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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당신의 식물은 안녕하신가요
작가 김이박

‘김이박 소장’은 의뢰자의 시들어가는 식물을 치료해 준다. 치료에 앞서 의뢰자에게 식물과 어떤 정서적 유대가 있는지 물어보면 “다이소에서 구매해서 딱히…”라는 유의 대답이 돌아온단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온 식물을 정성껏 보살펴 살려낸다. 의뢰자의 ‘식물이 죽을까 염려하는’ 조그만 마음을 차곡차곡 수집하고, 식물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례를 모아 탐구한다. 그는 드로잉·설치·영상·퍼포먼스 등 여러 방식으로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Q 독자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작가 겸 정원의 소장이라고 보통 소개해요. ‘김이박 작가님’은 딱딱하고 평생 예술만 하면서 살 것 같아서 명함에도 ‘소장’으로 적었습니다. 원래도 작가가 아니었어요. 플로리스트라고 꽃 꾸미는 일을 하다가 그림도 그리면서 작업에 입문했어요.

Q 어떤 계기였나요?

2014년에 고양시에 살면서 식물을 엄청 많이 키웠어요. 400가지 넘는 식물을 곁에 두면서 SNS에 자랑했죠. 그러다가 제가 작가로서 작업하게 된 계기를 주신 할머니를 만났는데요. 저는 ‘고무나무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모습을 6개월 넘게 지켜봤어요. 매일 고무나무 잎을 소중히 닦고 계셨어요. 제가 식물을 많이 키우는 게 소문이 났는지 어느 날 할머니가 제게 말을 걸었어요. “고무나무가 아픈 데 봐줄 수 있느냐”고요. 고무나무가 무거우니까 할머니 혼자서 분갈이를 못 해 뿌리가 썩고 있더라고요. 왜 이렇게 소중하게 키우시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2000년대 초반에 아들이 개업한 사무실의 화분이었는데 부도가 나버리고 아들은 잠적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화분을 집에 가져와 여태껏 키운 거죠. 나무가 건강하면 아들이 건강하겠거니 싶어 소중히 키우셨는데, 이제 나무가 아프니까 아들도 아픈 게 아닐까 걱정이 드신 거예요. 저는 충격받았어요. 그때까지는 식물에 감정 이입을 하지 않았거든요. 자랑용으로 식물 키우기를 그만두고 작가로서 어떻게 작품화할지 고민했어요. 사람들이 식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기대는 심리가 뭘까 궁금해졌거든요.

Q 작가님이 식물에 감정 이입한 작업이 있을까요?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 도당都堂 할아버지 느티나무가 있어요. 도당은 동네 사람들이 수호신을 모시고 복을 비는 곳인데요. 제가 2015년에 방문했을 때 마침 굿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할머니 느티나무도 있었대요. 400년 넘도록 마을을 지켜주는 부부 나무였는데 1973년 팔당댐이 생기며 할머니 나무는 물에 잠기고 할아버지 나무만 남은 거죠. 사람들은 할아버지 나무에게 복을 빌잖아요. 그런데 할머니를 잃은 할아버지를 위로해 주는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저는 근조 화환에 <공무도하가>를 적고 하얀 국화꽃을 강에 띄워 보냈어요. <공무도하가>가 반려자를 잃은 이의 한탄을 노래한 시가잖아요. 두물머리에서 한 퍼포먼스는 사람 아닌 식물을 위로하는 작업이었죠.

Q 작가님이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궁금해요.

식물을 기르는 제 마음이 아버지가 저를 걱정하는 마음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전시 <노심초사>(2016)를 개최했어요. 재수생 시절에 아버지가 제게 편지를 줬는데요. 그 편지 위에다 식물을 겹쳐 그린 작품을 전시에 내놓았어요. 자식을 노심초사하며 키우는 입장에서 식물을 대하는 태도랄까요. 그렇지만 항상 같은 마음으로 식물을 대하지는 않았어요. 식물을 쳐다보기도 싫은 때도 있었죠. 개인 사정 때문에 공황장애도 겪고, 저를 향한 시선이 ‘식물을 좋아하니까 착할 거야’ ‘함부로 대해도 괜찮을 거야’ 하는 무례한 경우가 많았고요. <미모사>(2018) 전시에는 그런 신경질적 반응을 담았어요. 대부분 식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미모사랑 무초는 달라요. 미모사는 만지면 움츠러들고 무초는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춰요. 식물도 반응한다 말하고 싶었죠. 사람을 치유하고 격려하는 주제로 식물을 선보이는 전시가 많이 열리고 그만큼 많이 불려 다녀서 힘들었어요. 나쁜 일은 아니지만 좋지 않은 상황에 식물을 이용해 상황을 풀어나가려는 양상이 안타까웠어요. 예능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 나왔듯 “오늘은 아무 사건도 없었습니다”라면서 뉴스가 끝나는 세상에서 식물을 보이면 좋겠어요.

Q 식물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신가요?

이 ‘아이들’은 제가 없으면 다 죽어요. 저도 몰랐는데 제가 식물에게 감탄사를 뱉으면서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고 잘 자랐네~” 이런 식인 거죠. 부모님은 20년 넘게 혼자 사는 아들 보면서 식물에게까지 말하느냐 걱정하는 데요. ‘아이들’은 제 관심이나 사랑을 오롯이 받는 존재라 정말 좋아요. 제 사랑만큼 분명한 결실을 보여줘요. 또 제 은인이기도 하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작업도 할 수 있잖아요. 좋아하는 만큼 많이 보니까 작업의 맥락을 자연스레 만들고 다양한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준비하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고무나무 할머니’가 워낙 임팩트가 커서요. 앞으로도 식물을 매개체로 여러 사람 혹은 식물의 사례를 전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 같아요. 할머니도 당시에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랑 친해지고 고무나무를 매개로 본인의 힘든 시절, 아들에 대한 그리움,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저는 “이런 작업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식물을 매개체로 여러 사례를 듣고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 활동가이기도 하고,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는 일이 제 궁극적 목표고요. 작가를 평생 할지는 모르겠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는 계속 남지 않을까요.

장영수 객원 기자 | 사진 공간느루 | 사진 제공 김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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