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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9월호

녹색 생활을 되찾는 길
식물을 되새기는 사람들

옛 문화에서도 조상들이 자연을 그리고 이야기하는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연을 곁에 두고자 소담한 정원을 만들고, 때로는 자연을 옮기기보다 스스로 녹수청산에 몸을 담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는 현대에도 이어진다. 사람은 식물을 곁에 두고 싶어 하며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최근 출판·전시·문화 공간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에도 식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화예술계에 나타난 식물의 모습

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 녹음綠陰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의 창작 동기가 된다. 푸르른 식물은 고즈넉한 휴식과 안락함을 느끼게 하며 팬데믹이 장기화되는 불안한 상황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더욱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도 자연을 연구하고 창작의 모티프로 삼는 활동이 눈에 띄고 있다.
복합전시공간 ‘피크닉’은 전시 <정원 만들기 GARDENING> 을 선보이며 도심에 자연스럽게 식물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는 자연성을 회복하는 장소로서 도시 정원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팬데믹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위로’ ‘치유’의 개념을 담고 있다. 설치미술가 최정화, <말하는 건축가>를 연출한 영화감독 정재은, 그래픽디자이너 박연주, 박미나 작가 등이 참여해 각자의 관점에서 정원의 가치를 표현했다. 관람자는 전시를 보며 식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개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식물을 끌어들이게 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식물과 인간의 거리를 좁히는 시도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유휴 공간 프로젝트로 <당신의 정원>(2020. 11. 24~12. 20)을 진행했다.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 등 식물과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예술 작업으로 선보이는 김이박 작가와 미술관의 시설 청소원 12명이 함께 야외 테라스에 정원을 만들어 관리했다. 김이박 작가는 ‘소장’이 돼 프로젝트를 함께 했고 참여자들은 실명이 아니라 각자가 좋아하는 식물 이름으로 서로를 호칭하며 정원을 함께 가꿔나갔다. 미술관 내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식물을 선택하고 때로는 선택받으며 인간과 식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이 전시 <정원 만들기 GARDENING>을 10월 24일까지 개최한다.

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미술관이 휴관한 늦봄부터 가을까지 정원을 조성해 식물을 매개체로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하나의 정원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관상용 꽃이나 식물을 선택하지 않은 것 또한 눈길이 간다. 이들은 조금 더 ‘쓰임 있는 작물’을 길러내는 것으로 식물을 돌보고 그 삶을 지탱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깨달았다. 식물을 예술의 대상으로 바라본 관점 역시 눈길을 끈다. 엄유정 작가의 화집 《FEUILLES》는 독일 북아트 재단과 라이프치히 도서전이 공동 운영하는 국제 책 디자인 공모전 ‘2021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서 최고상인 ‘골든레터Golden Letter’를 수상했다. 프랑스어로 ‘푀유FEUILLES’는 ‘잎사귀들’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FEUILLES》에서는 식물과 종이를 모두 의미한다. 이 책에는 엄유정 작가의 식물 그림 112점이 수록됐다. 한국의 드로잉북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돼 수상했다는 소식은 출판업계는 물론 디자인 분야까지 들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화집을 통해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식물의 모습을 조명하는데, 이는 식물의 예술성을 더욱 설득력 있게 바라보는 행위로서 의미가 있다.
특히 《FEUILLES》는 식물이 가진 모습을 외형적인 관점으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지 공모전 주최 측은 “섬세하고 고운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으로 시작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과 종이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테일을 보여준다. 엄선된 소재를 사용해 독자에게 작가의 작품을 촉감을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FEUILLES》는 단순히 시각적 표현에 한정되지 않고 촉감을 통해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식물이라는 주제는 이러한 디테일을 더 효과적이고 유기적으로 보여주는 객체가 됐다고 생각한다. 식물의 미세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예술 활동을 출판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다.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것에서 식물을 하나의 주체로 이해하려는 모습 역시 눈에 띈다. 신혜우 작가의 자연 일러스트 에세이 《식물학자의 노트》는 식물이라는 존재의 특성을 오롯이 살피고 식물 자신의 생존에 대해 쓴 책이다. 신혜우 작가는 식물을 연구하며 식물을 그리기도 하는 식물학자다. 식물분류학과 식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를 융합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영국왕립원예협회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식물 일러스트로 금메달을 수상했다.
《식물학자의 노트》는 어떤 이유를 들어 식물과 인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생태계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종을 퍼뜨리는 식물의 강인함과 삶을 그림과 글로 담을 뿐이다. 신혜우 작가는 학술용 식물 도해도를 그리다가 식물에 색을 처음 칠하게 됐다.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의 여린 잔뿌리 등 식물의 섬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해 식물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했다. 식물을 객체로 바라보지 않고, 식물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사실적 특성과 이론을 이해하게 하는 작업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여러 사례를 통해 식물이 다양한 관점에서 문화예술계에 깊게 침투해 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도 다채로운 분야에서 식물의 활약이 돋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엄유정 작가의 화집 《FEUILLES》

