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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6월호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 해진 꿈이 남긴 얼룩

꼭 이뤄질 거라 믿고 오래 묵혀둔 꿈이 이뤄지지 않고 내 삶에 미련으로 남았을 때, 그 마음은 결국 우리를 해친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닳아 너덜너덜해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꿈에만 집착하고, 정작 그 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계속 달려야 하기에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진심을 충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죽도록 노력하는 꿈

특별할 것 없던 열아홉 살 고교 야구선수 광호(정재광)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결승타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신인 드래프트를 기대했지만 결국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감독을 통해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광호는 불법 휘발유 파는 일을 하고, 끝내 위험한 선택을 한다.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은 광호가 야구를 한 이후, 가장 빛나는 순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치 폭신한 꽃길이 열릴 것 같은 기대를 해보지만 측은하게도 광호 앞에 열린 길은 계속 모래바람이 부는 흙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낫아웃>은 청춘의 꿈을 애처로워하지만 허망한 희망을 주지 않는다. 어쩌다 행운이 찾아올 수는 있어도 그 행운을 여신으로 떠받들어 계속 곁에 두기 위해서는 ‘실력’이 아닌 ‘돈’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국 광호에게 야구는 꿈꾸는 미래가 아닌, 극복해야 할 현실이 된다. 야구를 향한 순수한 열정, 숭고함에 가까운 노력은 지독한 현실 앞에서 번번이 무너진다. 노력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돈’과 ‘인맥’이라는 단단한 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진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가짜 휘발유를 팔아 돈을 모은다.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꿈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미 바닥이 드러난 자신의 미래를 눈치채 버리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눈을 질끈 감아 스스로 속이는 법부터 배운다.

죽어도 안 되는 꿈

광호는 9회말에 진짜 역전을 이뤘지만 그의 인생에 역전은 없었다. 치열하게 노력해서 한 발, 극복해야 하는 장애를 넘어 한 발. 꿈이라고 생각했던 운동이 과제가 되고, 미래의 숙제가 되고, 극복해야 할 장애가 되어가는 과정을 계단처럼 겪어 오른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의 인생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정곤 감독은 부글부글 끊는 이야기, 생생하게 체감하게 만드는 주인공의 고통을 한 치의 동정이나 희망 없이 들여다본다. 그래서 결말이 뻔해 보이는 광호의 미래는 관객에게 상처 입은 식도로 뜨거운 물을 삼키는 것 같은 통증을 준다.
죽도록 노력하지만 죽어도 안 되는 일 앞에서 끝까지 버티는 광호를 연기하는 배우 정재광은 이야기보다 앞서 관객을 연기로 설득한다. 좌절된 꿈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어 불타는 가짜 휘발유라도 넣고 달리는, 고장 난 차 같은 인물 자체가 된다.
영화의 제목 <낫아웃>은 투수가 던진 세 번째 스트라이크로, 삼진 아웃이 됐지만 포수가 이를 받지 못해 삼진 아웃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나지 않은 영화의 제목처럼 이정곤 감독은 광호의 삶을 낙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함부로 그의 삶에 꾹 마침표를 찍지는 않는다.
영화 속 어디에도 아이들의 고장 난 몸과 갈가리 찢긴 마음을 기워주는 든든하고 단단한 어른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꿈을 지키기 위해 가짜를 팔아야 하는 기묘한 이야기. 낭만적 관조 한 줌 없이 바라본, 모래알을 씹은 것 같은 이물감 앞에서 이야기는 멈춘다. 온기가 없는 그늘 속에 갇힌 광호의 마음이 눅눅한 곰팡이처럼 얼룩으로 남는다.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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