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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12월호

2016년 문화예술계 돌아보기검열·권위주의와 작별하고 창작의 본질을 생각하자

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장이 펼쳐졌다. 올해도 문화예술계는 크고 작은 이슈들로 어수선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등 문화계를 들뜨게 한 이슈가 있었던 반면, 해를 넘겨 이어진 검열 논란은 ‘블랙리스트’ 공개로 정점에 치달았고 미술계의 위작과 대작 사건은 불투명한 시스템의 개선 요구로 이어졌다. [문화+서울]은 1년간 지면에서 다룬 이슈들을 중심으로 올해 문화예술계를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실 혹은 대담 관련 이미지

사회 |
이규승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토론 |
고재열<시사IN> 기자
이명석문화평론가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과 교수
일시 |
2016. 11. 9(수) 14:00~16:00
장소 |
서울시청 시민청 워크숍룸

올 한 해 동안 [문화+서울]에서 다룬 주제들을 뽑아서 문화예술 관계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를 반영하고 장르와 내용의 형평성을 고려해 6개의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이 토론을 통해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2016년에 일어난 일을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올 초부터 예술가 검열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울문화재단도 관여한 것이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박근형 연출가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입니다. 정부의 탄압에 맞서는 공연을 통해 이슈화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도 나왔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문화부보다 정치부 기자들이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는 검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기도 했고요. 이와 관련해 검열과 최근 논란이 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롭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동연 저도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가 문체부 소속이다 보니 자문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정권 초기에는 박근혜 정부가 통과시킨 법률 관련 자문을 해주었는데요. 2014년 5~6월부터는 계속 연락이 안와서 변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블랙리스트가 있을 거라는 얘기는 그때부터 돌았어요. 블랙리스트 사태의 요점은 보수 정부의 회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 시점이 6월이었고, 유진룡 장관이 경질되고 김종덕 장관이 들어오고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임명되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봐서는, 블랙리스트가 문화부의 각종 이권 사업과 최순실 측근들이 문화 행정을 좌지우지하려는 것과 맞물렸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경질되는 과정이 최순실 게이트를 열어주는 일종의 조치가 아니었나 싶어요.
고재열 오래전에 당했던 검열과 지금의 검열은 양상이 다릅니다. 예전의 검열은 그 주체가 검찰이나 경찰이에요. 지금은 주도를 문체부 공무원이나 산하기관, 문화행정가들이 하는 거예요. 예술가를 가장 잘 알고 지원해야 할 사람이 검열관이 되어서 지원을 못 받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사법기관이 검열을 주도할 때는 피해자들이 중요했어요. 여전히 피해자는 중요하지만 검열관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사건명을 검열관 이름으로 재구성해야 해요. 한국공연예술센터 유인화 사건, 국립국악원 용호성 사건과 같은 식으로 가해자 중심으로 해야 해요. 나중에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검열했을 때 문화계에서 영원히 퇴출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박근형 선생님의 경우 여러 단계를 거쳐 검열을 당하면서 양상이 바뀌었어요. 처음 <개구리>는 ‘이거 문제 아니야’ 하면서 시비를 거는 단계였는데, 두 번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서는 ‘왜 모든 군인이 불쌍해?’라고 적극적인 시비 걸기로 가면서, 세 번째 <소월산천>은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박근형이니까 안 된다’고 해버리잖아요. 검열당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호가 되는 거죠. 피해를 받더라도 알려지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은 거예요.
이명석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CJ그룹의 경영권 침해나 KBS와 MBC 같은 방송사를 장악하면서 내부에서 시스템적으로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tvN 에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했던 ‘여의도 텔레토비’와 같은 정치 풍자를 전반적으로 할 수 없는 분 위기가 되고, 코미디나 영화 소재에서도 실제 비판해야 할 정치나 권력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정치적인 주제 밖으로 달아나는 경향이 보인다는 거죠. 결국 직접적으로 검열당하는 문화 창작자뿐만 아니라 문화 전체를 퇴행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단 직원들도 문화행정가이기 때문에 검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위에서 얘기했을 때 나는 이걸 못 하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지, 행정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조언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재열 제 생각에는 법대로 하시면 돼요. 현행 판례는 위에서 지시해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도 위법이 돼요. 그러니 부당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다면 본인이 법대로 저항하면 좋겠어요.
이동연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알다시피 위에서 밑으로 내려온 것이에요. 문체부에서는 세월호 사건과 영화 <변호인>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은 어쨌든 대한민국의 판도를 바꾸어버린 거니까요.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세월호인 건 분명한 거 같아요. VIP의 뜻이라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비서관은 문체부 장관에게 지시를 내리겠죠. 그러면 장관은 해당 국장에게 내려보내요. 결과적으로 지시는 위에서 내려오지만 집행하는 사람들은 과장급, 사무관, 서기관들인 거예요. 떠넘기는 거죠. 공무원들이 법대로 하기 어려운 이유는 진급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좌천되기 때문이에요. 이 정권은 말을 안 들으면 잘라버리면서 그 증거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거든요. 내부고발자가 되어서 수직과 수평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직원들, 동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소신을 지키기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공무원들의 상명하복이라는 조직 문화의 유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석 지난 정부부터 이어져온 전반적인 문화계 개입의 문제와 이번 정권 비선 실세가 문화 사업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면서 이 문제가 커진 면은 분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가 정권이 바뀌면 해결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하죠. 정권이 바뀌면 반대 쪽에서 같은 지적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는 말아야 합니다. 외부 전문가 집단을 불러서 심사할 때 독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동연 쉽지 않은 문제지만 조기에 터뜨려졌어야 했다고 봅니다. 누구도 터뜨리지 않고 침묵하다 보니 1년 넘게 지나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사실 문화연대에서도 문체부 직원들이 제보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우리가 싸울 수 있는데, 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니 담쌓고 있었거든요.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재열 현 정부에서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건 느꼈는데 검열이 만연하고 창궐한 뒤에야 겨우 나왔잖아요. 어쨌든 이번에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해야 해요. 검열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선례를 만들어야합니다. 그리고 창작자들에게 심리적인 회복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예술가들은 시대에 대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복원되거나 보상받지 못하면 현실에서 도망가게 되잖아요.
이동연 부역자 리스트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 정영두 씨가 영국에서 가서 10일간 시위를 했는데요. 예술가들은 설 자리를 잃는데 쫓아낸 사람은 여전히 좋은 자리에 앉아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을 보고 1년간 너무 우울했다고 했어요. 누군가가 이것을 확실하게 밝혀서 이 사람이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람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망신을 주어야하는 거예요. 예술가들끼리 분노에 차서 성토만 했지 부역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든 적이 없어요. ‘우리는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가 일차적으로 박근혜 정부 산하단체 역대 기관장과 자문위원, 소위원회 명단을 받아서 분석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주제를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창작자들에게 심리적인 회복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예술가들은 시대에 대해 발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면 현실에서 도망가게 되잖아요.
고재열 <시사IN> 기자

