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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휘트니와 에이미나의 디바여, 편히 잠드소서
48살의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휘트니 휴스턴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휘트니>가 최근 개봉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슈퍼스타의 민낯과 고통을 마주하다 보면 술과 마약에 찌들어 27살에 세상을 떠난 또 다른 비운의 스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모습이 겹친다. 그의 비극적 삶은 <에이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두 편의 영화를 계기로, 두 명의 디바가 남긴 슬퍼서 더욱 아름다운 음악을 추억한다.

가슴속에 묻어둔 휘트니 휴스턴

나는 휘트니 휴스턴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1980년대 중·후반, 혈기왕성한 10대였던 나는 헤비메탈 키드였다. 휘트니 휴스턴은 ‘범생이’나 듣는 노래라고 짐짓 무시했다. 아니, 그러는 척했다. 실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남몰래 좋아했다. 1985년 발표한 1집 앨범 수록곡 중 조지 벤슨의 곡을 리메이크한 <Greatest Love of All>은 원곡을 잊을 만큼 아름다웠고, <Saving All My Love For You>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매력적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휘트니 휴스턴 노래를 즐겨 듣곤 했다.<br/> 그가 부른 영화음악은 또 얼마나 좋았던지. 1992년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톱스타 가수 역할로 직접 출연해 부른 OST는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운 <I Will Always Love You>는 길거리에서 너무 많이 울려 퍼져 지겨워질 정도였다. 나는 영화를 보지 않고도 <I Have Nothing>, <I’m Every Woman>, <Queen of The Night> 등 OST 명곡들을 줄줄이 외웠다. 1996년 개봉작 <사랑을 기다리며>의 OST <Exhale(Shoop Shoop)>은 지금도 가끔씩 찾아 듣는 R&B 명곡이다.<br/> 1990년대 중반 이후 난 휘트니 휴스턴을 잊었다. 그의 이름을 다시 마주한 건 2010년이었다. 대중음악 담당 기자로서 그의 첫 내한공연 소식을 접한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아직 건재했구나.’ 나는 그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굉장히 빠른 기차를 탄 것처럼 모든 게 휙휙 지나갔어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고, 영화<보디가드>도 찍었죠. 그리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가 크는것을 보고, 영화 <프리쳐스 와이프>를 찍고 나서는 ‘아,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아이가 크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br/> 2010년 2월 6~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그의 첫 내한공연을 봤다. 전성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I Will Always Love You>를 부를 때는 고음이 올라가지 않았고, 일부 노래는 립싱크를 했다. 실망했다기보다 가슴이 아팠다. 약물과 외로움이 망가뜨린 그의 몸과 마음속 고통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공연 리뷰를 차마 쓸 수 없었다. 그냥 가슴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러고는 또 그를 잊었다.<br/> 그의 소식을 다시 접한 건 그로부터 2년 뒤였다. 2012년 그래미 시상식을 하루 앞둔 2월 11일, 비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약물 과다복용 탓이었다. 그의 나이 48살이었다. 그동안 그를 물고 뜯고 하던 언론과 여론은 태도를 바꿔 세기의 디바를 추모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멋지게 재기해 멋진 공연을 보여주어서 멋진 리뷰를 쓸 수 있길 바랐던 나의 꿈은 이뤄질 수 없게 됐다. 나의 마음은 쉽사리 그를 보내주지 못했다. 그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그를 잊어버릴 따름이었다.

관련사진

1~3 영화 <휘트니>.

4 영화 <에이미>.

휘트니와 에이미의 평행이론

8월 23일 국내 개봉한 영화 <휘트니>를 언론시사회에서 봤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캐빈 맥도널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데뷔하기 전 어린 시절부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기까지의 모습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도 충실히 담았다. 그를 망친 주범으로 비난받는 전 남편 바비 브라운을 비롯해 그를 가수로 훈련시킨 어머니 씨씨 휴스턴, <보디가드>를 함께 찍은 케빈 코스트너 등의 얘기를 들으며 휘트니 휴스턴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여리고 상처에 아파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사촌 디디 워윅에게서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바비 브라운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데 집착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오히려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그의 민낯과 고통을 마주하는 일은 괴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단선적으로만 알던 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휘트니 휴스턴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다.
<휘트니>를 보고 나서 2015년 개봉한 영화 <에이미>를 찾아 봤다. 영국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1살에 데뷔해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천재 디바. 하지만 술과 마약에 찌들어 27살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스타. 영화를 보니 둘은 놀랍도록 닮았다. 어린 시절 가족 때문에 아픔을 겪었고, 이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젊은 시절 너무 빨리 스타가 되었고, 그 무게에 힘겨워했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은 그들에게 독이 되었고, 언론과 파파라치는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외롭고 쓸쓸히 세상을 등진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마음이 배로 무거워졌다. 그럴수록 음악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슬퍼서 더 아름다운 그들의 노래, 휘트니의 <I Have Nothing>과 에이미의 <Love is a Losing Game>을 들어야겠다. Rest in peace, 나의 디바들이여.

글 서정민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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