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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5월호

나와 아이의 세계가 맞닿을 때

엄마아빠의 예술로 행복한 순간

누군가의 부모이자 그 또한 부모를 둔 아빠와 엄마에게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나만의 순간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어둠 속, 흘러나온 한 줄기 빛을 담은 편지가 이곳에 도착했다.

신(문화)도시 아빠의 웃픈 일상

#1. ‘힙한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아재 감성’. 2018년 <서울인기>의 한 판매 부스 팻말을 유튜브에서 보고 영감을 얻어 이듬해인 2019년, 두 아이 아빠의 삶을 잠시 내려두고 축제로 향했다. 간만의 축제 속, 늦은 밤 한강가의 작은 무대에서 처음 만난 히토미토이Hitomitoi의 최신 시티팝 라이브에서 그야말로 갈증이 해소됐다. 아빠도 아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육아하다 보면 으레 포기하게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잊고 말면 언젠가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내 삶이 육아 때문에 힘들다는 착각이다. 학교에 가기 전이던 아이들에게 그 여름밤 모기를 잡아 줄 아빠가 꼭 필요했는데, 왜 키라라KIRARA의 음악을 들으며 밤새 뛰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날 축제에서 구매한 아티스트 얼굴 프린트 티셔츠와 점프수트가 딱히 지금도 당당하진 않다.

#2.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상하게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를 즐겨 부른다. 의외의 순간에 ‘ㅋ’를 틀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때다 싶은 아빠는 장기하의 첫 싱글 앨범과 함께 솔로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소개하고, 단독 공연 <공중부양> 예매에 이른다. 불특정 다수 속에서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일이나, 가족의 취향을 맞춰가는 일이 그것보다 쉽다고 할 수 없다. 다행히 작은 극장에서 열린 장기하의 공연은 자극이 크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말맛과 리듬을 한껏 펼쳤고, 춤이 곁들여진 실험적인 구성도 재미를 줬다. 다음으로 아이와 함께 라이브 공연에 간 것은 어린이날 열린 ‘서울스테이지11’ 대학로센터 공연! 킹스턴 루디스카의 스캥킹까지는 가르쳐주지 못 했지만, 오랜 방구석 1열에서 벗어나 진짜 1열의 공연 관람을 경험시켜줄 수 있었다. 취향을 강요할 수는 없어도 씨앗을 심어줄 수는 있다.

#3. 회사의 중요한 야외 행사 날 장맛비가 퍼부어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어정쩡한 시간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잠시 고민한 후 철원으로 향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마지막 날, 퍼붓는 빗속에서 이날치와 한영애의 공연에 이어 한때 최애 밴드였던 노브레인의 헤드라이너 무대를 만났다. 신나게 뛰었다. 꾐에 빠진 동생은 안경이 부러져 대리운전을 불러야 했을 정도로. 행사를 준비하던 긴장감, 주말에 일터로 가는 미안한 감정을 모두 잊는 순간이었다. 나만 홀로 즐긴다는 죄책감을 갖기엔 주어지는 순간들이 너무 짧다. 빗속에서 아이를 돌보며 공연을 함께한다는 것은 아직 상상할 수 없기에,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하며 함께할지 모르는 즐거운 미래를 홀로 준비할 수밖에 없는 거다. 아이들이 커서 ‘너 키우느라 취향 이어갈 틈이 없었다’는 식의 괜한 탓을 하지 않으려면 좀 더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숙원으로 남겨두었던 해외 록 페스티벌에 도전해봐야겠다.

 
 

당신의 취향을
                    설명할 수 있나요?