두 번째 주제는 ‘미술품의 위작과 대작’인데요. 비단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문학 분야에서 지난해 신경숙 작가의 표절로 시작해 미술의 천경자, 이우환, 조영남까지 문화예술계가 이처럼 비도덕적인 문제로 접근하게 되는 현상에 대해 언급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명석 일단 미술의 위작과 문학의 표절은 그 세계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안의 전문가와 비평적 독자군이 어느 정도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데, 사법 소송으로 간다고 법관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미술은 문학과는 다르게 투자가치가 있고 거액의 돈이 거래되는 시장이 있어요. 미술계 자체에서 투자가치로서의 미술과 진품, 예술 작품의 미술을 분리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고요. 감정의 전문성은 전문가 집단이 얼마나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위치를 확보하는지가 여전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재열 예술의 역사가 어떻게 보면 표절과 위작의 역사인데 그동안 철학이나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어요. 조영남 사건은 이쪽 영역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사법부의 영역으로 가버렸잖아요. ‘사기’죄가 성립되면 비판하던 사람들도 헷갈리게 됩니다. 진중권 교수는 개념미술의 관점을 들어 옹호했는데요. 미술 시장에서 조영남은 개념미술가가 아니라 구상화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개념미술로 규정해버리고 모든 게 통용된다는 논리로 가버리거든요. 그러면 시장에서 소비자는 바보가 되는 거잖아요. 여러 영역과 층위가 있는데 너무 자기 얘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동연 저는 조영남 대작 사건을 노동의 관점에서 봤습니다. 대작을 해준 무명의 화가가 받은 대우를 보면서, 노동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는 문제로 접근한 것이고요. 적어도 개념미술을 주장하려면 거짓말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영남이 자기 그림 팔면서 개념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거든요. 다 속인 거예요. 공론화와 토론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죠. 하청받은 사람의 관계와 권리가 문제 된다는 점에서 법적인 처벌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재열 대책은 천경자와 이우환 사건을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두 개의 신화만 깨면 거대한 카르텔에 균열을 낼 수 있어요. 두 사건은 상반되는 것 같지만 본질은 똑같거든요. 미술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는 본인이 위작이라고 해도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고, 하나는 위작인데 본인이 내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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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예술 창작과 관련된 부분은 미래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시작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화예술계로 국한해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이명석 직업에서 예술창작가의 지위는 유지된다고 하는데요. 실제 10~20%의 진짜 창작 능력을 가진 사람은 유지되겠지만 하청해서 쓸 수 있는 일들은 상당 부분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 분야를 점령할 것은 확실한데요. 창작의 상단부를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은 지금 육성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동연 인공지능을 예술 창작에 활용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고요. 미디어 아트나 음악 테크놀로지에서 이미 상당 부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술가가 사라진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아트, 사이보그 아트 등 예술의 한 장르로 나올 수 있겠지만 예술자체를 대체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고요. 학교에서도 춤을 추는 로봇, 작곡하는 로봇 실험을 해보았는데 현재까지는 조악해서 전혀 감동이 없습니다. 이른바 기술미학자들이 얘기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인공이 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고재열 저는 두 가지 기회를 열어준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활용의 측면입니다. 활용하려고 마음먹으면 무한대잖아요. 다른 하나는 좀 더 본질적으로 예술이 무엇이고 예술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예술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기 본질을 가지고 따져야 하잖아요. 나는 누구고 인간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대신해주는 비용을 예술가에게 지불하는 것이거든요. 인공지능이 해결해주지 못할 고민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찾는 답이 더 빛을 발할 것이고요. 기술에 따라잡히지 않는 인간 고유의 창조 영역을 더 갈망할 것이고 그것을 보여준다면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해줄 것입니다.

