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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건축가 이광노를 기리며엄격함과 로맨틱함 사이
지난 6월 25일, 건축가 이광노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주요 일간지에서는 ‘국회의사당을 설계한’ 건축가 이광노의 부고를 전하며, 일제강점기에 건축을 시작해 해방 이후 대한민국 건축의 역사가 된 그의 삶과 대표작들을 언급했다. 언론이 가장 비중 있게 다룬 대표작은 당연히 ‘국회의사당’이었지만, 여러 건축가와의 협업이었던 국회의사당보다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다른 건물들에서 그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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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남산에 자리한 육영재단 한국어린이회관(현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3 PC 패널로 이루어진 입면.

4 중앙공무원 교육원(현 동국대 혜화관) 건물.

5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특징적인 공보부 텔레비전 방송국(현 남산빌딩) 건물.

일제강점기, 전후 복구, 그리고 경제 개발기의 건축가

건축가 이광노는 해방 직전인 1945년, 박길룡, 이상, 이천승, 김정수 등 일제강점기의 조선 건축가들이 졸업한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방을 맞았다. 1947년 다시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4학년 때 부산으로 내려가 교통부 시설국 건축과에서 근무했다. 건축가 이천승을 비롯한 당대 주요 건축가들과 함께 복구 및 재건 공사 등에 참여했으며, 국군묘지 현상설계, 국군충혼탑 건립 현상설계, 유엔전우탑 건립 현상설계 등에 1등으로 당선되며 청년 건축가로 주목받았다.
전후에는 서울시 마스터플랜에 참여했으며, 1955년에는 무애건축연구소를 설립하고 한미재단시범주택단지(1955)를 비롯한 농업 및 축산업 관련 건물을 설계했다. 1960~70년대에는 공보부 텔레비전 방송국(1961), 중앙공무원 교육원(1962), 국회의사당(1968), 육영재단 한국어린이회관(1969) 등을 비롯한 수많은 공공시설, 서울대 문리과대학(1961) 및 공과대학(1962), 한국과학기술원(1967) 등을 비롯한 교육시설, 서울대 의과대학 병원(1969) 등을 비롯한 의료시설을 설계했다. 전쟁과 복구라는 국가적 위기와 아픔을 겪었지만, 건축가로서 그는 스스로 ‘행운아’라 칭할 만큼 많은 기회를 가졌고, 그 기회들을 활용해 1960~70년대 한국의 대표 건축물들을 만들어냈다.1)

표준과 자유, 기술과 예술, 엄격함과 로맨틱함 사이에서

이광노 건축가의 대표작으로는 ‘국회의사당’이 가장 먼저 언급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대표작을 뽑으라면 육영재단 한국어린이회관(현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을 들고 싶다. 건축은 기술과 예술이라는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으로, PC(프리캐스트 콘크리트)를 활용한 공업화 건축2)의특징과 더불어 기상 레이더가 있는 상하부 2개의 돔과 상부의 회전전망대까지 갖추어 건축가 이광노의 이상을 드러낸다. 똑같이 생산된 PC 패널이 반복되는 입면은 잘 구축된 질서를 보여주고, 굴곡된 디자인으로 음영을 살린 PC 패널은 입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국가 재건과 경제 개발의 시대였던 1960년대. 건축계에서는 모더니즘 양식의 유행과 함께 당시 하이테크 기술로 여겨졌던 커튼월, PC 공법 등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건물은 이러한 당대의 경향을 잘 반영하는 동시에 남산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어린이회관이라는 상징성 역시 드러내고 있다.
이광노의 건축에서는 전반적으로 표준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3)중앙공무원 교육원(현 동국대 혜화관) 건물 역시 표준화와 모더니즘 양식이 잘 드러난다. 수직, 수평 요소의 비례감이 두드러진 파사드와 창문의 멀리언은 엄격함과 표준의 감각을 전달하는 동시에 중앙 입구 부분의 조형적 처리는 이 건물의 강직한 언어에 조금의 일탈을 허락한다. 중앙공무원 교육원 건물이 좀 더 ‘표준’과 ‘엄격함’에 가까운 건물이라면, 남산 언덕 위의 공보부 텔레비전 방송국(현 남산빌딩) 건물은 ‘자유’와 ‘낭만’에 가까운 건물이다. 이 건물 역시 기둥과 멀리언의 수직성이 강하게 다가오지만, 남산으로 올라가는 곡선도로에 면한 대지 형상에 맞춘 곡면 디자인이나 파라펫의 리듬감 있는 곡선 처리 등은 이광노의 다른작품에서 볼 수 없는 낭만적 요소다. 기둥의 형태와 파라펫의 곡선 처리에서는 전통 한옥의 느낌이 잘 드러나는데, 이는 한국성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던 당시 건축계의 분위기와도 흐름을 같이한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기록

1960~70년대 한국 건축을 이끈 건축가 이광노는 후학들에게 건축 작업뿐 아니라 건축에 대한 기록도 남겨주었다. 건축가이자 교육자였던 이광노는 1985년 이후 무애건축연구실 대학원생들과 함께 가회동을 비롯하여 한옥마을, 농촌마을 등과 개항 이후의 근대 건축물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해 <한국근대건축연구>, <미지정문화재 건축물 실측조사 II>라는 2권의 책4)을 펴냈다. 각 건물의 사진뿐 아니라 실측한 도면도 담고 있어 당시의 건축물을 연구하고 기억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당시 조사한 건물 중 상당수는 문화재가 되었고, 이후 철거된 건물들의 경우 그 건물을 기억하는 유일한 기록이 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복구기, 그리고 경제 개발기라는 그야말로 격동의 20세기를 겪은 건축가 이광노. 그는 국가 재건과 경제 개발을 위해 요구된 시대정신을 건축으로 표현하고 생산해냈다. 애정을 가지고 오래된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건축가이자 교육자였다. 향년 90세의 나이. 3개의 건물과 2권의 책으로 그를 기억하며, 이제 저 하늘 위에서 평안히 쉬시기를 기도한다.

1) 2015년 월간미술에서 출간한 <무애 이광노 건축 작품집> 참조.

2) 1960년대 한국 건축의 주요 화두였던 공업화 건축은 공장에서 생산된 커튼월 혹은 PC 등을 현장에서 조립하여 사용함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인 건설이 가능한 건축을 의미한다.

3) 이광노 건축가는 1966년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한국표준센터의 설계를 담당하기도 했다.

4) 이 2권의 책은 합쳐져 2014년 곰시에서 <한국근대건축>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글·사진 이연경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한성부 내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도코모모, 도시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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