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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아무렇지 않은 공존을 위하여

《사이보그가 되다》 본문 일부

현재 SF소설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김초엽과 변호사이자 작가로,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공연 관객들 에게는 배우이자 무용수로 더욱 친숙한 김원영의 협업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유기체와 기계의 결합을 뜻하는 ‘사이보그’ 개념을 장애 보조기기와 함께 살아가는 저자들의 일상과 더불어 사유한다는 점에서 《사이보그가 되다》의 출간은 출판계를 넘어선 예술계 전반에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책은 김초엽과 김원영의 글이 교차하는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본문의 장이 모두 끝나고 난 지점에는 녹취, 편집된 두 저자의 대담이 담겨 있다. 저자들이 보여온 그간의 활동을 반추하며 이번 신간이 내용상 문 학과 법률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 반, 곤혹스러움 반으로 마음을 무장해 두었지 만, 정작 책의 중심에는 장애학과 과학기술학의 접점을 이루는 동시대 담론(가령, “장애인을 위한 기술 이 아니라 장애인과 장애 공동체가 직접 만들고 건설하는 기술 정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크립 테크 노사이언스”(187쪽) 등)에 대한 세밀한 고찰과 “자신을 끊임없이 감추고 숨기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세계 속 사이보그들”(135쪽)에 대한 이야기가 놓여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이보그가 되다》 속 사이보그의 형상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음직한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하늘과 바다를 누비는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기계와 인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와 구분을 없애고 횡단하는 잡종적인 존 재의 경이로운 상징도”(113쪽)도 아닌, 마치 두 개의 사물을 접합하는 데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인 ‘테 크놀로지’이자, 어느 집이든 하나쯤은 있게 마련인 청테이프처럼 유연하고 일상적인 관계의 패치워크 로서 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들의 생각에 흐름을 만들어내던 그 모든 언어의 밑바탕에는, 또한 ‘결코 쉽지 않은 비유’와 ‘잔여물 없이 분명한 상념’ 사이의 이음새를 만들어내던 그와 같은 언어의 밑바탕에는, 두 저자의 몸과 마음에 오랜 시간 쌓여온 서로 다르며 같은 경험의 켜가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은 후부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김초엽 작가와 골형성부전증으로 한 살 무렵부터 정형외과 치료를 받 아야 했던 김원영 작가가 겪어온 장애는 가시성 여부에서 보이는 차이(비가시적 청각장애와 가시적 지 체장애)에서부터 보조기기에 대한 개인의 감각 차이(“보청기는 나의 장애가 투영되는 대상이라기보 다는 약간 걸리적거리는 보조기기”(김초엽), “휠체어가 없으면 발가벗은 기분”(김원영))에 이르기까 지 장애 상태와 그 상태에 놓인 몸에 대한 이해의 균질화(homogenize)를 경계하게끔 한다. 그러나 다 른 한편, 두 저자의 경험 인식은 공통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신체장애에 대해 특정 신체 부위의 기능적 결함으로만 여기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김원영 작 가의 말처럼 장애는 단순히 신체 기능의 결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까우므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155쪽)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초엽 작가가 장애 중심적 공간 설계와 관련해 “장애가 손상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공간에 따라 재규정될 수 있는 개념”(194쪽) 임을 언급할 때, 우리 일상 속에서 신체장애를 장애라는 특정 상태로, 즉 결여와 불가능의 상태로 환원 시키는 요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재인식하게 된다. 불가능하거나 불가항력적인 것을 가능하게 만드 는 초월적 세계가 아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들의 허락된 잠재력을 지금, 여기에서 탐구해 보는 것.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의 다른 방식들을 소환해 하나씩 실천해 보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아래와 같이 김초엽 작가가 그리는 해방적 미래 서사는 환기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아주 어려운 상상이라고 해도 나는 모든 사람이 ‘유능한’ 세계보다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 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더 해방적이라고 믿는다. 어떤 손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보다는 고통받는 몸, 손상된 몸,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몸들을 세계의 구성원으로 환대하는 미래가 더 열려 있다고 믿는다. (281~282쪽)

글 손옥주_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포스트닥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투르그로 공연 현장에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 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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