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두운 방에서 감상할 영화는 이거다
SF소설가가 추천하는 호러 영화 세 편
무서운 영화를 추천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사람들마다 무서워하는 것이 다르다.
사지 절단은 덤덤하게 보면서도 귀신이 나오면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만만치 않게 많다.
리스트를 짜면서 ‘가장 무서운 영화’를 뽑는 건 포기했다.
대신 최대한 개성이 담긴 공포를 주는 영화 세 편을 선정했다.
모두 국내에서 OTT와 VOD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공포의 낌새를 감지하다
<미드소마> | 아리 애스터 | 2019
최근 잠시 반짝한 용어로 ‘Elevated Horror’ 다른 말로 ‘고급, 고상한 호러’가 있다.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 조던 필의 <겟 아웃>,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 제니퍼 켄트의 <바바둑과> 같은 영화가 여기에 분류됐다. 호러는 호러인데, 다른 영화에 비해 장르 공포에 집착하지 않고 예술성과 메시지에 치중하는, 그러니까 그냥 다른 호러보다는 등급이 높은 영화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곧 장르영화를 즐기는 팬의 반박을 받았다. 호러는 단 한 번도 찰나의 공포만을 추구한 적이 없었고 늘 내용면에서 다양했으니까. 다양한 내용의 호러 영화가 만들어 지는 건 좋은 일이고, <미드소마>도 좋은 일의 한 축을 담당한 영화다. 평범한 미국 젊은이들이 스웨덴 시골 마을의 하지 축제에 말려든다는 내용의 <미드소마>는 확실히 호러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잔인한 장면도 있다. 공포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팬들이 즐긴 것은 공포와 잔인성이 기묘한 방식으로 뒤틀리면서 관객에게 선사하는 병적 카타르시스였다. 물론 일반적으로 공포나 잔인함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긴 하는데, <미드소마>가 주는 카타르시스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고급 호러라는 표현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호러 장르가 다양한 질감과 매력을 가진 장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최근의 사례로 <미드소마>는 이상적이다.
요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귀기
<영혼의 카니발> | 허크 하비 | 1962
주로 미국 캔자스에서 학교용 교육영화를 만든 허크 하비의 유일한 상업영화인 <영혼의 카니발>은 정말로 이상한 호러다. 교통사고 생존자인 주인공이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취직한 마을에서 수상한 유령의 스토킹을 당하는 이야기 자체는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스토킹 내용을 다룬 이후 영화 상당수가 <영혼의 카니발>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전에도 선례는 충분했다. <영혼의 카니발>을 낯설고 무섭게 만드는 건 영화의 스타일이다. 심지어 그 스타일의 일부는 의도하지 않았다. 허크 하비는 재능 있고 창의적인 영화감독이었지만 기술·경험·돈이 부족했다. 주연인 캔데이스 힐리고스를 제외하면 배우는 모두 동네 아마추어 극단원이었다(감독은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유령을 연기했다). 얼마나 제작 조건이 열악했느냐면 주인공이 달아나는 장면에서 발소리가 화면과 안 맞는다. 폴리Foley음향효과를 얻기 위해 인공적으로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일 전문가를 고용할 돈이 없어 감독이 직접 음향효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괴하게 아름답다. 꼼꼼한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귀기가 느껴 진달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비는 돈과 경험만 부족했을 뿐이지 훌륭한 호러 감독이었다. 영화는 거칠지만 인상적인 장면의 연속이다.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죽음의 악령이 다가온다
<비욘드> | 루초 풀치 | 1981
이탈리아 호러 영화를 한편 소개하고 싶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수상 쩍을 정도로 루초 풀치 영화의 접근성이 높다. 많은 영화 중 <비욘드>를 뽑았는데, 그래도 말이 되는 스토리가 있어서 따라가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지옥문 일곱 개 중 하나가 루이지애나의 호텔 지하실에 연결돼 악령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야기다. 당연히 그 주변에서는 이상한 죽음이 생기고 죽은 자들은 좀비가 돼 움직인다.
지금 보면 소름 끼칠 만큼 무서운 영화는 아니고, 다양한 하드고어 효과가 난무하지만 그 정도는 호러팬이 아닌 관객도 이미 익숙하지 않을까? 게다가 당시에도 훌륭했다고 할수 없는 분장과 특수효과가 튄다. 이런 장치보다는 영화를 끌어가는 루초 풀치 특유의 미의식이 인상 깊다. 논리나 흐름 따위는 소홀히 하면서 거의 시적인 초현실주의가 느껴지는 이야기와 질주하는 영화적 상상력이 넘쳐난다.
글 듀나 SF소설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