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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남산 그리고 남산도서관초여름의 산책
서울시민에게 남산이란 어떤 곳일까.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남산에는 남산타워와 케이블카, 일명 삼순이 계단과 산책로가 있어 서울의 바쁜 일상 속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남산은 관광과 산책, 데이트하기 좋은 곳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품은 장소이기도 하다.

늘 그 누군가의 공간이었던 20세기 남산

20세기의 남산은 늘 누군가에게 ‘빼앗긴 땅’이었다. 1882년 이후 서울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지금의 충무로를 중심으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해나갔고, 남산 일대에는 일본공사관, 통감부, 조선총독부뿐 아니라 경성신사와 동본원사 및 조선신궁 등의 종교시설들이 들어섰다. 특히 조선신궁은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스펙터클을 형성하며 조선총독부 앞 광장 이상으로 식민지 풍경을 형성했다.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청사가 중앙청이 된 것과는 달리 조선신궁은 해방 다음날 바로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폐쇄 행사를 통해 철거됐다. 1949년에는 조선신궁이 철거된 자리에 백범 김구 동상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1956년 백범을 대신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들어섰다. 그러나 4년 후인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의 독재는 막을 내리고 그의 동상 역시 철거됐다.
1960~70년대 남산은 국가 주도로 대형 건축물들이 건립되며 빠른 속도로 경관이 변해갔다. 조선총독부가 있던 자리에는 서울중앙방송국과 원자력원이 세워졌고 그 남측 일대에는 독재정권의 공포정치가 자행되던 중앙정보부 건물들이 들어섰다. 장충단공원 자리에는 국립극장을 비롯하여 남산자유센터와 타워호텔 등이 들어섰으며, 남산 1~3호 터널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도 1969년 백범 김구의 동상이 세워졌을 뿐 아니라 남산도서관 및 어린이회관이 차례로 건축되었다. 이처럼 남산은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자, 반공과 방공의 상징인 동시에 독재정치의 공포가 서린 장소가 되었다. 누군가는 연인의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러 가는 남산이,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사라져버리고 마는 장소가 된 것이다

1960~70년대 한국 건축 전시장

자연경관을 해치며 대형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1960~70년대의 남산은 눈부신 경제 성장과 함께 드러난 독재정치의 민낯을 오롯이 보여주는 도시공간으로서, 그 시대의 한국 사회를 집약해 보여줬다. 하지만 당시 건축가들에게 아마 남산은 기회의 땅이자,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전시장 같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건축가들은 남산에 한두 개씩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남겼고, 이 건물들은 산업화와 공업화, 그리고 한국성에 경도되어 있던 1960~70년대 한국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수근이 설계한 남산자유센터와 이희태가 설계한 국립극장, 국악사양성소(현 공연예술박물관)가 한국성을 추구하는 문화시설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면, 현재 애니메이션센터로 사용되는 김태식의 서울중앙방송국과 김정수의 원자력원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수직과 수평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모더니즘 양식의 국제적 감각을 보여준다. 길 건너편의 공보부 텔레비전 방송국 역시 콘크리트의 물성을 활용한 부드러운 곡선이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의 반복적 사용이 돋보이는 이광노의 교육문화회관과 철근 콘크리트의 수평 슬래브가 강조된 이해성의 남산도서관은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공업화 건축의 특징들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중앙정보부의 건축물들은 건축가가 알려져 있지 않고, 외관에서는 이렇다 할 건축적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쩌면 이는 그 건축물들의 숙명 아니었을까. 무표정하고 굳게 닫힌 외관은 내부의 숨겨진 고문실들과 지하통로 등 밖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을 테니.

관련사진
1 수직과 수평 요소만으로 지어진 원자력원.
2 콘크리트의 물성을 활용한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공보부 텔레비전 방송국.
3 4겹의 콘크리트 슬래브를 쌓아 만든 남산도서관. 현재의 모습은 201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완성됐다.
4 도서관을 둘러싼 숲으로 난 작은 돌출창. 이 창을 통해 숲의 풍경이 내부로 들어온다.

많은 이들을 품어주는 숲속의 도서관

남산 위를 가득 채운 건물들 중에서 유독 마음이 가는 건물이 있다. 크게 높지도 않고, 형태가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남산의 푸름 속에 박혀 있는 수평의 콘크리트 슬래브가 눈에 띄는 남산도서관이다. 백범광장을 지나 소월로를 따라 오르면 만나게 되는 남산도서관은 남산의 신록 속에 둘러싸여 유독 고요하게 느껴진다.
다소 무거워 보이는 콘크리트 슬래브가 4겹 쌓여 만들어진 이 건물은 1960년대 유행했던 공업화 건축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도서관 개관 초기의 사진을 보면 아직 나무가 자라지 않아 다소 육중한 모습으로 주변을 압도하고 있는데, 5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며 주변의 수풀이 자라 이 관계가 역전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서울의 시립도서관 중 두 번째로 오래된 도서관으로,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공공도서관으로서는 처음 설치된 경성부립도서관을 그 기원으로 한다. 경성부립도서관은 1927년 소공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해방 후에는 남대문도서관으로 불리다가 1964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이전 이후 ‘남산도서관’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렸다.
개관 당시 1,602석의 열람석, 7,000여 권의 장서를 갖추었던 남산도서관은 오랫동안 시립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공공도서관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책을 보고픈 시민들은 남산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산속에 위치해 교통은 조금 불편하지만, 남산순환로를 산책 겸 걸으며 도착한 남산도서관에서는 숲속에서 공부하는, 혹은 독서하는 기분을 즐길 수 있다. 도서관의 창들을 통해 도서관과 맞닿은 숲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도서관 이용자들은 언제라도 바람 쐬러 남산으로 향할 수 있다.

글·사진 이연경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한성부 내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도코모모, 도시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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