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서울 인사동 폐가구점 건물에서 작가 직거래 장터로 열린 ‘유니온아트페어’ 전시 모습.
성황리에 막을 내린 ‘유니온아트페어’
가장 뜨거운 눈길을 받은 건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인사동 피맛골 뒷골목의 폐상가 건물에서 ‘유니온아트페어’란 제목을 내걸고 열흘간 치른 직거래 장터였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대표작가로 나간 이완 작가와 최두수 작가 등이 꾸린 극동예술연합이란 작가 모임이 주최한 행사다. 방치된 피맛골 뒷골목의 옛 ‘빠고다가구점’ 폐건물을 비엔날레 전시장 같은 얼개로 리모델링한 것부터 화제가 됐다.
3층짜리 폐가구점 건물에는 앙상한 철거 흔적이 남은 벽들과 바닥 공간을 무대로 그림과 설치 작품, 미디어아트 등의 다양한 장르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화랑가에서 얼굴도 내밀지 못했던 청년작가 100여 명의 작품들을 날것 그대로 여기저기 내걸거나 펼치면서 ‘신선한 기획’이란 호평이 나왔다. 원로 중견작가들과 유명 만화가가 찬조 출품한 작품들도 있다 보니 수천만 원대의 고가 미술품도 일부 있었지만, 작품 값은 상당수가 10만~100만 원대였고 화랑처럼 사고팔 때 중간 마진을 붙이지 않았다. 유니온아트페어는 지난해 첫 회 행사를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공간에서 치른 바 있는데, 올해는 첫 회보다 규모가 3배 가까이 커졌다는 게 장터를 마련한 작가들의 말이다.
유니온아트페어는 청년작가들이 100% 자체적으로 기획한 행사는 아니다. 피맛골의 폐가구점 건물을 사들여 재개발을 추진해온 한 디자인기업이 청년작가들에게 “판을 벌려보라”고 공간을 내줘 성사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가 수천만 원대의 공공지원금으로 행사 밑천을 대준 것도 특기할 만하다.
예경 쪽은 “화랑공간이나 아트페어의 진입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시장에서 소외된 청년작가들의 지속적인 작업 환경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자체 미술장터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화랑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신진작가들과 구매자들의 감상과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장 저변 확대에 주된 취지가 있다는 얘기다.
작가 직거래 장터는 2015년 10월 신생공간 10여 곳이 연합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차렸던 장터 ‘굿즈’가 작가들과 관객의 관심 속에 호평을 얻은 것이 본격적인 시발이었다. 이후 예경 지원을 받는 장터만 지난해 12곳이 차려졌고, 올해는 17곳이나 되는 직거래 장터가 차려졌거나 준비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만 해도 유니온아트페어를 필두로 7월엔 ‘그림도시 S#2’가 서울 성수동에서 개설됐고, ‘취미관’(10월 10일~11월 5일/12일), ‘캐비넷 아트페어’(10월 18일~22일), ‘별, 바람 그리고 바다’(10월 26일~31일), ‘블라인드 데이트’(11월 1일~14일), ‘더 스크랩’(12월 중순) 등이 추가로 개설될 예정이다.
미술품 직거래 시장이 지속되려면…
심기가 불편해진 건 기존 화랑업자들이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움트던 작가 직거래 장터가 유니온아트페어 개최를 계기로 최근 새로운 대안적 시장으로 부각되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화랑들의 권익단체인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6월 한국미술협회와 함께 마련한 정책 세미나를 통해 유니온아트페어 같은 직거래 장터들이 유통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면서 “직거래 장터 출품 청년작가들의 화랑 영입을 자제하겠다”, “장터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등의 반응을 내놓았다.
작가들이 중개화랑을 끼고 컬렉터들과 거래하는 것은 서구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비롯된 관행이다. 작가들은 중세 이래로 교회나 황제, 영주들의 후원 아래 장인으로 일했지만, 18세기 이래 시민혁명과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후원 세력을 잃고 불특정 대중에게 작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금융기관 비슷하게 안목과 재력이 있는 수집가들에게 판로를 알선해주는 화랑들이 생겨난 것은 필연적이었다. 19세기 말 인상파 대두 이후 화랑업자들은 유망 작가들을 컬렉터와 연결해주면서 새 사조를 부각시키고 유행시키는 후견인 구실을 맡게 된다. 입체파, 팝아트 등 20세기 미술사를 수놓은 주요 유파와 사조들이 전위적 흐름을 앞서 시장에 소개하고 상품화한 유력 화랑주들의 안목과 지원 덕분에 명성을 얻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선풍을 일으킨 단색조 회화 같은 70년대 추상회화의 재조명에 화랑업자들이 기여한 게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내력을 돌이켜보면, 요즘 국내 청년작가들이 나라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잇따라 직구 장터를 꾸리게 된 배경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컬렉터에 연결해주는 화랑의 기능이 미약해지자 이에 대한 불만에서 자구책이 나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 화랑가에서 현재 전시 가능한 청년작가는 전체의 10%도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화랑업자들은 장기 불황으로 환금성이 높은 원로 중견작가들의 단색조 추상작업들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시장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미술판에서 업자들의 안목과 거래 행태는 이미 불신과 냉소를 받은 지 오래다. 천경자 화백과 이우환 작가의 고질적인 작품 진위 논란이 거듭되고 있고, 무자료 밀실 거래와 젊은 작가들에 대한 인색한 투자 등이 오랫동안 허실로 지적되어 왔지만, 개선되는 조짐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직거래 장터가 지속성을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건실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무명의 청년작가들이 주류지만, 기성 화단의 유명작가들도 일부 뒤섞여 있어 정체성이 모호하다. 화랑의 아트페어처럼 구매자들을 납득시킬 만한 객관적인 가격 설정 잣대가 세워지지 않았고, 출품된 작품 수준의 편차가 적지 않다는 등의 맹점들도 있다. 화랑들의 고급 시장과 별개 영역에서 신진 청년작가들을 소개하고 검증하는 직거래 시장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립해야 지속성과 자생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 글 노형석_ 한겨레 미술전문기자
- 사진 제공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