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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

2022년 5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투란도트>는 공주 역에 캐스팅한 안나 네트렙코 대신 우크라이나 소프라노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를 무대에 세웠다. 그는 커튼콜에서 의상 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치고 등장했다 ⓒKen Howard/Met Opera

1월 24일, 독일 헤센주는 주도 비스바덴에서 열리는 5월 축제Maifestspiele에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지자체가 러시아 예술가에 직접 반대를 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안나 네트렙코는 우크라이나의 제재 예술가 명단에 올라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하고,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도네츠크에 새 극장을 짓는 데 거액을 후원하는 등 친푸틴 인사로 여겨지는 과거 때문이다. 축제에 참여하기로 한 우크라이나 출신 음악가들은 네트렙코가 올 경우 자신들은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문화부 장관과 국립 오페라극장장은 축제에 탄원서를 보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1월 31일, 비스바덴 극장Hessisches Staatstheater Wiesbaden은 공식 답변을 냈다. “페스티벌에서 러시아 문화를 완전히 배제하라는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의 요구는 ‘자유 국가’에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전쟁과 푸틴 정권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에 대한 비난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 우리는 국제 페스티벌로, 하나의 국가의 문화를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독일 문화부 장관 클라우디아 로스Claudia Roth는 “축제 프로그램 설계는 극장의 책임과 결정”이라 밝혔다.
안나 네트렙코는 전쟁 이후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애매한 행보 때문이다. 일찌감치 푸틴을 지지한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나 반대로 푸틴을 비판한 대부분 러시아 예술가와 달리, 전쟁 발발 직후 그녀는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네트렙코의 태도가 불분명하다고 여긴 뉴욕 메트 오페라와 뮌헨 슈타츠오퍼는 그녀의 출연을 무기한 제한했다. 한 달 뒤, 네트렙코는 전쟁을 반대한다고 뒤늦게 선언했다. 선언 덕에 네트렙코는 파리 필하모니·빈 슈타츠오퍼 같은 주요 공연장의 스케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실상 많은 이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푸틴과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1년을 기억하며 모금 콘서트를 열었다 ⓒMet Opera

2004년 안나 네트렙코는 블라디미르 푸틴으로부터 러시아 연방이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President of Russia

나라마다, 극장마다 다른 보이콧 양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2022년 2월 24일 시작됐다. 21/22 시즌 도중 혼란을 맞은 공연계는 수습을 위해 러시아 연주자에 대한 입장 표명과 공연 취소, 대체 연주자 물색 등 많은 일들을 번개처럼 처리했다. 전쟁 반대를 즉각 밝히지 않은 예술가의 공연은 취소됐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즉시 퇴출한 뮌헨 필하모닉은 모범으로 여겨졌고, 정세를 살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지탄받았다. 일부 러시아 예술가들은 자신의 의견으로 인해 러시아 내 가족이나 동료 음악가들이 숙청당할까 봐 두려워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와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의 상임지휘자인 투간 소키예프Tugan Sokhiev는 의견을 밝히는 대신 두 극장에서 모두 사임했다. 극장과 에이전시도 예술가를 옹호할 것인가, 손절할 것인가 고민해야만 했다.
보이콧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문화적으로 가까운 모나코는 2022년 4월 네트렙코의 공연이 대부분 취소돼 스케줄이 빈 사이, 그녀를 오페라 <마농 레스코> 주연으로 초청했다. 프랑스에서는 논란 속에 리사이틀이 열렸으며 파리 오페라는 올해 초 그녀를 주역으로 기용했다.
실질적인 움직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났다. 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2022년 6월 직접 네트렙코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8월 쾰른 서부독일방송교향악단은 그녀와 협연을 강행했으나 반대를 의식해 “콘서트 수익을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도시를 재건하는 데 기부하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경과 60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충돌이 잦다. 우크라이나 영사는 직접 우크라이나 제재 예술가에 대한 공연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지난해 9월 네트렙코 주연의 <라 보엠>이 열린 빈 슈타츠오퍼 앞에는 시민들이 “네트렙코는 정치적이지 않지만, 그녀는 테러리스트를 후원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모였다.
러시아 주요 은행의 후원을 받는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와 그의 오케스트라 무지카에테르나musicAeterna의 공연 여부도 언제나 이슈다. 독일 쾰른 필하모닉은 올 1월 예정된 쿠렌치스 지휘를, 함부르크의 엘필하모니는 4월에 예정된 무지카에테르나 공연을 취소했다. 쾰른 필하모닉 예술감독은 공연을 취소하면서 “쿠렌치스의 예술적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의 정치적 태도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최근에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영화음악 ‘알렉산더 넵스키Alexander Nevsky’ 프로그램을 삭제했다. 합창단의 3분의 1이 공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번 비스바덴 사건은 변화 없이 일단락됐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하다. 유럽 공연계에 러시아가 여전히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익숙해진 사실을 다시 상기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한 보이콧을 넘어, ‘왜’ 지금까지 보이콧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본질 말이다. 여전히 극장 밖에서는 사람들이 생존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극장 안의 안온한 박수를 규탄한다.

글 음악평론가 전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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