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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8월호

도심 속 산책로, ‘서울로7017’ 유람기 타박타박 고가 위를 거닐며 진짜 서울을 느끼다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냈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른 독특한 산책로를 다녀왔어요. 공원처럼 휴식공간도 잘 조성돼 있고, 구경할 게 많아서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거기가 어디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가까워요. ‘서울로7017’로 가면 되거든요.” 많이 덥지는 않았냐, 반나절 다녀온 거로 충분하냐 하는 사람들의 질문 공세는 어느새 ‘나도 얼른 가봐야겠다’ 하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한여름, 도시에 남아 휴가를 보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위해 서울로7017 유람기를 준비했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1 한양도성으로 오르는 길.

산으로 바다로, 모두 뿔뿔이 여름휴가를 떠나 조금 휑한 듯한 서울에서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올여름엔 아무 데도 안 가세요?” 하는 질문을 몇 번 듣고 나니 왠지 떠나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던가. 이왕 도시에 머물게 된 거 제대로 즐겨보기로 마음먹었다. 단 하루의 황금 같은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다 시원하게 길이 뚫린 서울로7017이 떠올랐다.
두어 달 전, ‘찻길에서 사람길로’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시원하게 개통한 국내 최초의 고가 보행길. 버스를 타고 오가며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만 먹었었는데, 잠시 잊고 지낸 사이 서울로7017 곳곳은 어느덧 여름에 걸맞게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저 위에 올라가도 무사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 전혀 덥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지’ 하는 생각으로 용기 내서 걸음을 옮겼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2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공중자연쉼터.
3 ‘스마트투어가이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서울로7017에 있는 나무와 꽃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다.
4 이우성 작가의 <키스 키스> 전시 작품. <우리가 행복한 시간>(Our Happy Times), 2017, Water based paint, gouache on fabric, 210×70cm.

도심 속에서 역사와 문화, 자연을 만나다

1970년에 만들어진 길이 2017년에 재탄생해서, 17m 높이의 고가가 17개 길로 이어져서 이름 붙여진 ‘서울로7017’. 남대문시장에서부터 서울역 위를 지나 만리·중림·청파동까지 1,024m의 보행로로 이어진 길은 주변 어디서든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17개의 통로로 연결돼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서울로7017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양도성 진입로 입구로 향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소음과 회색 건물이 가득한 도심 풍경이었는데, 몇 분 걷지 않았건만 수백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한양도성과 무성한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한양도성.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짙은 색과 향을 내뿜는 도성길 끝자락에서 오랜 서울의 역사를 느끼며 산책을 시작했다.
서울로7017은 228종, 2만 4,085그루의 조경수가 곳곳에 놓여 있어서 제아무리 직진본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길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거닐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패랭이꽃, 부채꽃, 수국과 같은 다양한 꽃은 물론 부레옥잠, 연꽃과 같은 수생식물이 저마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통에 모두 휴대폰을 꺼내 찰칵, 사진을 찍으며 구경한다. 서울로7017에 있는 나무와 꽃의 정보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스마트투어가이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다양한 수목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고층 건물이 빽빽한 회현동 길을 지나 연세세브란스빌딩과 서울스퀘어 사이를 벗어나자, 서울역사 앞 대로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시원하게 뻥 뚫린 풍경을 보자마자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고가에 올라와서 태양과는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더운 열기를 내뿜는 아스팔트와 자동차로부터 벗어나서, 그리고 탁 트인 풍경이 더해져서 한결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이 풍경을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수국식빵 옥상 전망대로 올라갔다. 서울로7017 곳곳에는 카페, 전시관 등 조그마한 공간들이 있는데, 옥상에 오르면 주변 풍경을 한결 더 시원하게 눈에 담을 수 있다.
길을 절반 정도 걸으니 그제야 더위가 느껴졌다. 더위를 쫓고 싶을 땐 ‘솨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흰 기둥 앞으로 향하면 된다. 산책로를 거니는 시민들이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시원한 물안개가 분사되는 안개분수와 강풍기가 곳곳에 놓여 있다. 그래도 여전히 덥다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오손도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공중 자연쉼터로 향한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있어서 발을 담그자마자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하다. 2시간마다 한 번씩 물과 얼음을 교체해서인지 여러 명이 함께 발을 담그고 있는데도 물이 맑고 투명하다.

테마토크 관련 이미지1, 2 문화역서울 284.
3 서울로7017에서는 다양한 수목을 만날 수 있다.