서울시는 모든 브랜드를 시민에게 맡기고 있어요. 의도는 좋지만 그동안 결과가 썩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 검토를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과 교수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이슈가 올해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오랫동안 물밑에 있던 불만이 표출되었고 문화 창작과 비평 영역에서도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움직임이 커졌죠.
이명석 문화평론가

네 번째, 홍대 정문에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었다가 하룻밤 사이에 파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작품 훼손이나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재열 일단 일베 표상을 설치한 것까지는 표현의 자유 범주 안에 있다고 봐요. 설치 목적이 일베를 찬양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예술적인 체험을 하기 위한 것이라 보고요. 그것을 훼손한 것도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들어요. 어떻게 보면 설치한 사람이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잖아요. 설치는 과정인 것이고 훼손해준 사람을 통해 예술이 완성된 거예요.
이명석 기본적으로 비슷한 의견인데요. 그런데 ‘문제적 상징물을 표현의 자유만으로 용인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어떤 영역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요.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대학의 구성원들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연 그 자체로는 작품이고 설치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지요. 파괴하는 행위 자체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있고요.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의도한 것인데요. 만약 의도가 불순하다면 옹호해야 하는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의 허용 범위에 대해 답을 내리기 어렵더라고요. 저는 불순한 의도가 명백히 읽히는 것은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의도가 문화적,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한국 사회가 성숙하지 않아서 다 일베와 메갈리아로 환원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요. 최근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에 최순실이 관여됐다는 의혹으로 국가 브랜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도 ‘아이서울유(I·SEOUL·U)’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우리는 뉴욕의 ‘아이러브뉴욕(I♥NY)’, 암스테르담의 ‘아이엠스테르담(I amsterdam)’과 같은 성공적인 도시 브랜드를 가질 수는 없는지,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브랜드가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동연 ‘크리에이티브 프랑스’를 충분히 검토했다면서 이걸 썼다는 것 자체가 이해 안 가고요. 이것을 제대로 파헤치는 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단면을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예산이 많이 들어갔고 대안을 제치고 선정되는 과정에서 의혹이 있었고요. 표절 시비와 형편없는 디자인에 최순실 개입이 확인된다면 이 자체가 현재 문화 정책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서울유’의 경우, 지금 서울시는 모든 브랜드를 시민에게 맡기고 있어요. 전문가들이 디자인 작업을 독점해서도 안 되겠지만 거꾸로 시민들이 결정해서 전문성을 검토할 수 없는 것도 문제가 돼요. 의도는 좋지만 그동안 결과가 썩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 검토를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부분이 간과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석 국가나 도시 브랜드는 어디에서나 시도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특히 소규모의 공연 단체, 문화 상품에 이들 브랜드가 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전제 조건은 ‘잘해야 한다’는 거죠. 이 분야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담당해야 할 영역입니다.
고재열 상대적으로는 ‘아이서울유’가 조금 낫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서울을 커뮤니티성으로 바라보지 않았거든요. 서울에서 무엇을 해보자는 것들이 생기고, 마을로서 서울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기점에서 ‘아이서울유’가 욕을 먹으면서 컸다고 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창조는 심리적, 물질적 여유에서 파생되는 것인데, 지금 대한민국은 헬조선이고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마지막 주제는 9월 28일을 디데이(D-day)로 여길 만큼 뜨거운 감자였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우려했던 바와 같이 많은 부분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세부 사항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통해 어느 정도 혼란이 최소화하기도 했고요. 김영란법 이후의 문화예술계의 위기에 대해 논의해주시고, 이 상황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동연 부정청탁금지라는 취지를 살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예술계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좋은 의미에서의 커뮤니티가 위축되니 결과적으로는 섬세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김영란법이 생기면 유료 관객이 늘어날 것이고, 특히 기업들이 후원 금액만큼 받아간 공짜 티켓과 그로 인한 충성심 없는 관객 문화가 사라질 거라고 반기는 부분도 있는데요. 공연 시장이 양성화할 거라는 기대는 있지만 현재로선 어려운 입장입니다. 후속 조치가 없어서 그나마 자리를 채워주던 공짜 관객마저 줄었다고 하고요. 김영란법보다는 문화 예술계가 어떤 꼼꼼한 대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고재열 당사자로서 불편해진 부분이 없지 않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정말 필요한 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 시행 전후 언론이 엄청나게 공격했는데, 그 많은 기사와 칼럼 중에 단 한 문장도 건질 게 없었다고 봐요. 5만 원 이상 공연의 현장 취재가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그 정도 규모의 공연이면 프레스 리허설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근데 내가 편할 때, 보고 싶을 때 보겠다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이동연 저도 칼럼*을 썼는데 취재의 자유는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기자들이 취재를 나갈 경우 본사가 티켓 값을 부담하면 문제가 없는데 모든 언론사가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기자들이 그동안 기득권을 내세웠다는 것에는 저도 공감해요. 특히 유력 일간지 기자들은 원하는 시간과 좌석으로 프레스 티켓을 발급받기를 원하고 그게 대우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심지어 친인척들에게 프레스 티켓을 뿌리면서 권력을 과시해왔어요. 일종의 우월의식과 생색 내기 문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이와는 다르게 취재 권한으로서 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명석 김영란법 시행 이후 회식이나 접대가 많이 없어지면서 저녁 시간이 생겼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문화 소비자로 돌려낼 수 있을지, 지금까지는 계속 남이 주는 티켓으로 관람했는데, 직접 티켓을 사서 보는 행위가 훨씬 더 감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여섯 가지 주제 외에 ‘나만의 2016년 화두’로 언급할 일이 있으신가요.

