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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8월호

예술에서 발견한 회복의 실마리

친환경에서 ‘필환경’으로

예술은 향유의 대상이자 기여의 주체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변화에 기민한 예술가·단체·기관은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경험 이후 실천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성수동에 위치한 ‘리스테이지 서울’ 창고

팬데믹, 극장을 되돌아보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공연·무대 용품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리스테이지 서울Re:Stage Seoul’의 시범 운영이 시작됐다. 리스테이지 서울은 버려지고 방치되는 공연 물품을 공연예술가들이 함께 이용하고, 사용한 물품은 재활용할 수 있는 실천 플랫폼이다. 누구나 온라인 플랫폼(stagegotgan.co.kr)에 접속해 소품·의상 등을 색깔이나 재질별로 검색할 수 있으며, 성동구 성수동 소재 오프라인 창고를 방문하면 직접 대여도 가능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염려는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극장과 전시장을 봉쇄해버린 코로나19처럼 강력한 경고는 없었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 사태는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공연예술계는 콘텐츠의 비대면 전환을 시도했다.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이어져온 관습에 대한 반성도 이어졌다. 인간 중심의 자연 지배적 관점이 아닌, 새로운 관점을 담은 예술의 존재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수동에 위치한 ‘리스테이지 서울’ 창고

익숙하게 버려지는 공연 용품의 선순환을 시도한 리스테이지 서울처럼, 작게는 소품부터 크게는 공연 프로듀싱에서 무대 제작까지 공연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2월, 『지속가능한 공연예술 창제작을 위한 안내서』를 발간하고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창작 사례 공유에 나섰다. 안내서가 제안하는 ‘지속 가능한 창제작’ 기본 방향은 총 여섯 가지다. ➊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기 ➋ 다시 사용하기 ➌ 용도를 바꿔 사용하기 ➍ 재활용하기 ➎ 지역에서 자원을 확보하기 ➏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논의와 실행이다. 사실 공연예술 자체가 탄소 배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최준영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안내서에서 ‘공연예술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발생시키는 것은 관객의 이동과 극장의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겨우 극장으로 돌아온 관객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다. 극장의 시설을 재점검하고,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재 공연예술이 선택한 해답이다.

제작 방식에서 운영까지, 광범위한 변화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2021년 1월, 취임 기자 간담회에서 환경과 기후, 배리어프리 등 시대의 화두를 극장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창작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탄소발자국 줄이기를 시행하고, 실천할 수 있는 행동으로 지구 위기에 대응하는 공공극장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첫 실천으로 2022년 5월, 전윤환 작·연출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이 프로덕션은 기후 위기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 내용 외에도 공연 후 작품의 친환경 제작 과정에 대한 기록, 실천 내용과 결과, 탄소발자국 계산 리포트, 친환경 제작 업체 리스트가 수록된 『2022 국립극단 제작공연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기후노트』를 발간해 눈길을 끌었다. 국립극단은 이 밖에 소품·세트·장비 등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국립극단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국립극단

다가오는 10월에는 부산 기장군 일광해수욕장에서 2023 바다미술제가 열린다.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 감독으로 그리스 출신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Irini Mirena Papadimitriou가 선임됐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세션은 ‘바다미술제 실험실’. 예술가를 비롯해 해양 과학자·연구원 등 학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어떻게 바다를 복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예술가의 활동 영역이 전시를 넘어 연구와 실천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지의 시간》 전시 전경 ⓒ김경태/국립현대미술관

