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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8월호

시대와 함께해 온 융합예술
융합예술의 흐름 짚기

예술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는 거의 모든 시대마다 등장한다.
최근 등장한 ‘융합예술(融合藝術)’이란 용어는 동시대 새로운 예술의 지시어 가운데 하나다.
말 그대로 예술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서로 연계해 새로운 방식의 예술 활동을 펼치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스 연극의 요람이었던 디오니소스 극장

현상적으로 예술계는 ‘융합’을 미래적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과 예술, 예술과 기술, 매체와 매체, 기업과 예술, 인물과 예술 등 다양한 형태로 융합이 시도되는데, 그렇다면 왜 예술에서 융합이 제기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 중세의 ‘연금술’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괴테…

예술 개념의 역사에서 《순수예술의 발명(The Invention of Art: A Cultural History)》(Larry E. Shiner, Chicago University Press, 2001)이라는 오래전 사건은 오늘날 ‘융합예술’을 제안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예술(art)이란 용어는 테크네(techn)를 어원으로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배를 잘 만드는 조선술이나, 벽화를 잘 그리는 일이나, 춤을 잘 추는 것이나 모두 솜씨 있는 기술로 인정됐다. 고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신전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된 그리스 연극은 극장의 무대·합창대·의상·가면·연기·작곡 등이 총망라된 행사이자 총체예술로, 예술과 예술이 결합하는 융합예술의 가장 오래된 사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스케치

한편 중세에는 연금술(alchemy)과 같은 화학 기술로 인한 예술이 발현됐다. 금은의 분리 정제술로 종교 패널화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기도 했다.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은 수사학의 예술로 형식과 비유도 그러한 얼개에서 비롯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가 스스로 융합적 사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드러내는데, 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도 한 예다. 원근법을 활용한 표현뿐 아니라 금 세공기술, 조각, 축성, 기구 제작 등에서 탁월했는데,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이 대표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역시 원근법적 회화 공간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의학 및 해부학에 도움을 주는 무수한 스케치를 남겼다. 전쟁 시 화약 엔진·탱크·낙하산을 개발하고, 난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예술·건축·수학·해부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적 인물의 전형이다.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 중 융합적 성향을 드러낸 인물로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빼놓을 수 없다. 시인·소설가·극작가·철학자·과학자로 알려진 그는 식물학·해부학·광물학·지질학·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익히며 자기 경험의 고백과 참회의 작업을 책으로 완성했다. 문학가로서의 저술뿐 아니라 과학적 연구가 돋보인 자연과학 논문을 남긴 융합적 사유의 인물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음악에서 상대성이론의 영감을 얻은 일화로 유명한 과학자다. 흥미롭게도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추상 회화의 창시자로 음악적 표현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작품, <즉흥> <인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이전 융합적 태도의 예술이 사실상 사회 변화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좌우됐다면, 20세기 이후는 과학기술이 예술의 융합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상당하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미술도 과학적 계기가 융합된 결과다. 광학과 색채 이론의 발달, 튜브 물감과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상주의자들은 과학자처럼 빛과 색을 관찰했고, 신(新)인상주의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보색 등 색채 원리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기 이르렀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세잔(Paul Czanne)의 회화는 중력의 법칙에 따른 일련의 재현 원칙에 회의를 표하고,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부합하는, 즉 단일 시점을 소거하는 방식의 융합된 예술을 선보였다. 이것은 미래주의의 동시성을 통해 시간을 포착하려 한 움직임과도 상통한다.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의 회화와 조각에 드러난 시간성 포착의 제스처는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의 녹음 기술을 통한 시간의 재생, 음악 감상 방식에 미친 영향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Symbiotic seeing> (Kunsthaus Zurich, 2020, Photo by Franca Candrian) (출처 olafureliasson.net)
2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How do we live together> (Tate Modern, London, 2019)(출처 olafureliasson.net)

