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일에 비는 안녕
봉원사 영산재
지선버스 7024번을 타고 사직터널을
지나 봉원로 언덕을 오르면 회차 지점인
봉원사 정류장에 다다른다. 도심 속
천년고찰이라 불리는 봉원사에 가려면
여기서 3분 남짓 가파른 언덕을 더 올라야
한다. 사천왕문 넘어 좌측엔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1,100평 규모의 삼천불전이 있고,
우측 돌담 위로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삼천불전과 대웅전은 모두 1994년 새로이
중건된 것으로, 무척이나 정교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왼편으로 들어가면
영안각·운수각 등이 있고, 대웅전과
삼천불전 사이의 산길을 따라 오르면
명부전·극락전·미륵전·칠성각 등이 줄지어
있다. 아담하지만 내실 있는 전각들이다.
889년부터 이어지는 긴 역사를 견뎌왔기
때문일까. 담담하고 단단한 전각이 늘어선
풍경이 발걸음을 붙잡는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대웅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대웅전과 삼천불전 사이,
영산재보존도량이라 이름 붙여진 너른마당
위로 파란색·노란색·붉은색·흰색·초록색
띠가 길게 마당을 가로지르며 늘어져 있고,
보존도량 깊숙이에 괘불단이 꾸며져 있었다.
갖가지 법문과 명단 그리고 부처와 성현의
형상을 담은 탱화가 하늘과 맞닿을 듯이
높게 걸리고, 괘불단을 중심으로 갖가지
색의 꽃이 장식돼 화려함을 더했다. 언덕
아래부터 들려오던 삼현육각과 취타 소리에
귀가 뜨이고 화려한 볼거리에 눈이 뜨이는
이곳에선 불기 2567년을 맞아 6월 6일
영산재를 봉행하고 있었다.
영산재는 불기 2600여 년 전에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영산회상을
재현해 만들었다고 알려진 종교의식이다.
이는 불교의 종파와 관계없이 절 대부분에서
봉행한다. 일종의 의식이기는 하나 산 자와
죽은 자가 부처의 참 진리를 깨달아
이고득락離苦得樂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영산재에 참석한 이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 수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1969년 설립된 옥천범음회가
1987년 영산재보존회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이고 본격적인 영산재 전승 활동이
시작됐다. 2005년 김인식(구해 스님)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고,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국내외에서 그 예술성과 가치는
더욱 널리 알려졌다. 현재는 구해 스님과
4명의 전승교육사를 포함해 보존회원
313명이 영산재의 보존과 전승을 이끌고
있다. 올해 영산재 역시 구해 스님과 봉원사
주지이자 영산재보존회장인 최원허 스님이
주축이 됐다.
영산재의 순서는 영가靈駕와 모든 성인을
맞아들이는 의식으로 시작해 부처의 영적
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시련侍輦-재대령齋對靈-관욕灌浴-조전점안
造錢點眼-신중작법神衆作法-괘불이운掛佛移運-
상단권공上壇勸供-영산작법 靈山作法-
식당작법食堂作法 등 14~16개 과정에
따라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시련-재대령-괘불이운-식당작법-영산단-육법공양-운수상단 순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 순서나
의미를 알고 보는 이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슬쩍 옆 사람에게 순서를 물어보아도,
누구도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의례가 어떤
의미를 담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순서나 의미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 수반되는
범음梵音(범패)이나 화청和請 그리고
바라무·법고무·나비무·타주무 같은 예능적
요소가 지닌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산재가 그 예술성과 가치를
인정받은 것도 이와 같은 것들이 의미와
효용을 더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재미있는 건 이런 악가무에 의식적 장식과
부처·보살에게 식사를 공양하고 죽은 자가
극락에 들도록 하는 시식施食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의 봉원사 영산재 역시
화려한 장식과 식당작법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치러진
영산재의 3분의 1 지점에서 식당작법이
시행됐는데, 영산재보존회장 최원허 스님은
영산재에서 가장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것이 바로 이 식당작법이라며 소개했다.
군무로 이뤄지는 작법 역시 그 화려함에
넋을 놓게 되지만 타주(타주무)를 추는 두
스님의 절제된 움직임과 공양하는 스님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식당작법은 영산재
가운데서도 진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계종에서는 영산재 때 평소 걸치는 단출한
장삼과 가사를 입지만, 태고종에서는 수를
놓거나 소재나 무늬를 넣은 화려한 가사를
입는다. 덕분에 영산재에 참여하는 스님의
장삼과 가사 그리고 고깔도 보는 맛을 더했다.
영산재의 묘미는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귀로 듣는 즐거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거대한 탱화 우측에는 삼현육각과
대취타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앉았다.
이들은 영산재를 봉행하는 거의 매 순간
연주한다. 법문을 외거나 인사말을 건네는
순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영산재에서는
삼현육각이나 취타뿐만 아니라 당종과
목어 같은 고악기의 연주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악사가 아닌 스님이 직접 연주한다.
또, 공양할 때 외우는 다섯 구의 게송인
오관게五觀偈와 법고무 연주는 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한다. 거기에 긴 나무를 돌려 삿된
기운을 막는 금판일잡禁板一匝과 타주무의
절제된 움직임에선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정리한 후
크게 원을 도는 회향게 廻向偈까지 보고 나면
식당작법이 끝난다.
농경사회에서 씨를 뿌리기 좋은 날이란 곧
길한 날을 의미한다. 모내기의 시작이자
농가가 가장 바쁜 때인 망종이 길한 날로
꼽히는 이유다. 이 길함은 감사를 전하고
큰 뜻을 기리는 때로 갈음하기도 하는데,
망종을 현충일로 삼은 까닭이다.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묵념하는 시간,
봉원사에서는 인류 평화와 국가의 안녕을
비는 영산재가 시작된다. ‘불법나무 그늘에
도달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부처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회향게 법문처럼 뜨거운 여름
태양을 피해 봉원사 불법 나무 아래에서
쉬어보는 건 어떨까.
글 김보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