고재열 최순실 사태에서 가장 참담했던 부분은 광고와 디자인하신 분들이 모든 꼭짓점에 앉아서 예산과 정책을 주물렀다는 겁니다. 창조는 마지막에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게 아닌데, 박근혜 정부는 포장지만 고민했다는 것부터가 모순인 거예요. 문화융성을 하려면 근원이 되는 우물을 파고 시인이나 철학자를 장관으로 하는 것에서부터 씨를 뿌렸어야 하는데요. 그 장르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장관, 위원장 자리를 차지한 것,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도 없고 우리의 수준을 보여준 것이 참담했어요.
이명석 페미니즘 이슈가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오랫동안 물밑에 있던 불만이 사회적 계기를 통해 표출되었는데요. 문화창작과 비평 영역에서도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졌죠. 한국 사회에서 그간 노동자 운동이 정치 문화적 동력이 되기도 했는데요. 페미니즘 운동이 이 시대의 정치 문화적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동연 테이크아웃드로잉이 8월 31일자로 사형집행을 당하고 싸이의 건물로 리모델링 중에 있어요. 젠트리피케이션과 예술의 운명을 우울하게 바라본 한 해였고요. 개인적으로 서울시 도시재생의 중요 사업 중 하나인 ‘플랫폼창동61’의 마스터플랜을 맡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위치에 있어서 1년 내내 괴로웠어요. 제가 ‘플랫폼창동61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대기업이 못 들어오게 만드는 것과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집어넣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싸웠지만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정리되는 상황에서 문화정책이나 기획을 하는 사람이 어떤 발언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고요. 그런 면에서 올해의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2016년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해가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 지속되던 검열 문제가 올 초에 폭발했으며, 최근에는 블랙리스트 실체가 공개되며 역사상 가장 많은 단체와 예술가들이 참여한 시국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단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화예술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쾌거에 이어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알파고에 맞선 이세돌은 감탄을 넘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토론 주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설문조사를 통해서 가장 많이 언급된 문화예술계 성추문 사태는 문화예술계에 많은 숙제를 안기고 있습니다. 이번 자리는 여러 문제에 관한 해결안을 모색하는 것보다 이 주제를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에 대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토론회에 함께 해주신 패널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문화+서울

* 경향신문 ‘[문화비평] 김영란법과 공짜티켓’(2016. 10.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42049005&code=990100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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