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남기는 그림 편지
이찬재·안경자 부부
어린 손자를 위해서 이찬재 씨는 일상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안경자 씨는 마음을 표현한 글을 남긴다.
하루하루의 기록은 인스타그램에 간명하게 쌓이며, 수두룩한 추억은 보는 이의 흐릿해진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손자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을 본 많은 사람이 이에 감동받았고, 1942년생 동갑내기 부부가 단순한 그림체와 따뜻한 언어로 표현하는 가족의 일상을 본 한 독자 부부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Q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손주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인스타그램에서 그랜드파 찬이라 불리는 이찬재입니다.
저는 그림에 얽힌 스토리를 정리해 글을 쓰는, 그랜드마 안경자예요.
Q 인스타그램 팔로어 41만 명이 모였습니다. 계정 이름은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인데요.
어떤 계기로 손자를 위한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됐나요?
인스타그램은 2015년에 시작했어요. 당시에 브라질에서 생활했는데, 아들은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딸과 손자마저 한국으로 갑자기 돌아가게 됐어요. 저는 교사였으니까, 집에 혼자 있는 할아버지는 울적하잖아요. 제 아들이 아빠 걱정하면서 ‘안되겠다. 아빠 취미를 가져야겠다’라고 했죠. 그림을 잘 그리니까 인스타그램에 올리라고. 처음 올린 그림 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우울한 구름’이에요. 그러다가 손자를 위한 그림을 그린 계기가 있는데요. 이제 당신이 얘기해 봐.
아니 근데, 그림을 잘 그린다 하면 그럴 수도 있는데. 그림을 공부하거나 꾸준히 그린 적이 없어요. 배우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죠. 심심풀이로 하는 그림을 왜 남한테 알리느냐고. 아들이 하라니까 시작은 했죠. 조금 시간이 지나니 아들이 아기를 낳았고, 손주를 보러 뉴욕으로 갔어요. 가족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손주를 안고 ‘아기가 크면 뭐가 될까. 그때쯤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을 텐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요. 손주가 서른 살쯤 되면 저는 세상에 없을 거 아니에요. 근데 아들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대요. 그날로 손자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우리 아기에게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게 해줘야겠구나.’ 아들이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Q 처음에는 주저하셨는데, 6년 넘게 꾸준히 활동하고 계세요.
인스타그램은 나이 먹고 배우기 아주 힘들었어요. 아들에게 배웠는데도 몇 시간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해요. 이제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직접 올리죠. 저희가 틱톡도 하는데, 동영상을 보면서 춤을 추니까 운동이 돼요. 자꾸 틀리면 반복하고, 순서를 외워야 하니까 치매 예방에도 좋고. 할 일이 있어 좋아요.
처음에 아들이 꾹꾹 참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모습이 감동스러워 아무 말 못 하고 배웠죠. 뭘 그리면 좋을지 참 걱정이다 했더니, 아무거나 다 소재가 된대요. 특별히 뭘 그려야 한다 생각하지 말고, 하다못해 쓰레기가 꾸깃꾸깃 떨어졌으면 그 모양을 그려도 좋대요. 그 말이 울림이 컸어요. 글도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할아버지 그림 위에 제가 글을 덧붙이니까 제 냄새가 너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목만 간단하게 썼어요. 적응하면서 한 문장이 두 문장이 되고 조금씩 길어지니까 글에 대한 댓글도 많아지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글을 보고 다시 그림을 본대요. 왜들 좋아하나 봤는데, 따뜻하대요. ‘일상을 공유해 줘서 고맙다’더라고요.
Q 자화자찬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2019 웨비 어워드The Webby Awards’를 받았어요. 웹사이트·온라인 비디오 등에서 우수한 사이트에 수여하는 국제적 상인데요. ‘인터넷의 오스카상’이라고 하더라고요. 100여 개 부문에 상을 주는데 저희는 소셜 부문 ‘Art & Culture’에서 받았어요. 마지막에는 다섯인가 후보로 올라왔는데, 테이트Tate(영국의 미술품을 소장·관리하는 조직)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페이스북이 저희랑 경쟁했어요. 개인 SNS는 우리뿐인데, 어쩌다 우리가 됐어요. 왜 우리가 뽑혔는가, 요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각광받게 됐나 누군가 분석했더니, 첫째는 나이 80이 가까운 부부가 창의적 활동을 한다는 것. 그리고 손자들과의 소통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가족의 협업이라는 것.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글을 쓰고, 아들은 영어로,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하고 그리고 주제는 손자를 위한 거잖아요. 세대관계없이 뭉쳐서 해나가니까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더라고요.
Q 강연도 하시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뭘까요?
전 유달리 커다란 에너지를 쓴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답변이 궁색하네요. 저는 호기심이 없어요. 엄청 공들인 작품을 매일 그린다면 대단한 거죠. 그런데 저는 간단한 그림을 그리잖아요. 요즘에는 매일은 아니어도 그림 그리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힘들지 않아요.
그건 당신 답이고, 저는 아주 달라요. 천성이 다르달까. 저는 매사 긍정적이에요. 그러니까 ‘아 좋다’ ‘예쁘다’ 그런 쪽으로 먼저 시선이가요. 긍정적이기 때문에 호기심도 많아요.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골프를 치는데 골프보다 잔디에 풀꽃이라든지, 새의 알이 골프 공에 맞아 깨져서 새들이 막 날아오는 걸 보거든요. 그러니까 딸이 ‘이거 하자’ 그러면 호기심을 갖고 ‘그게 뭔데’ 그러죠. 일종의 에너지원이 될수 있다고 봐요. 도전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거.
글 장영수 객원 기자 | 사진 공간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