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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5월호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를 치유해온 문화예술 걱정 말아요 그대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은 오락과 유희의 기능을 제공하지만, 위기와 고난의 순간에는 위로와 치유의 언어로 우리의 상처를 보듬는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 등 국가적인 재난이 있을 때마다 문화예술은 그 슬픔과 안타까움, 깨달음과 다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상처 입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5.18 민주화운동과 위안부 문제, 최근의 탄핵 정국 등 현대사적 아픔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추모와 기록을 넘어 공감을 통한 치유의 역할을 담당해온,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아픔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문화예술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1 홍성담 <내 몸은 바다-2> 부분,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 × 162㎝, 2016
2 홍성담 <눈물> 캔버스에 아크릴릭, 194 × 130㎝, 2016

1, 2 홍성담 작가는 <세월오월> 전을 통해 세월호 희생자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직시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3 삼풍백화점의 기억을 안숙선 명창의 목소리로 되살린 <유월소리>.
4 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 기획전시 <이젠 저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

삼풍백화점 붕괴, 기억으로 위로하다

1995년 6월 29일, 멀쩡하게 서 있던 백화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재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뉴스 속보에서 전해지는 광경을 목격하며, 사람들 모두가 눈과 귀를 의심했다. 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6명이 실종됐다. 참담한 그날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우리 곁에서 잊혀갔다. 다시 꺼내보기가 두려워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도 그 날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을 리는 없다. 오히려 2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고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했는지를 되짚어보고, 반성과 치유를 도모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서울문화재단이 ‘메모리인(人)서울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이라는 주제로 유가족, 생존자, 구조대, 봉사자 등 100여 명의 시민을 만나 삼풍백화점의 흔적을 수집했던 이유였다. 이렇게 채록된 기억을 바탕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인 2015년, <유월소리>라는 창작 판소리 공연이 탄생했다. 무너진 백화점 지하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구조대가 내던 망치질 소리, 취재 경쟁을 위해 뜬 헬리콥터 소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등을 안숙선 명창의 소리로 되살려 과거의 아픔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인(人)서울프로젝트’로 기록된 삼풍백화점의 기억은 책과 전시로도 이어졌다. 관련자 인터뷰를 모아 지난해, 구술집 <1995년 서울, 삼풍>을 출간했고, 2015년에 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 기획전시를 열었다. <이젠 저도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추모 전시는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그날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시선을 통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마주하고 상상하는 자리였다.

