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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9월호

어떤 싸움은 의미가 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의 주짓수 대결이 성사될까요? 각각 테슬라와 메타의 CEO인 이들은 2016년부터 신경전을 벌여왔으며, 최근 머스크가 소유한 트위터Twitter(현 엑스X)에 대항하여 메타가 스레드Thread를 선보이면서 싸움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지난 6월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저커버그를 저격했고 주짓수 유단자인 저커버그가 맞받아치면서 주짓수 대결이 급속히 논의되었습니다. 평소 운동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언제든 싸움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응수한 머스크는 라스베이거스 옥타곤을 대결 장소로 지목했습니다. 옥타곤은 철창으로 둘러싸인 팔각형 링의 종합격투기 경기장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철창 속에서 몸싸움을 벌인다고 예고하니 초유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거물 간의 불화야 종종 있습니다만, 말싸움을 몸싸움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원천기술, 주가, 재무제표 등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경쟁을 벌이는 이들이 가장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철창 대결을 한다니요.

몸싸움은 생태계의 주요 원리입니다.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경쟁해왔고, 때론 자기 존재를 증명하거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몸싸움이 좀 더 양식화되고 제도화되면서 게임이나 스포츠 등으로 발전했지요. 몸싸움에 의도적인 장애물과 규칙을 부여한 것이 게임이라면, 여기에 제도화된 운영과 관람객의 존재가 더해져 스포츠가 됩니다.

그런데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대결은 본능적인 몸싸움보다는 서양의 오랜 관습인 결투duel를 연상케 합니다.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결투는 서양의 귀족 남성들이 논쟁이나 명예 훼손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식화한 싸움을 의미합니다. 칼이나 총을 사용했기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목적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 정도로 명예를 중시한다는 것, 그리고 이에 응수할 정도로 용기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투는 매우 양식화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도전자가 피도전자 앞에 장갑을 던지는 등 도발의 사인을 확실히 보내면 친구나 지인을 포함한 제삼자들이 결투의 시간과 장소, 방식을 조율해 정식으로 도전합니다. 결투인 사이에 나이나 위계 차이가 너무 크거나 도발의 사안이 사소한 일이라 판단되면 거절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도전을 거절하면 겁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지요. 중재 노력이 허사가 되면 결투가 치러집니다. 주로 으슥한 새벽에 외딴곳을 ‘명예의 장field of honor’으로 삼아 의사 및 제삼자가 대동한 가운데 대결을 치릅니다.

결투의 양상을 잘 표현한 예술 작품으로 푸시킨의 소설 『오네긴』을 들 수 있습니다. 오만한 귀족 오네긴이 절친한 친구 렌스키의 별장에 놀러 왔다가 우발적으로 렌스키의 약혼녀인 올가와 연거푸 춤을 춥니다. 약혼녀를 우롱당한 렌스키가 결투를 신청해 명예를 지키고자 했고, 오네긴 역시 거절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존 크랭코가 안무한 발레 <오네긴>을 보면 무도회장에서 올가와 오네긴의 춤을 보던 렌스키가 장갑을 벗어들어 오네긴의 두 뺨을 찰싹찰싹 때린 후 힘껏 바닥에 던집니다. 명백한 도전의 사인이죠. 다음 장면에서 어슴푸레한 새벽에 들판에서 만난 둘은 뒤돌아 몇 발짝씩 걸어간 후에 동시에 돌아 총을 한 발씩 쏩니다. 안타깝게도 오네긴의 총알이 명중하며 렌스키가 사망하고 말지요.

결투가 얼마나 양식화된 싸움인지는 또 다른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티볼트와 머큐쇼·로미오 간의 칼싸움과 비교해보면 극명합니다. 베로나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떠들썩하게 놀던 와중에 재간둥이 머큐쇼가 상대 진영의 우두머리인 티볼트를 놀리자 우발적인 칼싸움으로 번졌고, 절친 머큐쇼가 죽자 로미오도 반격하여 티볼트를 죽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른들이 와서 말릴 새도 없었지요. 이에 비하면 결투는 품위와 절차를 중시하여 고도로 양식화된 해결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머스크와 저커버그는 칼이나 총 없이 맨몸으로 싸웁니다. 그것도 상대방과 몸을 밀착해야 하는 주짓수로요. 일본 유도에서 영향받은 브라질 무술인 주짓수는 관절기, 누르기, 조르기 등 기술로 상대의 몸을 제압합니다. 특히 지렛대 원리를 활용하기에 몸집이 작은 사람도 큰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묘미가 있습니다. 몸집이 작지만 유단자인 저커버그와 덩치가 있지만 나이가 많은 머스크 중에 누가 유리할까요? 도박사들은 저커버그의 승률이 높다고 합니다만.

그들의 대결을 상상해봅니다. 서로 몸을 마주댄 채 상대방의 키와 몸무게와 근력과 기술을 받아들이다 보면 세계적인 부호이자 첨단기술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결국 몸일 뿐임을, 땀 흘리고 쉽게 피로해지는 몸일 뿐임을 깨달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몸싸움은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인 데다 상대방을 어느 정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화해의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여기에 맞춰 반응하는 상호작용을 주고받다 보면 저절로 이해가 이루어지니까요.

무엇보다도 대결은 꼭 상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공존할 수 있음을 습득하는 과정입니다. 어느 정도 형식과 절차를 갖춘 대결은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갈등을 표출하고 인지하며 조율하게 해줍니다. 스트리트댄스의 한 장르인 크럼핑은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던 지역에서 신체 접촉을 피한 채 상대방과 일대일로 대결함으로써 분노와 갈등을 다스리던 행위에서 탄생했지요. 타인과 늘 조화로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대결이 실제로 성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통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몸싸움을 빙자한 말싸움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만약 매치가 성사된다면 시끌벅적한 스펙터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기의 빅매치를 떠벌리는 대신 동네 체육관에서 한판 대결을 수행하면 어떨까요? 그곳에선 승패에 몰입하기보다 성찰의 기회로 삼고,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몸보다 느끼고 알아채는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겁게 만나고 헤어지는 몸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몸싸움은 매주 보고 싶습니다.

정옥희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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