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름다움이 모인 동네
부산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자라다 25살 무렵, 잡지기자가 되면서 서울에 왔다. 김해평야 한가운데 논밭에 둘러싸인 촌락, 300평이 넘는 텃밭을 품은 너른 집에 살다가 콘크리트 마당을 지나 볕도 잘 들지 않는 작은 방 한 칸에 사는 건 유배생활 같았다.다행히 10여 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거처도 조금씩 나아졌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한 공허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북촌에 취재를 갔다가 그곳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서울에서 본 적 없는 낮고 환한 동네에 단박에 반해버렸다. 내키는 대로 아무 골목으로 들어서도 담을 나누어 쓰는 소담한 한옥이 이어지는 정취는 낯선 듯 낯익었다. 햇살 가득한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예스런 가게가 마주한 풍경은 흡사 소읍 풍경처럼 정겨웠다. 이전까지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 번다한 메트로폴리스였는데 가회동을 만나고서야 서울 또한 ‘사람 사는 데’로 다가왔다. 비로소 콘크리트 틈 사이로 돋아난 흰민들레가 보였다.
끝내 북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현대식으로 개조했지만 어엿하게 기와를 인 우리 집은 한옥치고 드물게 옥상이 있어 작으나마 텃밭도 만들었다. 함께 사는 고양이 ‘메이’는 옥상 문으로 나가 북촌 전망을 즐기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고양이들과 격전을 벌이더니 이내 그들과 어울려 날마다 밤마실을 즐기는 ‘북촌 고양이’로 거듭났다.
가회동은 살아보니 더 좋은 동네였다.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있어 언제라도 궁궐 나들이를 하고, 가까운 삼청동과 서촌까지 느긋이 걸어 다녔다. 정독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지금은 사라진씨네코드 선재에서 예술영화를 봤다. 머릿속이 번잡할 때 호젓한 소격동이나 원서동 골목을 걸으며 마음의 속도를 늦췄다. 그야말로 가회동은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여유, 곧 아름다움이 모인(가회,嘉會) 동네였다.
나만의 자연학습장, 삼청공원
다만 너른 숲이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때때로 창경궁과 종묘에서 ‘녹색 허기’를 채우다가 우연히 삼청공원을 발견했다. 종종 삼청동 산책을 하며 스치듯 지날 때는 몰랐는데, 작정하고 살펴보니 삼청공원은 갖가지 풀과 나무가 사는 울창한 숲이었다. 마침 숲해설가 공부를 시작하던 무렵이라 ‘나만의 자연학습장’ 삼아 아침저녁으로 삼청공원에 드나들었다.
서울숲이나 남산공원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삼청공원의 매력은 무궁했다. 낮은 산자락에 기대 있어 길의 고도와 모양이 구간별로 제각각이라 오래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숲 안쪽에는 높이 솟은 아까시나무, 소나무, 가죽나무, 느티나무 등 거목이 살고, 숲길 가장자리에는 조팝나무, 참빗살나무, 국수나무, 쥐똥나무, 수수꽃다리 등이 살았다. 드물게 호두나무나 아그배나무, 복사나무, 고욤나무 등도 살았다. 공원 내 가회배수지길에 죽 늘어선 채 계절마다 두고두고 못 잊을 장관을 선사하던 귀룽나무는 오래도록 그리운 나무다.
봄이면 숲에서 가장 먼저 잎을 틔우는 귀룽나무는 늘어진 가지와 포도송이 같은 꽃이 참으로 고아하다. 잔바람에 긴 가지와 탐스러운 꽃이 하늘하늘 흔들리면 그 아래 앉아 평정심을 되찾았다.아련하고도 평화로운 기억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귀룽나무가 그토록 좋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 고아한 멋이 가회동과 꼭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가회동에 살며 삼청공원을 학습장 삼아 숲해설가 공부를 한 이야기는 <서울 사는 나무>라는 책으로 엮어 나왔고, 1쇄 한정 부록으로 ‘삼청공원 나무지도’를 만들었다. 공원 길가에 사는 나무를 낱낱이 밝힌 그림지도는 삼청공원을 향한 소박한 헌사였다.
가회동이 좋아질수록 입춘에 대설을 걱정하듯 ‘행여 여기서 오래못 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5년여가 흐른 지금, 옥수동에 살며 생태서점을 운영하느라 마음만큼 가회동을 자주찾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 갈 적마다 서울을 떠올리면 항상 북촌의 한옥과 가회동 골목이 떠오른다. 요컨대 나에게 서울은, 가회동이다.
- 글·사진 장세이 옥수책빵 대표, <서울 사는 나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