꾸준히 확장 중인 예술과의 융합 영역

현대미술에서 과학과의 본격적인 결합은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의 <회전판>으로 시작된다. 그가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시리즈에서 예고한 것은 시간성인데, 이것이 물리적 움직임으로 이어진 <회전판>은 ‘키네틱 아트’의 출발이기도 하다. 이후 1960년대 뉴욕의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1966)의 활동으로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이어진다. 예술가와 공학자 6천여 명이 참여한 다각도의 실험은 새로운 기술적 표현 가능성을 이끌었다. 이 그룹에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앤디 워홀(Andy Warhol), 백남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등이 참여했다.
1960년대 E.A.T.는 백남준과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가 활약한 플럭서스(FLUXUS) 그룹과 거의 동시에 활동했다. 사진·비디오·컴퓨터·자연·신체·음악·무용·강연·퍼포먼스 등으로 확장해 가며, 마침내 예술의 탈경계적·탈장르적 지평에 다다르게 됐다. 동시대 예술과 미디어아트는 ‘따로 또 같이’의 애매한 지형을 용인하며 예술과 기술의 움직임에 시시각각 반응하고 있다. 도시와 연계된 페스티벌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Ars Electronica Center Festival, 1979), 노마딕한 도시 연례행사로 학술과 전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 Art, 1988), 새로운 미디어와 이론 및 실제 사회 예술, 고전과의 관계 등을 연구하는 ZKM(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1997), 야마구치정보예술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 2003)의 등장은 세계적 움직임이기도 하다. 이들의 등장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적 행보가 지속성을 갖고 진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최근의 나이트재단(Knight Foundation)이나 리좀(RHIZOME, 1996),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Google Creative Lab) 등은 실질적인 예술과 기술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기관이다. 특히 리좀은 다양한 형식으로 디지털 예술을 보존할 시스템을 만드는 특별한 공간이다. 한국의 경우, 이 같은 미디어아트의 급성장을 비엔날레라는 제도로 보여주고자 했다. 2001년 제1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송미숙 감독)가 시작돼 현재에 이르며, 아트센터 나비(2001), 서울문화재단 다빈치 크리에이티브(201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T페스티벌(2015) 등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이 모든 상황으로 볼 때, 20세기 예술과 기술 융합의 대표 작가는 백남준이다. 서구 미술사에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짧게 기술되지만, <음악의 전시회: 전자 텔레비전>(1963)를 필두로, TV로봇 시리즈, 일련의 퍼포먼스, 레이저아트에 이르기까지 그는 융합예술의 본령이다. 동서고금의 자양분과 기술적 방법을 동원해서 만들어내는 그의 모든 작업은 총체예술이자 융합예술이다. 그의 사후, 미디어의 재매개화는 지속되고 있고 VR·AR·MR·AI·블록체인·로보틱스 등의 예술과 기술의 협업, 융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3 백남준의 <TV부처>(영상설치, 부처조각상, TV, 폐쇄회로카메라, 컬러, 무성, 1974(2002))(출처 백남준아트센터)
4 권병준 작가의 <자명리 공명마을>(2019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융합예술, 동시대에 질문하고 답을 구하다

마지막으로 동시대의 가장 강력한 예술가로 주목받는 이들의 작업을 살핌으로써 융합예술의 의미를 환기하고자 한다. 거미와 행성의 작가로 알려진 토마스 사라세노(Toms Saraceno)는 건축·환경학·천체물리학·열역학·생명과학·항공 엔지니어 등의 학문적 통찰과 연구가 반영된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그의 작업 <Cloud Cities>는 인류의 생존과 지구 생태계에 대한 물음을 통해 발견되는 모든 것을 알아가고 해결하는 방식이자 결과로서 융합예술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융합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예술가로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빛·바람·수증기·얼음·물·불 등 자연의 물질들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특별한 환경과 체험을 제시한다. 그의 <The Weather Project>나 <Beauty> <Moss wall> 등은 모두 빛을 활용하고 자연을 재창조해 내는 융합예술의 전형적 과정이 내재된 작품이다.
이처럼 동시대 예술은 예술과 기술의 결합·융합의 생생한 지점에 있다. 다만 이것의 경계를 가르거나 개념적 정의를 내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융합예술이란 명칭도 사실 대안적인 표현일 뿐이다. 예술의 융합은 별도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기보다 사회 현실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며 실현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글 박남희_예술학자,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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