고요. 시민과 예술가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행복이나 일의 가치를 찾는 데 있어 재단이 저에게 어떤 의미 인지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축제를 경험하면서, 재단은 어느 정도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곳일 뿐 아니라 성취감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가치, 비슷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동료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의미로 다가왔고요. 문화예술 분야가 주는 생명력에 종종 감흥을 받는데요. 제가 여기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 이상 아마도 줄곧 이 분야에 속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요새 일로서는 보람도 느끼고 작가님들과도 잘 지내고 있지만, 제 스스로의 행복과 일상은 사실 잃어가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사립기관에서 주로 일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공공기관에서의 문화예술행정 업무는 처음이다 보니 아직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제 워라밸은 제가 챙겨야 하는데, 요즘은 작가님들께서 오히려 제 건강을 더 걱정해 주시고요. 격려의 편지도 적어주셔서, 힘을 얻어서 일하고 있어요.
서울문화재단인들의 희망 사항
Q 마지막으로 2022년에 꼭 해보고 싶은 ‘위시 리스트’를 하나씩 얘기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2022년에 뉴올리언스에 하는 마디 그라Mardi Gras 페스티벌에 가고 싶습니다.
저는 2022년에 일주일 연차를 꼭 써보고 싶습니다. 입사하고 한 번도 일주일을 쉬어본 적이 없거든요.
저도 비슷한데 여름휴가를 길게 써서 독일에서 5년 만에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에 가고 싶어요. 2017년에 방문했을 때 너무 좋았어서, 2022년에도 짧고 굵게 즐기다 오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토피를 오래 앓고 있는데요. 입사 전부터 큰마음을 먹고 치료를 시작했거든요. 나을지 안 나을지 의심은 들지만 2022년에는 꼭 아토피를 퇴치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일에서도 삶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늘 보던 동료·친구·가족, 익숙한 것에만 의존하고 사는 것 같아서 2022년에는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 지금 가장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2022년에 서른이어서요. 원래 서른이 되면 30대를 조금 힘들게 시작해 보고 싶었거든요. 남은 시간이 조금 수월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2022년에 자전거로 국토 횡단을 해보겠다는 목표가 있는데 실현하면 좋겠습니다.
업무 관련해서는 프랑스 샬롱거리예술축제Chalon dans la rue 등 유럽의 거리축제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할 때 자꾸 자기최면을 걸어요. 운동을 해도 ‘난 할수 있다’고 하고 하는데요. 2022년에는 진짜 사랑을 많이 할 거예요. 서울문화재단의 가족 한명 한명, 후배 같은 직원들, 그게 짝사랑이어도 괜찮아요. 미운 사람도 함께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게 희망 사항입니다.
사실 대표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대화하듯이 뵙는 것은 처음인데요. 무겁고 진중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화를 나누고 나니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늘 대표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고, 예전 경험 얘기도 재미있었어요. 오늘 라포르Rapport가 형성된 것처럼 다른 직원들과도 얘기하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 사진 서울문화재단
진행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김영민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