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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서울기록원지금과 미래를 위한 기록보관소
“서울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수많은 도시 슬로건 중 모처럼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문장이었다. 세 개의 단어로 간명하게 구성된 이 말에는 행정가와 기업가들이 쏟아내는 달콤한 말과는 다른 진심 어린 울림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인구 약 1,000만 명의 도시가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말이 거리를 오가는 무수한 인파 중 하나일 뿐인 나를 위로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내건 장소가 서울의 어떤 공공장소보다 어서 제 모습을 보이길 고대했다. 드디어 2019년 5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부지 안에 ‘서울기록원’이 개관했다.

1 서울기록원 내부 복도.
2 서울기록원 외부 전경.

무대 뒤편 같은 공간

많은 것들을 쉽게 부수고 지운 우리나라에서 국가기록원 외에 ‘기록’이라는 말이 국가나 지자체의 공식적인 조직 이름으로 등장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이름은 최근 국내 사회문화 전반으로 중요해지고 있는 ‘아카이브’(Archive)의 위상을 반영한다. 기록보관소이자 그 자체가 기록물이라 할 수 있는 아카이브는 그간 한국에 부족했던 기록 자료들을 제대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장소로 관심을 받고 있다. 유물이나 작품이 아닌 공유재로서 기록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곡되거나 신화화된 서사가 아니라 실증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한 비평적 역사 쓰기에 대한 요청도 아카이브에 관한 진지한 연구를 촉발하고 있다.
서울기록원 또한 이러한 배경 위에 공공 아카이브로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지자체 최초의 기록 전문 기관으로 출범했다. 경북 청도군에 있는 서울특별시 문서보존소 자료들을 이관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정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 동시에 서울시민의 다양한 기록 자산들도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물론 기록 문화 자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전문 아키비스트 양성도 미흡한 국내 현실에서 서울기록원의 이 목표는 쉽게 도달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시나 교육기관이 아닌 보존기관으로서 해당 사업을 펼치기 위해 넘어야 할 많은 난관들도 상상할 수 있다. 비슷한 공적 가치를 공유하나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태생이 다른 이곳이 가시적인 성과를 바로 펼치기는 쉽지 않다. 보존과 수집이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과 예산을 요청하는 일인 데다 연구자와 시민들의 활용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라는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기록원은 자료 보존과 관리를 위한 공간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화려한 무대라기보다 무대 뒤편과 같은 장소에 더 가깝다.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이 건물은 시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곧바로 전달하기보다 정보 공유를 위한 기반 시설로 기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2층 전시실과 열람실에서는 서울기록원이 소장하거나 대여한 주요 자료들을 공개함으로써 일반인들이 기록물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전시 연출의 화려함보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살아남은 자료 그 자체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개관 기념으로 열리고 있는 <목동 신시가지 개발 기록>전은 30여 년 만에 극적으로 발견된 기록의 현장을 전달하여 눈길을 끈다. 2016년 목동화력발전소에서 발견된 대량의 공공기록물은 목동신시가지 개발사업소가 폐지된 이후 방치됐는데, 서울시가 긴급하게 이관한 이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1980년대 최초의 공영개발로 진행된 목동 신시가지 개발 사업의 면모를 짐작하게 하는 이 전시는 도시가 어떤 계획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프레젠테이션 보드, 수기 장부, 마이크로·슬라이드 필름 등 기록 매체의 기술적 변화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서울기록원의 컬렉션은 아니지만 같은 서울시 공공기관으로서 문서를 관리하는 두 기관이 협력한 흥미로운 전시도 기록열람실에서 올해 말까지 선보인다. 서울도서관 보존서고에서 대여한 자료들로 구성된 <’88 서울 올림픽 자료>전은 한국의 사회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올림픽을 매우 입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연구의 단초를 제공한다.

3 <목동 신시가지 개발 기록>전 전시장 전경.

아카이브와 혁신

서울기록원은 아카이브가 가진 과거 질서에 대한 존중, 보존과 수집의 엄정함 등 본래의 보수적인 성격을 지키면서도 이렇듯 전시를 통해 자료가 가진 기록의 가치들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구 질병관리본부 부지였던 서울혁신파크 안에 서울기록원이 생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아카이브는 ‘혁신’을 의심하면서도, 반대로 혁신과 연결되는 지점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묻혀 있던 기억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기록의 차원으로 만드는 일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비평적인 지식 생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아카이브는 분명 혁신적이다.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해안건축의 설계안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쟁점 사항도 아카이브로서 공간의 보수적 체계를 구축하고, 서울혁신파크라는 장소의 맥락과 의미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라는 부분이었다. 혁신 또한 지난 시간이 쌓아온 사건의 토대 위에서 발생하기에 서울기록원과 서울혁신파크의 관계는 상징적이다. 과거의 시간이 고여 있지 않고 지금과 미래를 위해 접속되어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 기록의 혁신 혹은 혁신적인 기록의 가치가 이곳에서 발현된다.

글 정다영_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공간> 기자를 거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전시 기획과 시각문화 연구를 진행하며, 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사진 제공 서울기록원

※ 8월호 ‘서울 건축 읽기’ 본문 중 “반역 죄인뿐만 아니라 정봉준, 홍경래 같은 의인들과 정약용, 정약종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 사상가들이 처형당했다”를 “반역 죄인뿐만 아니라 전봉준, 홍경래 같은 의인들과 정약종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 사상가들이 처형당했다”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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