테마토크 관련 이미지4, 5 목련다방 아이스크림과 도토리풀빵.
6 만리동광장에서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진다.
7 오르내리는 숲길이 인상적인 약현성당.

테마토크 관련 이미지

각양각색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들

서울로7017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 주변 풍경뿐만 아니라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건 트램펄린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방방놀이터’와 인형극을 관람할 수 있는 ‘달팽이극장’, 어른들에게 인기 있는 건 다양한 현대미술품 전시를 볼 수 있는 ‘서울로 전시관’과 각종 공연이 펼쳐지는 ‘장미무대’다. 투명한 문 사이로 형형색색의 작품이 들여다보이는 서울로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헬로! 아티스트 × 서울로7017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우성 작가의 <키스 키스>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로 전시관의 작품을 천천히 살펴본 후, 내친김에 고가 바로 아래 위치한 ‘문화역서울 284’로 향했다. 구 서울역사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이곳에서는 전시, 공연, 건축, 영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펼쳐진다. <시간여행자의 시계> 전시를 느긋하게 둘러본 후 다시 서울로7017 길로 올라섰다.
끝에서 끝인 남대문시장 방면에서 만리동광장 방면까지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가 소요되는 길이지만, 성곽길과 문화역서울 284까지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장미마당에서 다양한 종의 장미꽃을 둘러본 후, 더운 날씨에 오래 걸었으니 잠시 쉴 겸 ‘장미김밥’ 안으로 들어섰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서울로7017 주변 관광 지도를 펼쳐 들고 또 어디를 가볼지 살펴봤다. 서울로7017 길목에는 장미김밥, 수국식빵, 목련다방, 도토리풀빵, 서울화반 등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돼있다. 회현역 방면에 있는 목련다방에서는 아이스크림과 각종 음료를 맛볼 수 있고, 길 중간쯤 위치한 수국식빵에서는 각종 빵과 토스트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다. 한참 더 걸어 들어와 장미마당을 지나 만날 수 있는 장미김밥에서는 시원한 음료와 빙수를, 만리동광장에 있는 도토리풀빵에서는 고소하고 달콤한 풀빵을 먹고 서울화반에서는 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이제 목도 축였겠다, 측백나무가 즐비한 상쾌한 길을 지나 만리동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리동광장이 가까워질수록 반가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도심 광장, 시장, 공원 등에서 무료로 음악 연주, 춤, 마술 등을 공연하는 ‘거리예술존’ 공간 중 하나인 만리동 광장에서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만날 수 있다. 이날의 공연은 가야금 협주. 청아한 화음이 어우러진 가야금 협주 공연은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정의 마무리, 고즈넉한 힐링 공간

아직은 여정을 마무리하기 아쉬운 시간. 다시 서울로7017로 올라가 만리동 방면 반대편인 중림동 방면으로 향했다. 여기서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1892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교회 건축물 약현성당을 만날 수 있다.
정겨운 마을을 지나 약현성당으로 오르는 길은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사람과 볼거리가 가득했던 서울로7017과 다르게 고즈넉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다. 어느덧 주변 소음과 멀어지고 고요한 숲이 눈앞에 펼쳐지니, 마치 비밀의 정원으로 향하는 듯한 기분마저들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오랫동안 세월을 비껴온 듯한 공간. 동산 끝에 위치한 약현성당을 마주하면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진다. 고딕풍의 건축 양식이지만 고풍스럽고 웅장하기보다 아기자기하면서 친근한 느낌이 들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참회와 치유의 시간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약현성당은 건물도 아름답지만 오르내리는 숲길이 더 인상적이다. 새소리와 숲 냄새가 가득한 숲길을 내려오며 이만하면 알차고 뜻깊은 하루 휴가였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서울로7017은 이처럼 주변 곳곳에 유서 깊은 공간이 숨겨져 있어서 길에서 시작해 서울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하루 동안의 휴가를 마무리했다. 어차피 단 하루뿐이라고, 어딜 가도 고생만 할 거라고 단념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면 에어컨 바람처럼 심심하고 무미건조한 하루가 되었을지도 모를 나의 여름 휴가. 다음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환상적이라는 야경을 구경하러 한 번 더 찾기로 했다. 바빠서 휴가 떠날 여유가 없다는 사람을 만나면 서울로7017을 추천하려 한다. 많은 사람이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을 잇는 이 길 위에서 다양한 즐거움을 발견하길 바라면서.

글·사진 권정미_ 주로 글을 쓰고 가끔 사진을 찍는 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서울로운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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