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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7월호

시인의 소설

웹진 [비유] 54호 포스터

웹진 [비유] 54호 <쓰다>에는 시인이 쓴 소설 두 편이 실렸다. 문보영 시인의 〈베케트의 밧줄 가게〉와 김현 시인의 〈수월〉이다. 이미 산문으로 유명한 두 작가이지만 그들의 소설을 읽는 것은 문장과 서사 외에 기대할 것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비교적 짧은 장르인 시를 통해 보여준 문학의 지향점과 분위기가 소설이라는 긴 호흡 안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크다. 시인의 소설은 말수 적은 사람이 고민 끝에 꺼내놓는 은밀하고 각별한 사연 같다.

“여기 뭔가 떨어져 있다.”
2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뒤에서 베케트가 나타났다. 늘 그런 식이다. 뭔가 떨어져 있다. 그건 베케트만의 인사법으로,
그는 이름을 부를 줄 모르고, 그는 안녕?이라고 말할 줄 모르고, 잘 지냈니? 할 줄 몰라서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다 말한다. 뭐가 떨어져 있다는 말과 함께 나는 베케트가 왔구나 한다.
문보영, 〈베케트의 밧줄 가게〉 중

문보영은 자신의 현재 관심사를 소설 곳곳에 배치한다. 그는 소설을 통해서도 주변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를 지속하는데, 이는 특히 시선의 움직임을 따라 끊임없이 다른 사유를 전개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인물의 시선과 생각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어서 독자는 문보영 시인의 글을 쉽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품은 메시지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중심인물인 베케트는 인사를 건넬 줄 몰라서 엉뚱한 말로 사람과의 대화를 여는 사람이다. 위 장면은 대단히 사소하지만 구체적이어서 독자로 하여금 베케트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하게 만든다. 이처럼 시인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장면-이미지를 세밀하게 구성해 둠으로써 베케트가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교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 동시에 관계 맺기에 문제를 겪고 있으리라는 것을 명징하게 그려낸다. 꿈속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건물 안에서 화자인 ‘나’와 베케트가 만난다. ‘나’가 마주한 문, 베케트가 꿈꾸는 밧줄 가게의 구조, 과거 농사를 짓던 베케트가 수확한 거대한 감자 등 두 사람을 둘러싼 발랄하고 엉뚱한 이미지가 모두 관계 맺기의 은유로 읽혀 흥미롭다. ‘관계’ 라는 이름의 다양한 역학 자체를 형상화한 듯 보이는 하나의 건물. 그곳을 끝까지 오르게 된 ‘베케트’는 드디어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는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방세간은 단출하게 장만할 것. 용연과 복희가 연인 사이라는 걸 은숙은 죽은 뒤에야 알았다. 그래서 어느 밤에 그들을 쑥 찾아왔다(아! 은숙은 비명횡사하지 않고 살던 대로 살다가 웃는 상으로 세상을 떴다. (……)) 그 후로 은숙은 용연과 복희를 종종 찾아 왔다. 두 사람은 그 만남을 기쁨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은숙이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치곤 부러 그날에 맞춰 밤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애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와 자식으로 사는 동안 그리 애썼으면 되었다. 은숙도 비슷한 심정이어서 서운할 것도, 속상한 것도 없었다.
김현, 〈수월水月〉 중

수월이라는 술집을 중심으로 용연과 복희가 만나 사랑하고 살아가는 얼마간의 이야기를 담은 김현의 소설은 어딘가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성은 한 번씩 지난한 삶의 굴곡을 건너온,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처럼 보인다. 하는 일이 잘 안돼도 실망하지 않고 행여 일이 잘되더라도 평정심을 잃는 법이 없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내면의 쓸쓸함에 호들갑을 떠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과 인생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충분한 정성을 기울이면서도 세상이 쉽게 달라지리라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랄까. 김현 시인은 주류의 힘에 저항하는 약자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여왔다. 어쩌면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가가 한 세계를 꾸리면 이런 모습이 되리란 걸 말이다. 편견과 오래 싸워온, 일상 속에서 그런 싸움을 견뎌온 인물들이 이처럼 초연하지 않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김잔디_[비유]편집자 | 사진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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