식물을 찾는 다양한 이유

문화예술계에서 식물을 표현하고 이를 작업화하는 방식에는 하나의 종으로서 생물을 바라보며 존중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생물을 아끼는 마음이 투영됐다고 보는데, 이러한 작가들의 작업을 향유하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휴식’ ‘힐링’을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많은 이가 식물을 찾으며 개인의 일상에 식물을 들일 여러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식물을 둘러볼 수 있는 도심 속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며 때로는 작은 화분을 들여 집을 가꾼다. 근래 ‘반려 식물 기르기’가 활성화된 것도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업무 공간에도 식물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린 오피스’ 문화가 생겨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피스 공간을 녹색 식물로 채워서 편안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맡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디자인하는 사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녹색 생활을 지향하며 ‘플랜테리어’를 선호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인간이 식물을 찾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영희의 에세이 《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는 숲을 걷고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을 즐기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긴 시간 식물을 관찰하며 신종 ‘쇠뿔현호색Corydalis cornupetala’을 학계에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식물 탐사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의 책은 식물 탐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식물을 되새기는 일은 하나의 산 책이고 휴식과 힐링을 위한 과정이다. 그는 식물을 섬세히 들여다보고 종류를 하나하나 알아가며 느낀 식물과의 유대감을 책에 기록했다. 인간은 식물을 이해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편안한 정서를 가지게 된다.
어쩌면 인간은 ‘결국엔 자연’이라는 답을 아는 듯하다. 팬데믹 장기화로 많은 이가 지쳤지만 다른 취미 활동 외 식물에 관한 관심이 대두하는 현상은 산업화를 겪은 지구에서 인간이 숨 쉬고 평안을 찾는 방법이 녹색 생활을 되찾는 길이라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연구하고 문화예술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 또한 이를 찾아가는 방식이며 많은 이가 이를 향유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또 한 번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 식물을 찾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 신혜우 작가의 자연 일러스트 에세이 《식물학자의 노트》

  • 김영희 작가의 에세이 《가끔은 숲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식물을 알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식물

식물을 알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인간이 식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휴식’과 ‘편안함’만에 기대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식물이 인간의 삶에 깊숙하게 개입했으나 오히려 식물의 삶에 인간이 들어가는 일에는 회의적이다. 식물을 바라보고 그 삶의 투쟁을 지켜보며 가치 혹은 의미를 찾으나 도리어 인간이 식물에 주는 이로움은 딱히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식물의 생장이란 교훈이며 투쟁과도 같은 강인한 생명력은 감탄의 대상이다. 때로는 푸른 숲 내음에 위안을 얻고 그 자체가 안식이 된다. 사람은 식물을 연구하고 이를 예술적 행위로 치환하지만 한편으로 식물의 사실적 모습 자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위로받는다. 식물학자인 신혜우 박사에게 식물을 알리는 사람으로서 식물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신혜우는 “식물을 연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식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식물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인간이 한 종이듯, 식물도 한 종이며, 또 세부 종류가 아주 많아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식물을 인간과 동등한 객체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식물은 식물을 위해서 살아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윤미지 《핸드메이커》 기자 | 사진 제공 피크닉, 대한출판문화협회, 김영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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