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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4월호

낯선 전화에 투명하게

나의 기억 속 서울연극센터

2016년 11월 서울연극센터 1층에서 열린 10분희곡릴레이페스티벌에서 만난 배해률 작가에게 2023년 4월,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간이 작은 편이라 자주 놀란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나 공사장의 소음같이 요란한 것에만 놀라는 것이 아니다. 집에 혼자 있는데 갑자기 혼자서 ‘웅-’ 하며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에. 길 위에서 지나치던 아무개가 ‘헙!’ 입을 다무는 소리에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발신자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의 진동 소리. 저장되어 있지 않아 숫자만 노출되는 화면을 보면 심장 박동수가 묘하게 빨라진다. 고민에 빠진다. 받을까, 말까. 낯선 전화는 대개 스팸이다. 스팸 전화를 매몰차게 끊지 못해서 결국 쓸모없는 부가서비스에 가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애초에 안 받는 것이 좋을 테지만, 이 낯선 발신자들의 전화를 차마 무시하지 못한다. 아주 가끔은 반가운 처음들로 이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초. 극작가로서의 미래를 막연하게만 그리던 때였다.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다행히 스팸은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전해온 건, 내가 쓴 희곡이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10분희곡릴레이 작품 공모에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정확히 어디로 향하던 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걷는 중이었다. 생경한 반가움에 발을 멈추고, 한동안 그 전화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 기억난다. ‘작가님’이라는 생소한 호칭이 연거푸 건너왔다. 그 말들이 나를 향하는 것이 맞나 싶었다. 발신자가 앞에 있지 않은데도, 나는 통화 내내 사회성을 갖추기 위해 어색한 웃음을 계속해서 지어 보였다. 얼굴도 아마 무지막지하게 빨개졌을 것이다. 그날의 낯선 전화를 시작으로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낯선 전화가 차마 끊지 못하는 스팸이 아니라, 묘연한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그때의 전화로 체득한 것이다.
4월 7일 발행된 89호 ‘연극in’에 희곡이 게재된 것으로 보아, 봄이었던가 싶다. 아무래도 그해의 기억들은 계절보다는 당시 발표했던 희곡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처음 나의 희곡을 웹에서 마주했을 때가 떠오른다.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좀 읽어 달라, 댓글 좀 달아 달라 부탁하던 순간도 떠오른다. 간만에 들어가 보니, 익명이지만 익명이 아닌 익숙한 목소리의 댓글들이 몇몇 눈에 띈다. 정말로 써줬구나. 고맙네. 내가 쓴 희곡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신이 났다. 독자들을 하나하나씩 찾아가 어떻게 읽으셨느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웹진에 들어가, 변할 리 없는 고정된 희곡의 텍스트를 읽고 또 읽었다. 그 순간들을 정말로 대책 없이 즐겼다.
인상 깊은 해였고 뜻깊은 경험이었으니 분명 아주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겠지 싶었던 것들이 실은 아주 엉성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포스터를 보니 더욱 그렇다. 서울연극센터에서 했던 2016년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 공연이 1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됐다고. 희곡이 게재된 것이 봄이었으니, 막연히 공연은 여름쯤에 했겠지 착각했다.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의 옷차림을 반팔 정도로 상상했는데, 그것보다는 두꺼웠겠네 싶어 기억 속 장면을 조금 고친다. 포스터에서 생소한 숫자를 또 발견했다. 웹진에 소개된 작품 중 총 29편을 무대화했다고. 열 개쯤 됐으려나 생각했는데 29편이나 됐다니. 그럼 그때 서울연극센터에는 29편의 공연과 29명의 극작가들과 또 연출가들, 또 배우들, 또 스태프들, 또 관객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둥. 모두의 경험을 혼자 차지하려 했구나 싶어 갑자기 미안해진다. 그때 그곳에 있던 모두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지금도 다들 연극 근처에 살고 계신가요.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싶어 공연 당시의 사진을 찾아봤다. 그러고 보니 이따금 동료들로부터 자신들도 그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얼굴 옆에 뻔히 앉아 있는 아는 얼굴과 이름들을 발견했다. 지금의 그들을 떠올리니, 그때 그들을 일찌감치 알지 못했던 것이 괜히 아쉬워졌다. 그때의 그들에게도 그렇게 마냥 대책 없이 좋았던 처음들이 있었을까. 찾아왔었을까. 아! 물꼬가 트이니 계속해서 기억들이 떠오른다. PLAY-UP 아카데미 극작수업-희곡창작워크숍 낭독회에 초대받은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 작가들이 서로에게 건필을 응원해주던 말들도, 카페에서 서로의 희곡을 마음 다해 읽어주고, 마음 다해 이해해주려던 대화들도. 또다시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다들 잘 살고 계시는지요.
그 후로 지금까지 연극을 하는 해가 있었고, 연극을 기다리던 해가 있었다. 그 가운데 연극은 마냥 대책 없이 좋아할 수는 없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고, 극장은 때때로 위선처럼 느껴졌다. 극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 아시냐고 칭얼대고 싶은 날들도 많았다. (그때마다 저의 칭얼댐을 들어주셨던 몇몇 분들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새삼스레 2016년의 낯선 전화를 받던 내가 부러워졌다.
공사장 가림막을 예상하며 들른 혜화에서 전면이 투명한 유리 벽으로 이루어진 새 서울연극센터를 마주했을 때, 낯선 전화에 투명하게 뛰어대던 심장을 되새겼다. 저 안에 앞으로 들를 연극과 모일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때 알지 못해 아쉬웠던 이들과 그때 그곳에 없었던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 모두에게 보내고 싶은 안부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마음속에 눌러 담았다. 저 유리 너머로 더 많은 얼굴들의 처음들이 쉬이 들어서기를 바랐다. 저 벽은 그러기 위해 투명해진 것이라 내 마음대로 믿어버렸다.

배해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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