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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그래도 중요한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 바뀌었다. 장소도 송파구 잠실동에서 종로구 동숭동, 즉 대학로로 이동했다. 왜 대학로일까? 왜 ‘서울’ ‘장애예술’ ‘창작센터’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 사업의 방향을 나누고자 한다.

장애예술인을 위한 공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가 11월 대학로에 재개관한다.

물리적 필요: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 공사

잠실창작스튜디오(이하 잠실)는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종합운동장 한 켠에 자리한 장애예술인 전문 레지던스였다. 2007년 서울시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로 개관했으나 서울문화재단이 운영을 시작하고(2011) 명칭을 잠실창작스튜디오로 바꾸면서(2012) 현재에 이르렀다. 2022년에는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이라는 물리적 변수가 생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시설인 만큼 세월이 흘러 노후화돼 전체적 개보수가 불가피했고, 서울시 동남권개발계획(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계획)에 따라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의 전면 리모델링1 시기가 다가왔다. 물리적·운영적·상징적 측면에서 다음을 모색해야 했다.

왜 대학로인가?

스무 곳 이상의 공간을 탐방하고 답사한 끝에 대학로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잠실의 한계와 대학로의 가능성을 함께 타진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잠실종합운동장은 그 자체로 안전하고 좋은 작업 환경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일종의 섬 같은 곳이기도 했다. 대형 이벤트나 스포츠 경기가 없는 날은 쥐 죽은 듯 조용해 외부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로에는 장애예술 관련 중심 역할을 하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음센터)부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아르코미술관 그리고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까지 위치해 있다. 연대와 협력을 꾀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한편 대학로를 오가며 후보지를 좁혀가는 동안 마로니에 공원과 거리를 활보하는 수많은 장애인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 도심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을 마주하며 이곳에서는 연결과 연대를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 장애예술, 창작센터

큰 고민은 명칭 변경이었다. 이미 서울시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잠실창작스튜디오로 바뀐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장애예술’을 전면으로 다시 내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현장 자문회의와 내부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 확정했다.
1‘잠실’에서 ‘서울’로: 초창기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한 많은 창작공간은 지역명을 딴 명칭을 갖고 있었고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장르별 지원사업을 수행하면서 전업 예술인 위주로 창작공간의 기능이 집중됐다. 2010년대 중반 각 자치구의 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광역문화재단으로서 서울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잠실’에서 ‘서울’로 개명하는 것은 서울시를 대표하는 장애예술 창작공간이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2‘장애예술’을 굳이 내세우는 이유: ‘장애’라는 단어는 여러모로 양가성을 지닌다. 앞서 잠실창작스튜디오로 개명했던 데는 장애라는 타이틀이 지닌 사회적 편견을 지우고 입주작가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등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직 그러한 편견이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잠실’이 ‘서울’로 바뀌었듯이 2022년 현재, 이 공간이 무엇을 대변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장애예술’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장애라는 정체성 또한 개별성과 고유성으로 봐야 한다는 점에 의견이 모였다. “서울문화재단이 추구하는 장애예술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직면하고 재단이 지닌 인적·물적·재정적 수단을 집중하기 위해 확실한 명칭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3‘센터’, 역할의 확장: 스튜디오는 개인 작업실을 뜻한다. 잠실의 경우 2017년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지원사업을 시작하며 공연예술과 문학을 포함하는 전 장르를 지원해 왔다. 2019년부터는 ‘같이 잇는 가치’를 통해 담론 확산 프로그램도 비중 있게 추진 하고 있다. 시각예술 분야의 작업실 이상의 의미를 담아내고 앞으로 더 확장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센터’로 개명을 결정했다.

한 발짝 더 앞으로

대학로의 새 공간은 잠실보다 작다. 면적이 567㎡에서 301㎡로 줄었고 입주작가실 또한 12개실에서 6개실로 줄었다. 물리적 제약이 커진 만큼 내용적으로는 더 확장된 역할을 하기 위해 입주작가뿐만 아니라 비입주 장애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시도하고자 한다.
서울시에서는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 핵심 철학으로 내세우며 여러 분야에서 정책적 실천을 도모하고 있다. 문화정책 또한 예외는 아니다. 특히 오랫동안 서울문화재단이 진행한 장애예술인을 위한 창작공간 운영은 서울시 문화시정에서 중요한 기조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공간과 명칭의 변화가 현장 장애예술인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여전히 조심스럽다. 도덕적 올바름과 정책적 실행 사이에서 매번 고민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테다. 정책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예술이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늘 고민하며 일하는 센터의 직원들을 신뢰한다. 지난 15년간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적의 선택으로 운영해 온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이제는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서 이 분야에서 작은 역할을 꿋꿋이 감당해 내길 소망한다.

이승주_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매니저 |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1 해당 공사는 착공 시기를 기준으로 최소 6년 이상 소요되는 공사다. 2020년 서울문화재단은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 후 재입주를 위한 공간을 확보했으며, 이후 공간 계획과 전체적 운영 철학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장애·비장애 예술인의 다양성이 실현되는 창작공간 조성을 위한 기초연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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