5월의 캘린더는 가혹하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 부모가 되었건만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보은해야 하는 날들로 빼곡하다. 취향의 시대에 맞춰 수백 가지 큐레이션이 넘쳐나는 시대. 그러나 자신의 취향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중에서도 선물 고르기의 최고봉은 우리 엄마. 가끔은 돈 주고 잔소리를 사는 느낌이다. 그간의 경험치에 빗대어 보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반대로 해석하는 편이 승률이 높았다. 절대 하지 말라던, 콘셉트 사진관에서 드레스를 고르며 “어머 어머”를 속사포로 내뱉는 엄마는 실은 ‘진즉 이런 데 좀 데리고 오지’라는 말을 삼키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데 돈 썼다며 핀잔을 주던 액자 구성은 언제 오는지 만날 때마다 묻는 안부 인사가 되었다.
엄마가 되면서 ‘나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집 안 곳곳 지뢰처럼 깔린 블록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날이 어둑해지면 아이의 크레파스 드로잉이 존재감을 뽐내는 패브릭 스탠드를 켠다. 리틀 피카소라 추앙하기에는 사뭇 분하다. 한참 유행하던 미드 센추리 무드는 언감생심. 고르고 골라 집 안에 들인 소중한 나의 취향들이 침범당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이미 뽀로로 매트와 국민 수식어가 붙은 온갖 장난감이 집을 점령했다. 보육기관에 가면 달라질 줄 알았건만, 아이의 흔적을 대충 수습하고 나면 하원 시간. 좋아하던 스페셜티 커피, 음악, 작가, 모든 것이 전생의 기억처럼 멀어진다.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취향의 꼬리를 다급히 잡으며 일탈을 꿈꾼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반나절 동안 할 수 있는 최대 효율의 시간과 동선을 재빠르게 그린다. 햄버거를 포장해 가까운 영화관으로 다급히 향한다. 오프닝을 놓치면 다음 회차를 다시 예매하던 과거의 나와는 안녕. 입으로는 햄버거를 구겨 넣으며 실성한 사람처럼 울고 웃다 육아 전투에 나설 힘을 비축한다. 육아를 위탁하고 나오는 날이면 이동 동선 사이의 틈새를 노려 갈 수 있는 전시를 찾는다. 느릿느릿 작품 사이를 유영하다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과거는 까마득할 뿐. 다리는 바쁘게 눈의 초점은 최대한 빠르게 굴리며 전시실을 훑는다. 그렇게라도 나의 시간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을 품고 다시 아이의 취향으로 도배된 집으로 향한다. 나를 지키는 것에 이렇게 전투적으로 바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유한한 시공간에 들어가야 마주할 수 있는 전시와 공연을 불투명한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미루다 보면 공허가 밀려왔다.
끝도 없이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우선순위에 밀려 나를 홀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옅어지고 흩어져가는 나를 붙잡고 싶었다. 분절된 시간의 틈바구니에 동동거리는 다른 이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심야의 한국, 출근길의 미국, 한낮의 우간다, 하원길의 프랑스와 체코, 매주 저마다 다른 시공간에서 접속하는 엄마들이 모였다. 그렇게 우리는 책·영화·글쓰기라는 접점을 통해 서로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포텐취향클럽’을 함께 만들어가는 중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파고들던 서로의 덕질 연대기를 나누며 잊고 있던 나를 찾아가는 데 푹 빠졌다. 양육자에게 회복의 시간은 중요하다. 오롯이 나를 꺼내는 이 시간을 통해 쌓인 심리적인 연대는 일상을 지탱하는 근육으로 단단해져간다.
사소한 선택이 쌓여 매일을 이룬다. 우리가 채워가는 일상의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와 교집합을 만들어간다. <장수탕 선녀님>의 뮤지컬 넘버 “요구롱 요구롱롱롱”을 우리만의 암호로 만들고,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예매 날짜를 크리스마스처럼 손꼽아 기다린다.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을 탐색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발견한다. 좋은 작품에 대한 기준과 안목은 더욱 견고해지고 나의 취향은 아이와 버무려져 우리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 와중에, 6월에 내한하는 발레 <백조의 호수> 스케줄도 점찍어 둔다. 고대하던 공연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열이 오른 아이의 이마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만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를 지켜내는 것이 아이의 세계를 지켜내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준걸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정유미 포포포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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