때로 미술관은 관객과 예술가의 친환경 행동을 이끄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서울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lO축제’를 시작했다. 주제는 탄소중립과 친환경, 공감예술이다. 첫 번째로 선보인 프로그램은 ‘플로깅+야외영화’로, 서울관을 출발해 청와대-경복궁-광화문-서촌-북촌-삼청동 일대를 함께 걷고 쓰레기를 주워 미술관으로 돌아오는 행사다. 밤에는 미술관마당에서 파리의 예술과 시대상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구현한 애니메이션 영화 <파리의 딜릴리>를 감상하고 무비토크를 진행했다. 5월 플로깅 행사에 이어 9월에는 친환경 미술관 장터, 11월에는 융복합 공연과 대담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과천관에서 열린 전시 《대지의 시간》에서 전시장 내 가벽을 없애는 대신 구형의 반사체를 설치하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대형급 전시 기준 평균 5~7톤의 폐기물이 생산된다는 점에 착안해 영구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에어볼을 설치하고 관객의 동선을 구분한 것. 큐레이터는 “폐기물을 다시 쓰는 일회적 재사용 방식을 넘어 전시 시작부터 폐기물량을 줄이고자 했다”는 기획 의도를 밝혔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 전경 ⓒ아르코미술관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선순환을 고민하는 미술관은 또 있다. 아르코미술관은 지난 1월까지 폐기물 나눔과 관련한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을 마친 후 작품에 쓰인 26개의 목재 테이블과 선반을 재활용했다. 예술을 기반으로 작품 제작 문화와 창작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투리 자재의 쓰임을 고민하는 단체 피스오브피스와의 협업을 통해서다. 전시에 사용된 흙은 사연을 신청받아 관객과 나눴으며, 햄스터의 보금자리나 농가 등으로 보내졌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5월 기후 변화·탄소 저감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미술관 매뉴얼’을 공개했다. 전시가 끝난 후 발생하는 폐기물의 기증 방안이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홍보물 제작 방안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아르코미술관은 매뉴얼 작성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축가와 지속 가능한 예술을 고민하는 예술가 콜렉티브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지난해 8월, 문경원&전준호의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서 최초로 로봇 강아지를 선보였다. 로봇 강아지는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 사이를 지나며 관람객에게 동선을 안내하는 동시에 전시실 내 탄소량을 측정했다. 포집한 탄소 수치는 실시간으로 전송돼 ‘탄소 달력’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 이 전시는 월드웨더네트워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최됐으며, 28개국 예술기관이 공동 주체가 돼 각자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worldweathernetwork.org)을 구축해 날씨와 환경에 대한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월드웨더네트워크처럼 창작자인 동시에 기후 변화 감시자로 활동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2013년 결성한 IVAAIU CITY는 설치 예술과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 등 하나의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콜렉티브 그룹이다. 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 작업을 시도하며 꾸준히 환경에 대한 화두를 던져왔다. 그중 는 기후 변화와 난개발에 의해 점차 침식되는 해안선을 다룬 작업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가 점차 물에 잠기고 이상기후로 인해 태풍이 증가하는 동해안의 환경 데이터를 알고리즘화해 파도와 모래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주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데이터는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던진다.

축제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

2023 춘천마임축제 <불의 도시; 도깨비 난장> ⓒ춘천마임축제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축제의 풍경은 어떨까? 춘천마임축제는 지난해부터 친환경 축제를 선언하고 올해도 이동식 발전차·발전기 대신 친환경 축전 시스템, 반영구적 이동식 배전반과 모듈형 전기라인 개발, 쓰레기 없는 축제를 위한 다회용기 사용, 인쇄물 최소화와 재활용 MD 제작 등을 실천했다. 축제의 킬러 콘텐츠인 <불의 도시; 도깨비 난장>의 하이라이트 ‘파이어워크’는 실제 불꽃 대신 8천 개의 LED 캔들과 알코올램프, 야광 자갈 등으로 대체했다. 8월에 열리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역시 지난해에 이어 에코프린지 워크숍을 운영하고 해외 친환경 축제 사례를 연구하며 운영 방향을 점검하고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지난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예술 형식과 예술의 역할을 질문했으며, 올해도 생태주의 관점을 내세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처럼 축제 현장도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다루는 작품을 선보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운영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예술 분야 스스로 ESG 경영을 고민한다는 의미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불필요한 관습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기후 위기를 향한 실존적 고민은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다.

박채림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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