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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3월호

춤에서 미래를 점친다면

2023년입니다. 혹시 새해를 맞이하며 신년 운세를 보셨나요? 점괘를 믿지 않더라도 솔깃해지지요. 운세는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버거운데, 내 미래가 나와 상관없이 이미 결정됐다고 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거북이 등껍질의 무늬부터 찻잔에 남은 얼룩까지, 인간은 우연적인 패턴이나 조합에서 규칙을 읽어내고 미래를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춤에서도 우연적인 패턴을 통해 미래를 점칠 수 있을까요?

1951년 미국의 작곡가 크리스천 울프Christian Wolff는 자신의 아버지가 번역한 ‘주역’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K와 안무가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에게 선물했습니다. 일본 선Zen, 禅 사상에 심취했던 케이지와 커닝엄은 즉각 빠져들었습니다. ‘주역’은 음양陰陽에서 파생된 64괘卦로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 체계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고문헌입니다. 우연이 64가지 새로운 조합으로 확장된다는 ‘주역’의 원리를 케이지는 음악에, 커닝엄은 춤에 적용했습니다. ‘우연’은 그들의 예술적 주제가 되었습니다.

커닝엄은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무용수, 신체 부위, 동작의 가능성을 조합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움직임은 매우 낯설고 불편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입니다. 안무가가 동작을 만들면 개인적으로 익숙한 방식 혹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관습을 답습하곤 하는데, 안무가가 동작으로부터 차단된다면 완전히 새로운 동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조합된 움직임엔 기승전결이나 논리, 통일성, 의미, 그리고 예술가의 의도가 없습니다. 전통적인 예술관으로 보면 ‘수준 미달’이겠지만 커닝엄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작품 전체에 의미나 의도가 없으니 현재에, 그리고 춤추는 몸에 집중하게 됩니다. 춤이 어떤 것을 상징하거나 재현하는 대신 현상이 되는 겁니다.

현재, 그리고 현상 그 자체를 바라보라고 하니 왠지 명상적이지요? 우연의 조합은 비일관적이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규칙이나 중심이 없으니 관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커닝엄과 케이지의 작품에선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합니다. 세상이 그러하지요. 예측 불가능성에 순응하니 더 큰 가능성이 열립니다. 보고 있노라면 왠지 우주처럼 아득해집니다. 우연의 춤은 즉흥춤과는 다릅니다. 즉흥이 춤 만들기와 춤추기의 시간차를 없앴지만 무용수가 스스로 움직임을 결정한다면, 우연의 춤은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되 결정권을 타자에게 넘겨버리니까요. 안무의 주체가 동전으로 바뀐 것입니다.

1990년대 초 커닝엄은 ‘LifeForms’라는 움직임 구성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안무했습니다. 동전에서 컴퓨터 스크린으로 수단이 바뀌었지만, 우연에 따라 낯선 동작을 조합한다는 원리는 동일합니다. 안무가들이 기술을 백안시하던 때에 70대 나이의 커닝엄은 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해준다고 역설했습니다.

커닝엄의 실험 정신을 이어받은 오늘날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여러 무용단과 협업해온 구글 아츠앤컬쳐Google Arts & Culture는 2019년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의 레퍼토리로부터 움직임을 추출한 인터랙티브 움직임 지도 ‘살아 있는 아카이브Living Archive’를 출시했습니다. 또한 무용수가 움직이면 알고리즘이 아카이브를 기계학습해 맥그리거 스타일의 움직임을 즉시 제안해주는 장치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맥그리거는 새로운 동작을 고안하는 대신 장치가 제안한 동작을 선택/거절하면 됩니다. 어째 ChatGPT로 글쓰기와 비슷합니다.

안무는 ‘움직임의 구조 만들기’라는 점에서 인공지능AI과 밀접합니다. 안무가는 개인이 쌓아온 경험과 관점에서 움직임을 구성하기에는 창의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커닝엄이 64괘의 조합으로 이를 돌파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기계학습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생성하는 알고리즘이 창의적 조합을 무한에 가깝도록 확장했습니다. 당분간은 이 낯선 움직임들을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무한한 창의성이 버거워 예측 가능성으로 돌아오고 싶어질 때까지는요.

글 무용평론가 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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