세월호 참사, 현재진행형의 아픔에 희망을 전하다

1,075일. 침몰한 세월호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참사 이후 3년, 세월호의 기억은 여전히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으려는 문화예술의 움직임이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참사 3주기를 맞아, 올해에도 어김없이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3년의 그리움을 담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수많은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문화예술의 힘을 빌렸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5월 11일까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전이 열린다. 20여 점의 전시 작품은 세월호에 탑승한 아이들이 죽음이 다가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느꼈을 고통,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그들의 평소 꿈을 이야기한다. 참사 당시의 사실적이고 강렬한 장면들이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세월호 희생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직시하는 용기를 가짐으로써, 유가족과 국민 모두가 트라우마와 상처를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였던 연극계 또한 3주기를 맞아 연극적인 미학과 언어로 세월호를 다루며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윤택 연출은 진도 씻김굿을 소재로 한 연극 <씻금>을 지난 2월,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 무대에 다시 올리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장면을 추가했다.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프로그램을 2015년부터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안산거리극축제는 올해에도 세월호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안산 시민의 상처를 보듬는다. 개막작 <안安寧녕2017>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아픔을 간직한 안산 시민의 삶을 되돌아보는 공연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길놀이 형태로 진행된다. 2015년에 시작된 <안산순례길>은 올해에도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해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안산을 걷는 프로그램이다. 올해의 안산거리극축제는 오는 5월 5일부터 7일까지 펼쳐진다.
문화예술로 위로를 받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역으로 문화 예술로 시민에게 위로를 건네는 연극도 있다. 단원고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그와 그녀의 옷장>이 그것이다. 단원고 학생 어머니들은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연극을 배웠고, 김태현 연출이 합류하며 치료와 소통을 위해 직접 연극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작은 기업의 노동조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지난 1월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에서 공연된 데 이어 안산의 3번째 봄을 기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4월 연극제’ 무대에도 올랐다.
한편 ‘세월호 문학’이라는 장르가 거론될 정도로, 문학계에서는 세월호의 아픔을 보듬고 슬픔을 나누려는 움직임이 그 어떤 분야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탁환 작가는 조선시대 실제 기록으로 존재하는 조운선 참사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상기하는 <목격자들>을 2015년에 출간한 데 이어, 2016년에는 민간인 잠수사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거짓말이다>를 펴냈다. 최근에 나온 소설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는 세월호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선 각양각색의 사람들 이야기를 8편의 중·단편으로 엮은 책이다. “끔찍한 불행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찾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희망을 담았다. 방현석 작가는 세월호의 베트남 희생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중편소설 <세월>을 펴냈다. 다문화 가정을 통해 세월호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비인간적 인간들이 난무하는 지금의 비극적인 시대를 이야기한다.
세월호 유가족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육성 기록을 엮은 책도 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펴낸 <금요일엔 돌아오렴>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 13인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언론이 보도하지 못했던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국가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트라우마 등을 고스란히 전한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1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목적으로 간행된 책들.
2 안산거리극축제 개막작 <안安寧녕2017>. 시민과 함께하는 길놀이 형태의 공연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시민의 아픔을 되짚어본다.
3 위안부를 소재로 한 연극 <하나코>. 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아픈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폭력의 역사로 이야기한다.
4 한국, 중국, 필리핀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폴로지>.

위안부 문제, 깊은 상처에 작은 위로를 건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는 여전히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의 역사다. 1992년부터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고, 피해자 가운데 38명만이 생존해 있지만, 피해 할머니들이 그토록 원하는 제대로 된 사과는 여전히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의 상처는 그 어떠한 보상으로도 아물 수 없을 테지만,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문화예술계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영화계에서는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이 아닌,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으로 작품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계 캐나다인 티파니 슝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어폴로지>는 한국, 중국, 필리핀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았다. 담담하고 씩씩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오히려 관객이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되는 영화다.
2015년 12월의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를 소재로 한 연극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2011년 초연된 이해성 연출의 <빨간시>는 성 상납 강요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 사건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결한 작품으로, 지난해 연말 재공연된데 이어 지난 1월 광화문 블랙텐트 무대에도 다시 올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뿐만 아니라 탄핵 정국으로 상처 입은 국민들에게도 위로를 건넸다. 2015년에 초연된 연극 <하나코>도 지난 2월 관객과 다시 만났다. 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아픈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폭력의 역사로 이야기하며 위안부 피해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과 갈등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탄핵 정국의 한복판에 문화예술이 있었다

4개월여 이어진 탄핵 정국 기간 동안, 문화예술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촛불 열기를 승화했다. 굴곡진 현대사로 사회가 휘청거릴 때마다 조용한 위로를 건넸던 문화예술은 이번에도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다. 광화문광장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정부의 예술 검열로 빼앗긴 공공의 극장을 시민에게 돌려주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은 공연들을 선보이며, 아픔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촛불집회의 열기는 시집으로 기록되어 그 어떠한 선동 문구보다도 더 강렬하게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촛불은 시작이다: 2016-2017>은 고은 시인부터 갓 등단한 신인까지 시인 264명의 시 한 편씩을 엮은 책으로,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촛불의 역사를 증언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시인들의 시를 엮은 시집 <검은 시의 목록>, <천만 촛불 바다> 등도 출간됐다. 고은, 신경림, 강은교, 박노해 등이 참여한 <천만 촛불 바다>는 “무너진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바로 세우겠다고 나선 국민의 외침에 대한 시인들의 서정적 응답”으로, 광장의 역사를 기억하고 위로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되어주었다.

글 윤현영
사진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돌베개, 실천문학사, 걷는사람, 림에이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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