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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2020 세계 피아노의 날’ 기념 온라인 스트리밍 콘서트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의 피아노 콘서트
피아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매년 88번째 날은 기억해둘 만하다. 88개의 건반을 지닌 악기 피아노를 기념하는 ‘세계 피아노의 날’로, 전 세계에서 다양한 기념 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콘서트가 다수 진행됐다. 그중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마련한 가상 페스티벌은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을 ‘방구석 1열’로 불러 모았다.

매년 88번째 날은 ‘세계 피아노의 날’

피아니스트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나온다. 건반 앞에 앉아 의자 높이를 조절한다. 곧 근사한 연주가 시작된단 얘기다. 구름 같은 침묵 속에 청중의 기대가 섞여 있다.
클래식 음악의 연주회용 악기 중 가장 유용하고 기본적인 악기는 피아노다. 88개의 건반마다 하나의 음이 대응한다. 선율 악기와 화성 악기의 두 기능을 겸비해 복잡한 오케스트라 곡도 편곡 연주가 가능하다. 프란츠 리스트가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이 그 예다.
오늘날 피아니스트들은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 ‘일당백’이다. 스타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거대한 콘서트홀의 객석 티켓을 매진시키고 청중은 열광한다.
1년에 한 번 세계인이 피아노를 기념하는 날이 있다. ‘세계 피아노의 날(World Piano Day)’이 그것이다.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프로듀서인 닐스 프람(Nils Frahm)이 주창해 2015년 시작됐다. 매년 피아노의 건반 수인 88번째 날에 개최된다. 피아니스트들에게 연주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던 프람은 “연주가, 피아노 제작자, 조율사, 운반용역, 그리고 누구보다도 청중이 함께 축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후 해마다 88번째 날에 전 세계에서 콘서트, 리사이틀, 강연, 쇼케이스를 통해 피아노와 그 음악의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한다. ‘세계 피아노의 날’ 공식 누리집(www.pianoday.org)에 모든 일정이 공개된다.
세계 피아노의 날을 축하하는 방식은 어렵지 않다. 오디오와 스마트폰 등의 기기를 통해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을 감상하고 지역의 콘서트홀을 방문해 멋진 공연에 참여하면 된다. SNS에 피아노 레슨을 받거나 연주하는 장면을 올리고 해시태그 #WorldPianoDay를 단다.
2020년 세계 피아노의 날 행사가 지난 3월 28일 토요일에 열렸다. 수많은 공연이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황에서 세계 피아노의 날은 인터넷 라이브 스트리밍에 주력했다. 신호탄은 전날인 3월 27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쏘아 올렸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CEO 루이스 헤론의 인사말로 시작돼 세계 피아노의 날의 주창자 닐스 프람의 소개에 이어 존 홉킨스·마가렛 렁 탄·윱 베빙·안드레아 람·사이먼 테데스키의 연주가 방송됐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조율사인 테리가 아이들에게 피아노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도 나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의 이색 페스티벌

다음 날, 노랑 바탕의 레이블 아이덴티티 디자인으로 유명한 도이치 그라모폰의 세계 피아노의 날 기념 가상 페스티벌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명실공히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하는 소속 피아니스트의 연주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대표인 클레멘스 트라우트만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명인 피아니스트들이 그들의 집에서 자신의 피아노로 전달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세계인이 나눌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시간으로 3월 28일 오후 11시 시작된 이 ‘랜선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애호가가 컴퓨터 앞에 앉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피아니스트들이 각자 머무는 집에서 연주해 ‘집 구경’을 하는 재미도 있었다.
포르투갈 출신의 거장 마리아 주앙 피르스가 1번 타자였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을 진지하게 연주하며 “우리 자신과, 세상과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 필요한 때”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제2의 글렌 굴드’로 손꼽히는 아이슬란드의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바흐와 라모, 드뷔시의 곡을 선사했다. 새소리 나는 숲이 보이는 듯한 큰 창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네오 클래식의 기수인 윱 베빙이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자작곡을 선사했고, 베토벤 해석의 거장으로 꼽히는 루돌프 부흐빈더가 최근의 화제작인 <디아벨리 프로젝트> 앨범 중 몇 곡을 연주했다.
드디어 한국의 조성진 차례였다. 아늑함이 느껴지는 집에서 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간주곡 작품번호 118은 위로와 힐링이 되기 충분했다. 세계를 주름잡는 거장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국인의 존재감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폴란드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는 쇼팽의 <녹턴>과 멘델스존의 <무언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등 귀에 익은 곡들을 들려줬다. 버드와 바흐, 리스트 등을 연주한 미국의 킷 암스트롱은 명민한 연주로 이날 인상적인 연주를 보여준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남았다. 레바논·멕시코 혈통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시몬 그라이시는 빌라 로보스와 타레가, 마르케스 등의 이국적인 작품을 연주했다. 두 명의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예브게니 키신은 쇼팽의 폴로네즈 6번 <영웅>을, 다닐 트리포노프는 바흐의 <푸가의 기법> 중 몇 곡을 선보였다.
그다음 날인 29일에는 소노라스페이스(Sonoraspace)에서 버추얼 피아노 페스티벌을 열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의 피아니스트 10명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릴레이로 연주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세계 피아노의 날 행사와 비슷했다.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스트리밍 공연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른바 ‘방구석 1열’이란 이름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이 성황이다. 그러나 디지털 스트리밍은 공연예술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실제 공연의 청중을 늘릴 수 있는 자기 홍보의 이벤트일 뿐이다. 아티스트와 공연장 측에 제대로 된 보상이 돌아가지 못하므로 장기화될 수 없다. 랜선 음악회의 오디오적 퀄리티 역시 잘 갖춰진 시스템에서 접하는 음반과 DVD, 블루레이에 미치지 못한다. 어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서 청중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피아니스트의 예술혼과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 류태형_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도이치 그라모폰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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