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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유선동 감독의 동부극장과 대능극장옛날 극장에 대한 두세 가지 기억들
모바일로 예매해 4DX로 영화를 관람하는 요즘이지만, 동시상영관이나 재개봉관에서 ‘비 내리는’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멀티플렉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의 극장이지만, 어린 시절 그곳에서 접한 영화들은 당시의 소년, 소녀들에겐 언제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유선동 감독이 ‘극장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의 향수와 그리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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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디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이와이 지 감독은 “‘어떤’ 영화를 보느냐보다 ‘언제’ 보느냐가 더중요하다”고 했다. 백번 천번 공감하는 말이다. 여기에 한 숟가락만 더 얹자면 ‘언제’ 보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서’ 보느냐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과학의 날에 교내 TV를 통해 전교생이 다 같이 봤던 19금 SF영화 <뱀파이어>가 기억난다. 도대체 누가 선정한 영화인지 지금도 미스터리하다. 야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교내 방송국의 자체 검열로 ‘여러분 잠깐만~’이라는 자막 화면이 흘러나왔는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러닝타임의 절반가량 동안 ‘여러분 잠깐만~’이 흘러나왔다. 또 중학교 때 티셔츠를 받기 위해 친구 해철이와 <인디아나 존스 3> 개봉 날 새벽 6시에 ‘씨네하우스’극장에 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예전엔 개봉 날 극장에서 선착순으로 해당 영화 포스터가 프린팅된 티셔츠나 팸플릿을 선물로 줬다. 6시에 갔는데도 매표소 앞에서 이불 깔고 잠을 잤던 사람들때문에 그 어떤 기념품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시공간의 선연한 기억과 연결된 영화들은 그 당시 그 어떤 경험보다도 생생한 감흥으로 남아 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어릴 적 영화를 보았던 ‘옛날 극장’에 대한것이다. 요즘 10대, 20대 관객들은 ‘재개봉관’, 또는 ‘동시상영관’이라고 하면 좀 생소할 것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재개봉관’은 말 그대로 시내 중심에서 개봉했던 영화를 변두리 지역에서 다시 개봉하는 극장을 말한다. 예전에는 요즘같이 전국 몇 백 개극장에서 한 영화를 트는 게 아니라 ‘한 영화’를 ‘한 극장’에서만 틀었다.(<다이하드>는 단성사에서만 6개월 넘게 상영해 80만 관객을 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디지털 상영이 아니라 필름 상영이었던지라 재개봉관으로 내려온 필름은 화면에 흠이 많이 나서 소위 말하듯 ‘화면에 비가 내렸다’. ‘동시상영관’은 ‘재개봉관’에서 종영한 필름을 다시 받아서 트는, 그리고 유사한 장르의 영화를 하나 더 끼워 트는 방식으로 한 편 가격에 두 편을 볼수 있는 극장을 말한다.(이 정도 되면 ‘화면에 폭우’가 내리는 것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물론 지금은 거의 다 없어진 형태의 극장들이다. 요즘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슈트 입은 신사’라면, 그때의 재개봉관이나 동시상영관은 ‘추리닝 입은 동네 형’ 정도로 비유할수 있다.(실제로 진한 인상의 동네 형들이 그곳에서 내 주머니 속동전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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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첫 번째 소개할 극장은 화양사거리의 동부극장이다. 아마도 1980년대 전후에 성동구, 광진구 쪽에서 거주했던 이라면 모를 리 없는 극장이다. 그쪽 지역에서는 나름 번듯한 상영관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 영화를 언급하자면 <람보 2>, <코만도>, <벤허>,<구니스>, <돌아이> 등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종로3가 개봉관까지 가기에는 너무 어린 학생들, 근처 어린이대공원에서 데이트를 끝내고 다음 코스로 온 커플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람보 2> 같은 경우는 관객이 하도 몰려서 목욕탕에서 때 밀 때 앉는 납작한 플라스틱 의자들이 스크린 바로 앞까지 쫙 깔리곤 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죽은 척하고 있다가 번개같이 바주카포를 들어 헬기를 격추하는 장면에서 극장 안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 기억이 동부극장에서의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두 번째 소개할 극장은 군자역 사거리에 있었던 동시상영관 대능극장이다. 대능극장이 자리한 상가 건물은 그 당시 나에겐 나름요즘의 멀티플렉스 같은 공간이었다. 난 용돈을 받으면 상가 1층에 있는 ‘공주글방’이라는 서점에서 문고판 소설을 한 권 사고 떡볶이를 사먹은 뒤, 지하 1층으로 슥 내려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대능극장으로 들어갔다. 극장 로비에 있는 TV에서는 에로물이 계속 재생되었고, 때로는 본편 영화보다도 그걸 더 보고 싶었으나 TV 앞자리는 늘 인상 진한 동네 형들이 선점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 당시 동시상영관은 극장 ‘프로그래머’의 역할이매우 중요했다. 이를 테면 <에일리언>과 <프레데터>를 동시에 거는 감각! <영웅본색 1>과 <영웅본색 2>를 동시에 붙이는 센스! 아마도 한국의 ‘컬트영화’는 동시상영관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물 때 극장 안 동네 형들 역시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표정으로 함께 성냥을 물었고, 주윤발이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울 땐 극장안 여기저기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진짜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아니 ‘극장에서 담배피우던 시절’ 얘기다.
13살이 되던 어느 날, 전학을 가게 되면서 두 극장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전학을 계기로 외향적이던 성격은 내성적으로 바뀌었고, 홀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홀로 보내는 시간의 상당 부분은 집에서 ‘VHS 비디오’를 빌려보는 것이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갓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작’ 비디오에길들여지는 동안 동시상영관의 ‘비 내리는 스크린’은 조금씩 잊혀졌다.
시간이 흐른 뒤 대학교 신입생 때 오랜만에 동부극장 앞을 지날일이 있었는데, 그때 극장은 이미 예전의 위용을 잃고 저열한 에로영화를 두 편 트는 허름한 동시상영관이 되어 있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도 흥망성쇠가 있구나, 하는 새삼스런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디지털, 멀티플렉스, 모바일 예매, 아이맥스, 4DX. 모든 것들이 너무나 편리하고 쾌적하고 압도적이지만, 동시상영관의 비 내리던 스크린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만큼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글 유선동 영화·드라마 감독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며, 최근 첫 장편소설 <도둑맞은 책>을 출간했다. 차기작으로 영화 <0.0MHz>와 드라마 <투페이스>를 준비 중이다.
사진 제공 한겨레,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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