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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분단을 그린 마지막 영화로 기록되길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극적인 현실을 두고 쓰는 낡은 말이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급변하는 현실을 보고 있자면 현실이 영화의 상상력을 앞서는 듯하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농담 삼아 대통령으로 희화화되던 도널드 트럼프가 진짜 미국 대통령이 됐고,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된 전 대통령의 딸이 탄핵당했다. 게다가 17대, 18대 대통령이 모두 각종 비리로 구속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했고, 북한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10년 가까이 단절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채 종전 선언에 합의했다. 이 모든 게 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어리둥절할 만큼, 우리는 빠르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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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극적인 현실

남북정상회담의 순간, 남북 정상이 손을 꼭 잡고 월경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리고 성명서를 통해 연내 종전 선언 합의라는 소식을 전했다. 어리둥절하게 웃다가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사실, 솔직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왔지만 진심으로 통일을 기원하거나 상상한 적은 없었다. 휴전이라는 상황을 알고 매번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에도 종전 역시 상상 밖이었던 것 같다. <간첩 리철진>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간첩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의형제>, <공조> 등 분단 상황을 빗대어 영화적 상상력을 펼친 영화는 많았지만, 통일 이후나 종전 상황을 상상하는 영화가 없었던 것도 이런 정서 때문인지 모르겠다.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전제로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통일이라는 가장 극적인 상상력에 이르지는 못했다. 악마의 손톱을 지닌 북한군이라는 소재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북한 지도자를 돼지로 묘사하는 데 서슴없었던 <똘이장군>에 세뇌된 전후 세대들은 ‘공산당이 싫은’ 이승복 어린이를 모두 마음에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는 핵을 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며, 그 정권을 유지해가고 있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는 가장 극적이고, 있을 법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분단 상황을 그린 영화 중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발칙하지만, 있을 법하고 그럴 법한 현실감이 최대 장점이었다. 특수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상부로부터 임무를 받고 잠복해 있다가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보호한다. 남한까지 피신해온 그를 북한 정예요원이 뒤따르는 동안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북한 핵 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전 부인의 병원에 숨어든 엄철우 일행을 찾는다.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을 앞두고 두 명의 철우는 손을 맞잡는다. <강철비>는 이제까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 지독하지만 예상 가능한 상상력을 현실처럼 그린 영화다. 남과 북을 떠나, 누군가의 남편이며 아버지인 각각의 철우를 통해 정서적 연민까지 담아내며 공감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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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승복이를 내려놓고…

우리의 역사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됐고, 3년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남한과 북한이 두 동강이 나, 한반도의 허리에 비무장지대와 군사 분계선을 설치한 지 65년이 흘렀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고향을 잃은 세대, 전후 세대, 민주화항쟁 세대, IMF 세대, 촛불집회 세대가 모두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국경지대에 투기가 몰리고, 땅값이 치솟고 있다는 소식조차 종전의 예고편같다. 언제 이렇게 달라졌을까? 부당함에 맞서고, 정의를 기원하며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들었던 촛불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벅찬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곧 실현될 종전 선언과 또 앞으로 희망하는 통일까지 상상 가능한 시간이 왔다. 이왕이면 6월 25일이나, 7월 27일에 종전 선언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 그저 무겁고 묵직했던 6월이 희망의 달 이 되는 것도 가능하겠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도 없어지고, 핵 위협이나 분단이라는 용어를 쓸 일도 없이 마음속 승복이를 모두 놓아주는 날이 올 거란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영화사와 역사가 <강철비>를 분단과 핵이라는 남북문제를 다룬 마지막 영화로 기록하는 날도 곧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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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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