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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언더 더 스킨>별에서 온 노동자
지구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살아왔던 걸까? 의지할 곳도, 안길 곳도 없이 뒤통수만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존을 위한 밥벌이 이상, 노동의 가치를 말하기 어려운 괴괴한 시간 속에 지구에 던져진 외계인 역시 어떤 괴력이나 눈에 띄는 초능력 없이, 별 볼 일 없는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듣기에 따라 흥미진진하기도, 맥이 빠지기도 하는 이야기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언더 더 스킨>은 지구 노동자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지구 위에 툭 던져놓는다.

노동, 그 공허함에 대해

지구인의 신체를 강탈하는 외계인의 침입이라는 소재를 두고 보면, 외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사투쯤을 그려볼 법도 한데, <언더 더 스킨>은 무척 느슨하다. 자극적인 장면도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나 박진감도 없다. 대체 왜, 라는 질문이 생기고 주인공 로라(스칼렛 요한슨)의 입장도 궁금하지만, 영화에서 해답을 찾을 수는 없다. 외계에서 온 로라는 아름다운 지구인으로 가장해 밴을 몰고 다니면서 남자들을 유혹한다. 로라에게 매혹되어 끌려온 남자들은 피부가 벗겨진 채, 어딘가로 운송된다. 계속되는 유괴와 살인의 목적은 단서도 없이 모호하게 끝난다. 관객들은 단지 로라의 배후에 거대한 조직이 있으리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추리와 해독의 과정은 온전히 관객에게 툭 던져졌지만, 그나마도 흥미진진하진 않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로라라는 캐릭터가 성격과 감정이 없이 텅 빈 그 상태로 머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고, 스칼렛 요한슨은 아무런 의식도 감정도 없는 기계처럼 공허한 로라를 재현해낸다. 흔들리고 연출되지 않은 장면은 로라라는 외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인의 낯선 모습, 일종의 외계인을 위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을 포착해내는 순간들은 매우 사실적이다. 암흑 같은 블랙홀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언더 더 스킨>은 몽환적이고 동시에 공허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저 검은 구멍이 텅 비어 있을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을 다 흡수해버릴 만큼 강렬한 자기장을 품고 있을지, 겉에서 지켜보는 동안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그 공허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언더 더 스킨>은 타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생명체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지구라는 낯선 곳에 툭 떨어져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무언가를 끝없이 수행해야 하는 외계 생명체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바라본다.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외계인의 일상은 실체가 없이 텅 빈 채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구 노동자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추측하건대, 로라는 살기 위해 혹은 외계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지구인을 죽이는 노동을 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이라 설득당했겠지만, 반복되는 노동이 내 삶에 의미를 담아주지는 않는다. 그런 미친 노동, 어느 순간 해답도 질문도 없는 외계인의 노동은 지구인의 노동과 닮아 있다. 오직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일 수밖에 없는 외로운 외계인, 착취하지만 동시에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도시 노동자의 쓸쓸한 현실과 닮았다.

영화 <언더 더 스킨>.

미헬 파버르의 원작소설 <언더 더 스킨>

찰스 디킨슨에 비견되는 극찬을 받았다는 원작자 미헬 파버르 역시 국내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개봉과 함께 처음 소개된 그의 장편소설은 영화만큼이나 매혹적이고 논쟁적이다. 하지만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원작소설을 적극적으로 영화 속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원작에 상세히 드러난 구체적 정황들을 모호하게 숨겨두었기 때문에 영화는 다큐와 픽션 사이를 오가는 실험극처럼 보인다.
영화 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미헬 파버르의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파버르의 소설 속 주인공 이설리는 영화와 달리 조금 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도 영화에 비하면 매우 명료하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구로 파견된 그녀는 인간과 같은 외모로 바꾸고, 식량 조달을 위해 매일매일 열심히 일을 한다.
그녀는 매일 남자들을 마취시켜 농장으로 데리고 오고, 농장에 갇힌 남자들은 사육되다가 도축되어 행성으로 보내진다. 인간고기는 행성에서 비싼 값에 팔린다. 매일 열심히 일하지만 이설리는 일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 지구에서의 삶은 가치 없고 의미 없는 노동일 뿐이다. 정말 이게 끝이야, 라고 할 정도로 허무한 결말은 영화와 다르지 않다. 영화 속 로라가 그 실체가 불분명한 공허함을 보여주었다면, 소설 속 이설리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글 최재훈_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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