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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낯선 공포에 홀리다
현실에서 괴리된 섬뜩한 이야기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공포’가 쏟아진다.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무서우면서도 사람들이 공포 콘텐츠에 홀리는 이유가 뭘까.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스산한 세상에 스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하고, 공포의 매력을 들여다보자.

지난 7월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제8일의 밤>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순전히 예고편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어두운 골목길 저편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우두커니 서 있더니 다음 순간 뭐라 형용하기조차 힘든 기묘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빙의를 소재로 한 오컬트물이니만큼 그 이유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무나 생경한 광경에 저절로 소름이 끼쳤다. 이후 공개된 또 다른 예고편에선 그 기이한 표정에 더해 여학생의 뺨이 벌어지며 눈알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웃는 듯 기만하는 듯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존재를 가장한 잔상에는 미치지 못했다. 낯선 공포에 이미 마음을 뺏긴 탓이다.

무엇이든 상상 가능한 공포의 영역

공포恐怖란 문자 그대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뜻한다. 그리고 그간 두려움은 극복해야 할 것, 무서움은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했지만 이런 정론은 수많은 호러 콘텐츠와 이를 즐기는 사람들 앞에서 곧 무력해졌다. 공포란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 가장 강렬한 데다 결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으로 긴장과 불안의 가장 높은 층위에 있기에 현실에선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콘텐츠로 이어졌을 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흔히 공포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안도감에서 찾곤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공포물 안에 도사리는 온갖 혼란과 극단적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 영화관이나 안락한 거실이 주는 익숙한 안도감을 새삼 실감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호러 콘텐츠를 즐기는 이유를 단지 안도하기 위해서냐고 반문한다면 ‘고작’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우선 공포물에서는 모든 것을 가정하는 게 가능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상황과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때로는 귀신이나 악마·요괴·원혼·요정·좀비·괴물이 아예 실재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은 안온한 일상을 순식간에 전복함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속에 강렬한 소요騷擾를 불러 일으킨다. 불가사의한 존재에게 목숨을 위협당하거나 괴이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강고한 체계가 흔들리는 경험은 현실에선 결코 쉽게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양한 정신이상 증세와 극단적 폭력은 모두 현실을 훌쩍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공포 콘텐츠에서는 어떤 장르보다 극대화 되어 표현된다. 흔히 괴팍한 악취미 정도로 폄훼당하기 일쑤인 기괴한 크리처creature, 기묘한 생물 디자인이나 현실 밖 손에 닿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구축한 위협적인 공간만 보더라도 금세 알 수 있다. 공포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반대로 인간의 상상력을 가로막는 장벽은 사라진다.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필모그래피에 공포영화가 한두 편씩 껴 있고,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이 데뷔작으로 공포영화를 택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다. 일정 정도 호러 마니아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른 장르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연출 기법을 보여주고 분방한 상상력을 과시하는 데 공포 장르는 안성맞춤이다.

극한 상황에 몰입하는 재미

그렇다고 공포물이 늘 별세계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과 상상력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나머지 우리의 현실과는 완전히 괴리된 상황을 구현할지라도 그 기저에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간 본연의 욕망이 자리한다. 이를테면 과도한 연정, 맹목적 추종, 무차별적인 혐오, 도를 넘어선 물욕이나 색욕, 폭력 지향적 태도, 살인 충동 등 온갖 뒤틀린 욕망이야말로 대부분의 공포 장르가 조명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당연히 연쇄살인마나 귀신은 필수 요소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죄책감과 불안을 자극하거나 인물 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일상은 단숨에 뒤집힐 수 있으니까.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 있음에도 어쩐지 희미하던 이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그 섬뜩한 세계를 거울 삼아 대신 응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알다시피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는 일은 무척 재미있는 일인 데다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기도 하지 않은가.
최근 호러 장르는 점점 더 구획이 모호해지는 추세다. 그간 호러물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이형의 존재들은 다른 장르에도 속속 이식되어 이제는 ‘호러’와 ‘호러 외’ 장르로 나누는 일이 거의 무의미해졌다. 이미 서구에서는 호러·SF·판타지 등의 요소를 지닌 장르소설을 뭉뚱그려 SFSpeculative Fiction, 즉 ‘사변소설’ 로 통칭한다. 호러는 전통 방식 그대로 장르를 구획하는 동시에 오늘날 대중문화의 가장 주요한 코드로 통한다. 인간이 지닌 숨겨진 면면을 발굴하는 호러 장르 본연의 태도 역시 더는 두려움과 무서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서스펜스를 부러 즐기려는 심리는 처음부터 공포물 특유의 극진한 재미에서 찾는 게 옳다. 그러니 공포는 극복해야 하는 것일지 몰라도, 공포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냥 즐기는 게 당연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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